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중생이란 어떤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겪게 되는 마음과 속성의 변화를 뜻한다. 마음의 변화는 성경에서 다양한 상징을 비유함으로써 계속하여 언급하고 있다.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겔36:36)을 주는 것, 그리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겔36:36) 주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그것을 때로는 “하나님께로서 나는”(요1:13) 것으로 말하며 때로는“거듭나는”(요3:3) 것과 때로는 “성령으로 난”(요3:6) 것으로 말한다.
사도 베드로는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으로 말한다(행3:19). 로마서에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롬6:13) 것으로 일컫고 있다. 고후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는”(고후5:17)으로 말한다. 에베소서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골로새서는 말한다.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3:9-10). 디도서는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3:5)이라고 말한다. 베드로전서는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2:9) 하시는 것이라 한다. 베드로후서는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1:4) 것이라고 한다.요한일서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일컫는다.
이 모든 표현들은 결국 동일한 귀결에 이른다. 단지 다른 측면에서 비추어 본 동일한 진리이다. 그것들은 마음과 성품의 아주 근본적인 변화를 말하며, 온전한 속사람과 철저한 개조와 변화,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에의 참예를 말한다. 국교회 교리문답에 의하면, “죄에 대한 죽음, 그리고 의에 대한 신앙”을 말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이 마음의 변화는 완전하고 철저한 것이다. 너무나 완벽해서 “중생”이나 “신생”이란 단어 이외의 어떤 단어도 그것을 표현하기에 적합지 않을 정도이다. 그것은 외적인 육체적인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속사람의 완전한 변화이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어떤 새로운 능력을 덧붙여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옛것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경향과 성벽을 준다.그의 의지가 너무도 새롭고, 그의 의견들이 너무도 새롭고, 죄와 세상과 성경과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견해들이 너무도 새로워서, 그는 모든 점에 있어서 새로운 사람을 열망하며 목적으로 하게 된다. 이 변화는 새로운 존재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거듭난” 존재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변화는 저희가 성장한 후에 그것을 겪는 자들에게 있어서 항상 동일한 방법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나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같은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갑작스러우며 격심한 변화였으며, 많은 심적 번민을 수반한다. 반면에 두아디라성의 루디아와 같은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은 보다 부드럽고 점진적인 변화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겨울은 저희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봄이 된다.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 그 변화는 고난을 통해, 혹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불시의 임재로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 도래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의 경우는 선포된 혹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가져오는 수단이 된다.
이 변화는 단지 그 결과에 의해서만 알려지고 식별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작은 감추어진, 은밀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알 수가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3:8).
이 변화는 어떤 사람이 스스로 그 자신에게 줄 수 있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요1:13) 난다.
삼위일체 이름으로 세례를 줄 수 있지만, 성령께서 그 의식에 함께 하셔서 축복하시지 않는 한, 거기에는 죄에 있어서의 죽음도 의에 있어서의 신생도 수반되지 않는다. 오직 교회의 위대한 머리되시는 예수께서만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수 있다. 외적인 세례와 더불어 내적인 세례를 받는 그들은 복있는 자들이며 행복한 자들이다.
단지 교회적인 특권의 신분에로의 승인만을 의미하는 중생은 내가 알기로 예로부터 아직 성숙하지 못한 유치한 것이다. 이것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내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중생은 신분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이다.
- 존 라일, 『오직 한 길』, pp 2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