우리 자신의 구원을 성취함에 있어서(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 빌 2:12,13
(조종남 역 "존 웨슬레의 설교선집" 4번 쪽, 구미중앙교회 김성호성도 타자)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자신의)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
1)하나님의 존재나 성품이라든가 혹은 도덕적인 선악의 구별같은큰 진리들은 이방인의 세계에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 증거는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곧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라고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어느정도 깨우쳐 주셨다고 말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이 없는 자' 곧 기록된 율법을 가지지 않은 자들에게는 그 자신이 바로 법이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율법은 역사(役事, 作用) -이는 글자로 적지 아니한 것이라 해도 그 율법의 실체를 말함-를가리키는데 이 율법은 돌비에 기록된 율법임을 말해 줍니다. 사람들이이러한 진리를 따르거나 말거나 그들의 양심이 그들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그런데 참으로 중대한 두 가지 진리 - 가장 중요시 되는 많은 진리들을 내포하고 있는 진리 -가 있는데 이 진리는 동서고금의 지성인들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에 관한 진리와 하나님의 영에 관한 진리입니다. 아들에 관한 것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내어주사 세상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심을 가리키는 것이요, 영에 관하여란 인간이 창조될 당시의 하나님의 형상으로새롭게 됨을 뜻합니다.
재치있고 박식한 사람들이(예를 들면 쉐발리에 람제이 같은 위인)이런 진리를 일반 연구서적에서도 찾아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그러한 생생한 상상력만으로는 도저히 이 진리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런 일반 연구서적 속에는 이런 진리가 대단히 희귀합니다.
있다고 하면 몇 세대에 걸쳐서 가장 잘 교육되어 가장 깊이 생각하는사람들에게서나 발견될 정도입니다. 이런 사려 깊은 사람들 주변에 있는, 그들의 지식보다도 별로 신통할 게 없는 수많은 군중들은 아직도 썩어가는 짐승의 시체처럼 이 중대한 진리들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있 습니다.
3)이 진리는 복음에 의하여 밝혀질 때까지는 온 세계의 인류와 온 세기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지식의 불꽃이 튀어도 의의 태양이 떠올라 어두움의 그림자를 내어몰기까지는 온 천하가 암흑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저 높은 곳에서 새벽이 오매 그 때 까지 어두움과 사망의 그늘에 누웠던 자들이 큰 빛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이건 무수한 사람들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 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는 말씀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에게 의욕을 일으키시 고 그것을 실행하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4)이 구절 앞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씀은 얼마나 귀중합니까? '너 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영원 전부터 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 -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려 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정확한 의미로는 이 동등 됨을 노략질 하지 않으셨다는 뜻으로, 이는 다른 사람의 지시로 인함 이 아니요 스스로가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충만하심과 가장 높으심의 두 가지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이 말들은 반대적인 두 말과 함께 쓰여졌는데 곧 그의 충만하시다 함은 자기를 비우셨다는 말과 반대되고, 하나님이 높으시다는 뜻이 본문에서 자기를 낮추셨다는 말에 반대가 됩니다. 그 런데 예수님은 그 충만한 신성에서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곧 사람과 천사의 눈이 볼 수 없도록 자기 자신의 충만하심을 가리우신 것입니 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비우시는 그 행위에 의하여 종의 모습을 취 하셨다는 것입니다. 곧 보통 사람과 똑같은 '사람의 형상' 을 입으셨다 는것입니다.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셨다"는 말씀은 그분이 사람 - 보통사람, 더 아름답지도 월등하지도 아니한 사람 - 의 형체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어 하나님과 동등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복종하셨으니 죽 기까지,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겸손과 복종의 가장 위대한 본보기라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본을 설명하고 나서 그리스도께 서 성취해 놓으신 구원을 얻도록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너의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 하게 하시느니라," 이 뜻깊은 말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관찰할 수 있을 것입 니다.
