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탁월성 - 조나단 에드워즈

by holyway posted Jan 29,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그리스도의 탁월성 - 조나단 에드워즈

(The Excellency of Christ)

  

"장로 중의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계시록 5:5-6상).


I. 그리스도 안에는 양극단의 탁월성들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여러 가지 신적 완전성과 탁월성을 가지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신적인 인격이시기에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양극단의 성품이 보여주는 차이점은 상대적이며 우리의 생각에 그렇게 이해되는 것뿐입니다. 양극단적인 탁월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무한히 높아지심과 무한히 낮아지심이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 보다 무한히 크시고 높으십니다. 그리스도는 왕의 왕이시오 주의 주가 되시기 때문에 이 땅의 어떤 왕보다도 더 높으십니다. 그는 하늘보다 높으시고 하늘의 지극히 높은 천사들 보다 더 높으십니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위대하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 모든 왕들과 군주들은 그 앞에서 땅의 벌레와 같습니다. 천하 만국도 물 한 방울과 같고 가벼운 먼지와 같습니다. 그 분 앞에서는 천사들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는 이처럼 높으시기 때문에 전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위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에게 아무런 유익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지각 위에 계시기 때문에 그를 온전히 알 수도(comprehend) 없습니다.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잠30:4)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우리의 이해력은 그의 신적 영광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하늘 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욥11:8).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며 위대한 소유주이십니다. 그는 모든 것의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그는 온 우주를 통치하시고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무엇이나 행하십니다.

그의 지식은 한이 없으시고 그의 지혜는 완전하시고 아무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능력은 무한하시고 아무도 그를 저항할 수 없습니다. 그의 풍부는 무한하시고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의 위엄은 무한히 엄위하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무한히 낮아지셨습니다. 일찍이 그렇게까지 낮아지거나 저급한 자리에 떨어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만민으로부터 은혜로운 주목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창조주이신 그분이 인간과 같이 천한 피조물의 자리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리하여 군주들이나 위대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가난한 자"(약2:5)인 가장 비천한 계층의 사람들도 주목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받던 그들을 결코 멸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1:28).


그리스도는 낮아지셔서 거지들(눅16:22)과 가장 멸시받던 사람들도 주목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야만인이나 수구디아 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의 구별"이 없습니다. (골3:11).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높으신 분이지만 어린 아이를 은혜로운 눈길로 주목하실 만큼 한없이 낮아지셨습니다.  "내게로 오는 어린아이를 금하지 말라" (마19:14)


더욱이 그리스도는 정말 무가치하고 죄로 찌든 피조물들, 좋은 대접은 커녕 무한한 저주를 받아 마땅한 자들도 은혜로운 눈길로 주목하실 만큼 낮아지셨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위대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은혜로운 눈길로 바라보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구가 되시며 영적 결혼을 통해서 그들의 영혼을 자신에게 연합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인간의 본성을 입으시며 그들 중 하나와 같이 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그들보다 더 낮아지셨습니다. 심지어 수치와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무지막지한 죽음에 넘겨주실 만큼 낮아지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낮아지심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는 가장 미천하고, 가장 비열하고, 가장 경멸스럽고, 가장 무가치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처럼 낮아지셨습니다!  이와 같이 한 인격 안에 무한한 높아지심과 무한한 낮아지심이 연합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높이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마리의 벌레가 좀 더 많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 때문에, 또는 좀 더 큰 거름더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다른 벌레에 비해 좀 더 높아 보인다면 얼마나 높겠습니까? 높아져봤자 바로 밑에 있는 벌레보다 얼마나 높아졌겠습니까? 낮아져봤자 얼마나 낮아지겠습니까?


그리스도는 우리의 발을 씻기기 위해서 낮아지셨습니다. 세상에서 위대하다는 사람들(더 큰 벌레에 불과한)은 그보다 훨씬 덜 낮아져도 큰 모멸감을 느낍니다!

2)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무한한 공의와 무한한 은혜가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무한히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십니다. 죄를 미워하시고 죄에 대해 마땅한 형벌을 내리십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심판자요 무한히 의로운 심판자이십니다. 그는 결코 악인들을 용서치 않으시며 죄를 그저 지나쳐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무한히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십니다. 비록 그의 공의는 모든 죄와 불법에 대해서 매우 엄격하지만, 그리스도는 모든 죄인 심지어 죄인의 괴수에게조차 풍성한 은혜를 차고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가장 무가치한자들에게도 자비와 축복을 베풀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좋은 축복을 베풀어주십니다. 주님의 은혜는 그들에게 모든 축복을 베푸시며 그들을 위해서라면 모든 일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너무나 풍성하기 때문에 아무리 큰 죄인에게도 부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에 이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라도 크다고 할 수 없습니다. 위대한 일을 행하려면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 극심한 고난, 심지어 죽음조차도 감수해야 합니다.  아니 죽음뿐만 아니라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고통스러운 일들과 온갖 두려운 일들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사람의 육체만을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인간이 가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도 견뎌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의 고통까지도 감당하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책임지신 사람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직접적인 결과였습니다.


II.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양극단의 탁월성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당신이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모셔 들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종류의 논증과 동기들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도록 당신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구주로서의 충만하심과 충족하심이 위에 언급한 탁월성 안에 영광스럽게 나타나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말로 다할 수 없이 비참한 상태에 떨어져 있습니다. 더욱이 그 상태에서 무력한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핏덩이 채 버려진 유아처럼 가련하고 미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의 사자 (the Lion of the tribe of Judah) 이십니다.


