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미드 - 유사 그리스도인 중에서
유사 그리스도인 by 매튜 미드
* 지은이의 당부
여러분은 이 책에서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슬픈 일 중 하나를 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신앙을 고백하고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결국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저의 의도는 이것입니다. 잠자고 있는 형식적인 신앙 고백자들을 깨우는 것과 위선자들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약한 신자들이 이것을 읽고 낙심할까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은혜를 간직하고도 죄 가운데 떨어져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어렵고 죄인들은 거기까지 흉내 내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위선자가 은혜가 없이도 신앙에 있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 보여 주기가 어렵고 신자들은 낙심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많이 나아갔더라도 유사 그리스도인에 불과한 사람이 있는 반면, 이보다 좀 부족하더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일 수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예방에 힘썼습니다. 그러므로 거짓된 신앙 고백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어떤 하나의 특성만을 보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전체를 다 읽고 나서 판단하십시오.
특별히 이 세대에 충만한 방탕한 신앙 고백자들을 깨우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마음은 죄의 소굴이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교회를 떠나지 않고 가끔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적절한 때에 세례를 받고, 자신들은 천국에 들어가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상태를 안전한 것으로 여기며, 자신들의 구원을 확신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육적이며 변화되지 않았고 행실은 더럽고 성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벧후 1:10) 다섯 개의 조항으로 적용하였습니다.
첫째, 외적으로 행한 일을 은혜로 생각하여 경건의 모양에 안주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둘째, 경건의 능력의 탁월함과 그리스도의 생애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하십시오.
셋째, 위대한 실재로서 장차 올 것들을 바라보십시오.
넷째, 당신의 영혼에 높은 기준을 설정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심판 날의 엄격함과 갑작스러움을 묵상하십시오.
독자들이여! 이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다른 모든 것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이며 가장 크게 외쳐 구해야 할 것이며 우리의 최대의 관심과 열정의 대상입니다.
영혼을 멸망케 하는 병적인 심리를 예방하고 교정하는 것이 지금 여러분의 손에 들린 이 글의 최소한의 의도는 아닙니다. 이 글의 주요 장점은 부풀어 오르는 위선자의 병을 경감시키고 치료하는데 유용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적당한 순간에 진지하게 숙고하고 조심스럽게 꾸준히 기도하게 함으로써 불경스러움의 염증에 붙이는 고약으로서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여러분의 상태를 시험하는 시금석으로 사용하신다면 유용할 것입니다.
제 2장
신앙적인 삶에서 큰 진보를 보였는데도 그가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 있는가?
질문 : 천국에 이르는 길을 아주 많이 나아갔는데도 그리스도인이 되다 말 수 있을까요?
대답 : 그 대표적 사례를 들어 그 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례 1 - 지식의 큰 진보를 보일 수도 있음
당신이 비록 지식이 많고 빛을 많이 받았다고 합시다. 즉 당신을 하나님과 그 분의 뜻에 대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길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식이 없이는 은혜도 있을 수 없지만 은혜가 없는 곳에도 많은 지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종종 조명이 있더라도 회심이 뒤따르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지식의 주체는 지성(the understanding)이지만 거룩의 주체는 의지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의 지성에 빛이 비추어졌다고 해도 의지는 전혀 거룩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그의 의지는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도는 우리에게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한 사람이 전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머리에 빛이 있어야 하지만 가슴에는 열이 있어야 합니다. 지성에는 지식이 있어야 하지만 정서에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열정은 있지만 지식이 없습니다. 그것은 맹목적인 헌신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지식은 있지만 열정이 없습니다. 그것은 열매 없는 사색입니다. 지식과 열정이 결합될 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지식이 머리에 가득 찰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무언가 다른 것이 없다면 마음에는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위선자의 무리였습니다.
➀ 어떤 사람들은 알되 지식만 추구합니다.
➁ 어떤 사람들은 알되 명성만 추구합니다.
➂ 어떤 사람들은 알되 자신이 아는 것만을 실천합니다.
➃ 어떤 사람들은 알되 지식만을 추구하는 것은 호기심입니다.
➄ 어떤 사람들은 알되 명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헛된 영광입니다.
그러나 알되,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복음적인 본분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합니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그는 단지 그리스도인이 되다 만 유사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사례 2 큰 은사를 받을 수도 있음
당신이 비록 크고 놀라운 은사, 바로 영적인 은사를 가지고 있다 해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가 있습니다.