(1) 첫째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진리는 "우리 안에서 행하 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 우리 인간이 해야 하는 노력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3) 앞의 두 가지 연결에서 얻어지는 결론으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그러므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성취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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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째로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진리를 살펴보고자합니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느니라" 이 말씀에서 말의순서를 조금 바꾸어 보면 그 뜻이 좀더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너희 안에서 소원하시고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라는 어구를 '하시는'이라는 말에 연결시켜 보면, 인간의 공로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사라지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에 모든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먼저 행하시게 된 것이 마치 인간의 공로나 우리 안에 어떤 선한 것이 있어서이거나 또는 그것이 인간의 선행인 것처럼 인간들 스스로 자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위의 성경말씀은 그와 같은 헛된 생각을 송두리째 없애버리고, 홀로 하나님 자신이 단순한 은총 곧 값없이 주시는 은층에서 이를 행하시는 것임을분명히 드러냅니다.
(2)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서 소원하시고 행사하시도록 되었다 함은위에서 말한 것만으로도 설명이 됩니다. 이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로 '소원하시다' (to will)는 말은 내적 종교 전체를 의미하는것이고, '행하시다' (to do)라는 말은 외적 종교 전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해될 때 이 말씀은 곧 내적 성결과 외적 성결을 이룩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뜻합니다.
둘째로 '소원하시다' (to will)는 말은 모든 선한 의욕을 뜻합니다.
그리고 '행하시다' (to do)는 말은 그 선한 의욕으로부터 생겨난 모든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 구절은, 하나님께서 인긴에게 모든 선한의욕으로 하여금 선한결과를 가져오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3) '소원하시다' 와 '행하시다' 의 원어인 '토 델레인' 과'토 에네르게인' 두 번째 해석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보입니다. '소원하시다' (to will)로번역된 이 단어는 간단히 말해서 모든 선한 의욕을 포함합니다. 그 의욕이 우리 인간의 기질이나 말이나 행동과 관계되거나 관계되지 않거나 간에 그것은 모든선한 동기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곧 내적 성결과 외적 성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하시다' 로 번역된 토 '에네르게인'은 분명히 위로부터 오는 모든 능력, 모든 의를 행하는 능력 곧 선한 말과 행실을 하도록 준비시키는 에너지(energy)전부를 말합니다.
(4) 이상의 해석을 깊이 그리고 계속적으로 확신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교만을 소멸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이 만약 그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면 어찌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않은것처럼 지신에게 영광을 돌리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인간이 선을 이루는 시동(始動)이 위로부터 오는 것이고 아울러 그 선을 행할 바로 그 생각과 선한 의욕을 끝까지 이끄시는 그 힘도위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고 느낀다면,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의욕을불어넣으실 뿐 아니라 그것과 함께 하시고 그 뒤를 따라 계속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결론은 "자랑하는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전 1:31)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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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갑시다. 만약 하나님께서 너희 안에서 일하신다면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 여기서 '이루다' 는 말의 원뜻은 어떤 일을 철저히 하라는 의미입니다. '너희 자신' 이라는 말은 너희 지신이 이 일을 수행하지 아니하면그 일은 언제까지나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너희 자신의 구원' 이라는 것은 선행적 은총으로 시작됩니다. 사람이 자기의 범죄에 대하여 일시적으로나마 어느 정도의 깨달음이 있다든가 혹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깨달음이 순간적으로 생긴다면 이것은 선행적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생명을 향한 어떤 행진을 암시합니다. 어떤 면에서는구원의 시작이요 눈멀고 무딘 마음, 즉 하나님과 그 하신 일을 전혀 모르는 마음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초기 단계입니다. 이 구원은 흔히 성경에 '회개' 라고 말하는 깨닫게 하는 은혜' (Convincing Grace)로 인하여 계속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좀더 자기 자신을 알게 되고한 걸음 한 걸음 더 건짐을 받게 됩니다. 그런 후에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인간이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엠 2:8)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두 가지 증요한 부분 곧 '의인' (義認)과 '성결' (聖潔)로 설명됩니다. '의인' 이라 함은 우리가 죄책(罪責),guilt of sin)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됨을 말하며, '성결'이라함은 우리가 죄악의 권세와 뿌리로부터 구원받아 하나님의 형상으로까지 회복됨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우리의 경험도 이 구원은 순간적이며동시에 점진적인 것임을 나타냅니다.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에대하여 거룩하고 겸손하며 고상하고 오래 참는 사람 가운데서 의롭다함을 받는(義認) 그 순간에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구원은점진적으로 성장하여 마치 "겨자씨 한 알이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지만 나중에는 많은 가지들을 내어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마 13:31)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은 우리의 마음이 모든 죄로부터 씻김을 받고 하나님과 인간을 향한 순전한 사랑으로 가득할 때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드리고 사랑은 더욱 성장하여 마침내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모든 일에 있어 자랄 때까지"(엠 4:15)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13절) 도달하도록 커 나가는 것입니다.
