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구원을 향해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존 플라벨

by holyway posted Jan 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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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구원을 향해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존 플라벨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6:44).

믿음은 사람의 수완 따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모두 본질상 하나님을 대적하여 죽어있는 자들이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구원을 향해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영혼을 이끄시고 주도하시는 분은 ‘아버지’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을 주도하시고 그 역사의 선두를 지키시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나를 보내신’이 암시하고 있다.

 

성부께서는 ‘이끄심’으로 사람의 의지가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도록 주장하신다. 그것은 ‘강압적인 작용’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거역하던 의지를 녹여 그 의지에 그리스도를 향하고자 하는 강렬하고도 자발적인 마음이 일어나도록 주장하시는 것이다. 이끄심을 통한 분명한 이해로 영혼이 그러한 의지와 소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폴젠티우스는 “우리가 가지는 영적인 소원은 은혜에서 나온 것이다. 은혜가 우리에게 그러한 소원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우리의 본성은 그러한 소원을 가지게 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영혼의 방향을 움직일 수 있는 오직 유일한 길은 성령의 역사를 통한 감화뿐이다. 그것은 모두 은혜의 결과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원하는 심령’을 원하신다. 이를 위해 마음과 양심에 깨달음을 주시고, 그 의지를 설득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이끄시는 것이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110:3).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호11:4).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 그리스도 안에 역사하셨던 강력한 능력으로 사람의 영혼에 역사하신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엡1:19-21).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하심은 또한 강력하실 뿐만 아니라 매우 달콤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의 의지가 가진 완고함은 제압하고 통제하시면서도, 사람들이 가진 자유로운 의지의 활동은 손상시키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영혼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이끄심은 복음적 질서를 따라 점진적으로 수행된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죄인의 영혼에 빛을 비추신다. 그 빛으로 영혼이 죄에 대한 강한 각성과 가책을 가지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끄시는 역사의 시작이다. 죄의 무게를 바르게 인식하게 된 영혼만이 겸비함과 애통함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려는 강한 소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사람의 영혼을 짐승 다루듯 하지 않으신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이 가진 분별력과 의지를 설득하는 방식을 통해 마음의 성향이 바뀌도록 역사하신다. 사람들의 이성의 눈을 여시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한하신 탁월함과 선함을 보게 하신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없는 부요함을 깨닫는 사람은 세상 것에 대하여 귀한 진주를 발견한 ‘진주 장사’처럼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13:44-46).

 

성경은 영혼의 회심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것’(롬6:4)과 ‘창조’(엡2:10), 또 ‘승리와 정복’(고후10:4-5)에 비유하면서 그 일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세 가지의 비유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승리와 정복’이 그러하다. 우리 마음 속에서는 언제나 서로 다른 두 가지 성향 간의 갈등이 존재한다. 소망과 두려움, 용기와 낙담의 대립이 그렇다. 어거스틴은 이를 두고 “옛 자아와 새로운 자아, 육신적 자아와 영적인 자아, 디 두 자아가 서로 싸우며 내 생각과 결심을 찢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경건을 위한 우리의 결심이 죄의 자아에 의해 얼마나 자주 공격당하는지 모른다. 우리의 영혼에 강력한 참호를 구축하고 있는 사탄의 간계 앞에서 스스로 모든 육신의 정욕을 끊고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나아갈 수 있는 영혼은 없다.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이 모든 영적인 것을 대적하는 악한 것들을 이기고 정복하실 수 있으시다.

 

영혼이 회심하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끄심에 달려 있다. 그러니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 중 사역자가 있다면 오랫동안 복음의 설교를 들었음에도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있던 병자처럼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낙심하지 말라. 성령께서 물을 동하실 때가 올 것이다. 여러분의 설교에 사람들의 영혼을 회심하게 하는 능력이 부어질 때가 올 것이다. 지금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분이 계실 것이다. 그들을 위한 선한 소망을 놓지 말라. 경건한 수고를 그치지 말라.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이끄신 것처럼 그들을 이끄실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이 기뻐하며 주의 권능의 날에 주께 나아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얼마나 큰 일을 행하셨는지 생각해 보라. 죄와 진노의 비참함에서 여러분은 건짐을 받았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영광스러운 주권을 누리게 되지 않았는가! 감사하라. 힘을 다해 섬기라. 여러분을 구원해 내시기 위해 모든 능력을 쏟으신 분께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존 플라벨, 『은혜의 방식』, pp 89-103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