1. 은사는 성령의 일반적 사역
1) 불신자에게도 은사는 주어질 수 있습니다.
은사는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일반적인 은사를 모두 소유한다고 해도 버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은사가 일반적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성령께서는 선악을 가리지 않고 즉 믿는 자에게든지 불신자에게든지 은사를 나누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전혀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 최상의 은혜를 받은 사람보다 이 면에서 더 큰 성령의 역사하심 아래 있을 수 있습니다.
2) 은사는 타인의 유익과 선을 위한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그러므로 받은 은사로 다른 사람을 세우면서도 자신은 세우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유익할지라도 자신에게는 유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말씀의 효과는 말하는 자의 권위에 달려 있지 않고 말씀을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위에 달려 있습니다. 스쿨테투스는 독일 아우그스부르크의 유명한 설교자 요안네스 슈카이세루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설교자는 1523년에 매우 힘있는 설교를 하여 많은 매춘부를 회심시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했지만 자신은 후에 교황주의자로 돌아서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2. 구원에 이르는 길은 은혜
1) 은혜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은혜입니다. 가장 위대한 은사라도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가장 작은 은혜라도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은사는 사람을 학자로 만들지만, 은혜는 신자로 만듭니다.
2) 많은 사람들이 은사를 잔뜩 가지고도 지옥으로 갔습니다.
가룟 유다는 틀림없이 위대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복음 설교자였습니다.
멸망에 이르지 않으려면 세 가지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➀ 우리는 죄를 철저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➁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합니다.
➂ 우리는 은혜 언약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가장 위대한 은사들이라도 이 세가지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될수 없습니다.
➀ 은사는 철저한 죄의 자각에 작용할 수 없습니다.
➁ 은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룰 수 없습니다.
➂ 은사는 우리를 언약 관계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3) 은사는 쇠퇴하고 소멸될 수 있습니다.
은혜는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사는 소멸될 것입니다. 은혜는 부패되지 않으나 은사는 부패합니다.
사례 3 수준 높은 신앙 고백을 할 수도 있음
당신이 비록 차원 높은 신앙 고백을 하고 외적인 경건의 의무를 많이 행한다 할지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가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 모두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인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1. 위선자들의 훌륭한 신앙 고백
유다는 얼마나 경건하게 신앙을 고백했는지요! 그는 그리스도를 따랐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리스도의 상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위선자에 불과했습니다. 많은 신앙 고백자들의 외모는 백합처럼 매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악취가 진동합니다. 신앙 고백의 부피로 신앙의 본질을 평가하는 것과 신앙의 의무의 길이로 은혜의 강도를 측정하는 것은 엄청난 사기입니다.
1) 신앙을 고백하고도 마음이 변하지 않고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면, 위대한 신앙 고백자라고 해도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다 만 사람입니다.
☞ 그는 부단히 말씀을 듣지만 여전히 죄인일 수 있습니다. 그는 종종 주님의 상에 함께 하지만 오던 때와 같이 죄인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우리는 의무가 은혜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신앙을 고백했을지라도 위선으로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선자는 신앙을 가장하고, 거룩의 가면을 썼지만 거룩의 은혜는 없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유사하지만 본질은 다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입었지만 부정한 속마음에 경건의 껍질뿐입니다. 그가 신앙을 고백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사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고백뿐이기 때문에 그는 사악합니다.
2. 입의 고백이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함
1) 관습과 처지에 따른 고백도 있습니다.
☞ 더 따뜻하게 하거나 더 뛰어난 점이 있어서 이런저런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유행에 따라 옷을 입는 것처럼 관습과 유행을 따라 신앙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합니다. 은혜의 수단이 마음을 뜨겁게 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방법에서 어떤 탁월함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유행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번창할 때 유행을 따라 신앙을 고백한 사람은 고난 받을 때 결코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자가 되지 않습니다.
2) 신앙을 고백해도 죽는다면 신앙을 고백한다고 해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 성경은 명백하게 어떤 사람이 최상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죽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잎은 무성하지만 열매는 없었던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이 더 이상 멸망으로부터 지켜 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의 공포를 마음에 간직한 채로 천국에 이르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입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간직한 채로 지옥으로 갑니다.
♣ 반론 ♣
그러나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마 10:32)
♣ 응답 ♣
맞습니다.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로부터 시인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백하는 것과 시인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이라는 것은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을 때 그리스도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한편 고백은 평안한 시기에나 행하는 생명 없는 형식일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시인한다는 것은 그분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요, 그 길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고백하지만 시인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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