2)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이 구원을 이룩할 수 있습니까? 바울 사도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똑같표현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말씀의 이해를 돕는 다른 말입니다.
"종들아 육체의 상전들에게 복종하기를 두렵고 떨림으로 하라" 비상전으로부터 곧 놓임을 받는다는 것을 알더라도 현재 있는 그 상태에 따라서 '두렵고 떨림으로'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속담식 표현입니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만 해석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무엇 때문에 상전들은 종들을 벌벌 떨게 내버려 두며 더구나 그렇게 하도록 명령할 수 있습니까? 다음 말씀을 보아도 그런 뜻이 없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대하여 “한 마음을 가지고“그리고 한 눈으로 곧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첨럼 눈가림만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이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처럼 상전에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할 것입니다(엡 6:5 이하).
이와 같은 바울 사도의 말씀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은 쉽게 발견됩다. 첫째는 모든 일에 가장 열심있는 마음으로 모든 조심과 주의력을 다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특히 앞에 있는 '두려움으로'' 라는 뜻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모든일은 가장 부지런함과 최대의 속력 그리고 꼼꼼함과 정확성을 가지고행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이것은 뒤에 있는 '떨림으로' 라는 어구를 연관시켜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3) 위에서 밝힌 점들을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룩해야 하는 영적인일에 쉽게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 된 종들이 이땅 위에 있는 상전을 섬기는 것과 똑같은 성품과 방법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의 주인을 섬기는 일에 전력을 다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첫째로는 가장 열심있는 마음과 온갖 조심과 두려움으로 섬길 것이요,둘째로는 가강 부지런함과 최대의 속력 그리고 꼼꼼함과 정확성을 가지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4) 그렇다면 우리 인간 자신의 구원을 이룩함에 있어서 성서가 요구하는 단계들은 무엇입니까? 선지자 이사야는 우리가 취하여야 할 첫단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즉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하도록 하라" (사 1:16) .
만약 하니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셔서 이미 주어진 은층으로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구원과 그리고 영원한 구임에 이르기를 여러분이 희망한다면 여러분을 유혹하는 악마(뱀)를 피하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살전 5:22),그리고 선을 행하십시오. 선한 일과 경건한 일에 열심을 다하십시오.
가족 기도와 은밀히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에도 노력하십시오. 은밀히금식하십시오.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아버지께서 보이는 상급으로 갚으실 것입니다"(마 6:18).
"성경을 상고하십시오"(요 5:39). 성경 말씀을 우리들과 함께 들으며, 또 홀로 읽으며 그리고 그 읽는 말씀을 명상하십시오. 기회가 있을때마다 성만찬에 참석하여 "주를 기념하십시오"(고전 11:24,25).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성만찬석에서 여러분을 만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의 사쉽을 즐기십시오.
그리고 모든 하는 일은 "은혜 가운데서 절제하도록"(골 4:6)하십시오. 틈 있는 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영육을 위하여 선을 행하도록 하십시오. 주의 일을 함에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풍성히하여야 합니다(고전 15:58). 곧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게 소용이 없는 것이면여러분의 모든 기쁨을 버려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여러분에게 십자가가 되어도, 비록 육체에는 쓰라린 것이라 하여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수단이 된다면 사양치 말고 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량함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완전한 데 나아가(히 6:2)마침내는 "그가 빛 가운에 계신 것같이 여러분도 빛 가운데 행하여"(요일 1:7)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불의에서 깨끗케 하시느니라"(요일 1:9)라고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3]
(1) 그러면 이 구절의 전반부 후반부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있을 줄 압니다. 앞뒤 구절 사이에 오히려 노골적인 모순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우리 인간 안에서 소원하고 행하도록 역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들이 일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인간의 하는 일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인간의 노력을 불필요하게 할뿐 아니라 실상 필요하지도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하신다고 인정한다면 인간이 해야 될 일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2) 위와 같은 생각은 육적으로나 혈통에서 나는 추리입니다. 처음들을 때는 대단히 그럴 듯 하여도 좀 깊이 생각하여 보면 그것은 건실한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냐'(요 5:17) 그러므로 너희도 일하라"는 말씀에는 아무 모순이 없으며, 오히려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이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면에서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첫째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그러므로 너희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이요,둘째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그러므로 너희도 일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첫째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일하시므로 여러분이 일할 수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시면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이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자가 천국에들어가는 것이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느니라"(막 10:27)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시면 사람으로서는 즉'여인에게서 난 자' 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본래 병들었을 뿐 아니라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죽음로부터 인간을 살리시기 전에는 인간은 무슨일이고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나사로가 우리 주님께서 생명을 주시기 전까지 걸어 나올 수 없었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맞습니다. 어느인간이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께서 그 죽은 영혼을 살리시기 전까지는 죄악에서 헤어날 수 없으며 조금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4) 그렇다고 하여 사람이 계속 죄에 거하면서 핑계만 댈 수는 없는것입니다. "우리를 불러 일으키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니 우리는우리의 영흔을 되살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변명하면서 그 책임을 창조주께 전가할 수는 없습니다. 영혼이 자연적으로 죄악에서 죽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변명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자연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인간(a state of mere nature)이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을 꺼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 밖에서 홀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살고 있는 사람 치고우리가 보통 말하는 자연적 양심을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양심이란 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그것은 선행적 은총입니다.
