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소개

by holyway posted Mar 3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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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대각성운동을 주도하였고, 철저한 칼빈주의 신학자요, 철학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1703년 10월 5일 코네티컷의 이스트 윈저에서 회중교회 목사 티모디 에드워즈(Timothy Edwards)의 11 명의 자녀 가운데 5째로 태어났다. 

에드워즈는 1720년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1721년 회심 체험하였고, 1722년 설교 면허 시험에 합격한 후 뉴욕에 있는 장로 교회에서 봉직하였다. 예일 대학의 학장 티모시 커틀러(Timothy Cutler)가 성공회로 개종하여 변절하자, 예일대학으로 돌아와 교수생활을 시작하여 정통 신학을 재정립하고자 하였다. 

1727년 사라 피어폰드(Sarah Pierpont)와 결혼한 후, 외할아버지 솔로몬 스타다드를 도와 노스앰톤 교회의 동사 목사로 일하다가 1729년부터 그 교회를 담임하여 1750년까지 목회하였다. 1751년 스톡브리지(Stockbridge)에서 인디언 선교에 종사하던중 1758년 프린스턴 대학 학장에 취임하였으나 천연두 백신 주사의 후유증으로 그해 2월 사망하였다. 

에드워즈는 전형적인 부흥사는 아니었다. 하루에 12-13시간씩 연구에 몰두한 학자형 목회자였다. 설교시에 우렁찬 음성이나 제스처의 기법없이 원고를 읽곤 하였지만, 설교 내용에서 조직성과 묘사가 뛰어났다. 

에드워즈는 그의 목회 기간 2번의 부흥을 체험하였다. 첫 번째 부흥은 1734년 11월 알미니우스 사상의 확산을 염려하여 행한 “오직 믿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칭의”(Justification by Faith Alone)라는 일련의 설교를 통하여 일어났다. 

1735년 봄과 여름에 온 마을이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회심을 체험하였다. 마을 전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정도였다. 한 주에 30명이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나 6개월만에 300명 이상이 회심하고, 교인수가 620명으로 늘어나 유례없는 축복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부흥은 1740년 조지 휫필드가 노스앰톤에 와서 설교함으로 시작되어 뉴잉글랜드 전역으로 번졌다. 

에드워즈는 수많은 설교와 경건에 관한 책을 출판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신앙과 정서」(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 「자유의지에 대하여」, 「원죄 교리의 옹호」, 「덕성의 본성」, 「천지 창조의 목적」 등이 있다. 특히 그는 「신앙과 정서」를 통해 마귀가 교회를 혼란으로 인도하는 거짓 체험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소개함으로 바른 신학 운동을 전개하여 기독교 역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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