모든사람들은 많건 적건 이 선행적 은총을지니고 있습니다. 이 은총은 인간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계없습니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인간은 누구든지 선행의 의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선행의 의욕이 인간의 심층을 찌르기 전에, 그리고 좋은 열매를 맺기 전에이것을 없애 버리는 사람이 많다 하여도 이 선행의 의욕이 모든 인간에게 있는 것은 불변의 사실입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어느 정도 자기를 비추어 주는 빛 ,즉 희미하기는 하여도 반짝이는 불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만약 귀가 화저(火著)로 지져져 마비된 양심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이 아니라면 양심의 빛을 거역했을 때 다소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은총이 없어서 범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은총을 활용하지 않는 까닭에 범죄하는 것입니다.
(5)따라서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일하시는 한 여러분은 자신의구원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공로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따라 여러분 안에서 소원하시고 행하시므로 여러분은모든 의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요일 4:19), 우리의 대 스승의 형상을 따라사랑 안에서 거닐 수 있습니다(엠 5:21).
우리가 알거니와 주님의 말씀은 참되십니다. "내가 없이는 너희는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동시에 성도는 이렇게 대답할 수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
(6) 한편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의 체험을 통하여 이 두 가지를 결합시키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언제나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고의로 저지른 불순종을 변명할 속셈으로 "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이름을 부르짖지도 않은 채 인간의 무능력에만 집착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은 거짓 겸손입니다.
다시금 기도하고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의 그런 변명을 숙고하여봅시다. 나는 여러분이 책망하기를 바랍니다. 정말 여러분이 아무 것도 할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다면 여러분은 처절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 곧 구원의자리에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안에 거하는 은총의 불꽃을 북돋웁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욱크신 은총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7) 둘째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일하시니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일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고후6:1)가 되어야 합니다(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한 그대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그만두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시되 "무릇 있는 자는 더 받게 되고 없는 자-이미 있는 은총을키우지 않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게 됩니다"(마 26:29 참조).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원칙입니다.
이러한 교리와는 반대되는 쪽으로 기울기를 좋아하였던 성 어거스틴도 심지어 "Qui fecit nos sine salvabit nos sine nobis"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인간 없이 인간을 만드신 분께서는 인간 없이 인간을 구원하시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 패역한 세대로부터 그 자신을 구원하지 아니하면"(행 2:40) 인간을 구원하시지않을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취하지 않으면"(딤전 6:12), "인간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으면", "자기를부인하고 매일 자기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그리고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하여(벧후 1:10) 모든 수단을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8)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썩는 양식을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합시다(요 6:27). 다소 뜻은 다르지만 우리들의 은혜로우신 주님과 함께 말합시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지금도일하고 계심을 생각하고 선을 행하다가 결코 낙심하지 맙시다. 여러분보다 앞서 행하시고 여러분과 동행하시며 뒤따르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인하여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살전 1:3)를계속합시다. "주의 일을 함에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풍성하도록"(고전 15:58) 합시다.
그렇게 하면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우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실 것입니다. 영광이 주님께세세토록 있기를 빕니다(히 13:2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