우리는 약할지라도 그는 강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천하고 비참한 피조물이며 혐오스러운 벌레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는 무한히 존귀한 분이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부패했지만 그리스도는 무한히 거룩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가증스럽지만, 그리스도는 사랑스러우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크게 자극하였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눈에 무한히 고귀한 의를 이루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무한한 능력과 무한한 존귀가 있을 뿐 아니라, 무한한 낮아지심과 사랑과 자비가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긍휼을 베푸시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져있는 가련하고 고통하는 죄인이라면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는 당신을 도울 능력과 소원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영혼의 필요를 채워주기에 충분한 강력한 기초요 측량할 수 없는 보화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가련하고 무가치하고 두려움에 싸여있는 영혼을 초청하고 담대하게 하는 무한한 은혜와 온유함이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받아주신다면, 당신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안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신을 보호하는 강한 사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나아 오기만 하면 당신은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나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양과 같으십니다.  주님은 그들을 무한한 사랑과 은혜로 받아 들여주십니다.


그가 두려운 위엄을 가지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크신 하나님이시오 당신 위에 높이 계신 분이시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사람이시라는 사실은 불쌍한 죄인을 격려하고 담대하게 해줍니다. 그는 창조자이시면서 피조물이시며 그는 하늘과 땅의 어떤 피조물보다도 가장 겸손하시고 낮아지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불쌍한 죄인들이 그에게 나아오도록 용기를 줍니다.


당신은 조금도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에게 달려가 자신을 그에게 던지십시오. 당신은 은혜롭고 온유한 영접을 받을 것입니다. 비록 그가 사자일지라도 그는 단지 당신의 원수에게 사자일 뿐이고 당신에게는 어린양이십니다.


당신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당신은 이와 같은 한 구주께 나아 오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가장 악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여기에 충분한 은혜가 있습니다. 당신이 가장 천하고 비열하고 무지한 죄인이라도 경멸을 당할 위험이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당신보다 큰 분이시지만, 그는 당신보다 무한히 더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고통을 안고 찾아올 때 멸시하는 부모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마음 중심으로 그분에게 나아 온다면 어떤 부모보다도 더 기쁘게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그가 두려운 위엄을 가지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크신 하나님이시오 당신 위에 높이 계신 분이시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사람이시라는 사실은 불쌍한 죄인을 격려하고 담대하게 해줍니다. 그는 창조자이시면서 피조물이시며 그는 하늘과 땅의 어떤 피조물보다도 가장 겸손하시고 낮아지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불쌍한 죄인들이 그에게 나아오도록 용기를 줍니다.


당신은 조금도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에게 달려가 자신을 그에게 던지십시오. 당신은 은혜롭고 온유한 영접을 받을 것입니다. 비록 그가 사자일지라도 그는 단지 당신의 원수에게 사자일 뿐이고 당신에게는 어린양이십니다.


당신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당신은 이와 같은 한 구주께 나아 오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가장 악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여기에 충분한 은혜가 있습니다. 당신이 가장 천하고 비열하고 무지한 죄인이라도 경멸을 당할 위험이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당신보다 큰 분이시지만, 그는 당신보다 무한히 더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고통을 안고 찾아올 때 멸시하는 부모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마음 중심으로 그분에게 나아 온다면 어떤 부모보다도 더 기쁘게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왜 당신의 영혼을 담대하게 그리스도께 맡기는 것을 두려워하십니까? 그가 당신을 구원할 수 없을까봐 두려워하십니까? 그는 당신의 영혼의 원수를 정복할 만큼 강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십니까?

어떻게 그리스도 즉 "전능하신 하나님"(사9:6)보다 더 강한 자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무한한 능력보다 더 큰 능력이 필요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은혜로운 눈길로 당신을 주목하실 만큼 낮아지지 않으실까 두려워하십니까?


그렇다면 관정에서 군인들이 때리고 침을 뱉도록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복된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그를 때리는 사람에게 등이 벗겨진 채 꽁꽁 묶인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있는 그를 바라보십시오. 당신은 자신을 낮추어 그들이 이런 일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게 하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기꺼이 영접해주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영접하셔도 성부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용납하지 않으실까 두려워하십니까?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영원 전부터 지금까지 성부 하나님의 무한한 기쁨의 대상이신 아들을 거절하시겠습니까? 성부 하나님께서 아들을 거절하시는 것은 자신을 거절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2. 당신이 구원자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자를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그의 탁월성에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위대한 것이고 선입니까? 무엇이 존귀하고 유익한 것입니까? 무엇이 찬양하고 기뻐할 만 한 것입니까? 그리스도 안에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남들의 눈에 당신이 불쌍한 죄인으로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크고 영화로우신 분이 되게 하시려고 합니까?


그리스도는 당신이 의존하기에 합당한 분이 아니십니까? 그는 당신의 구원이라는 고귀한 사역을 위하여 지명되기에 충분히 높으신 분이 아니십니까?


당신은 지극히 높으실 뿐만 아니라 고난과 유혹을 받는 자들을 동정하기 위해서 그의 위엄에도 불구하고 온갖 고난과 시험을 당하실 만큼 낮아지신 그분을 모시지 않으시렵니까?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하여 충분히 낮아지지 않으셨습니까? 충분히 고난을 당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을 맛 보셨을 뿐 아니라, 당신이 지금 두려워하는 내세의 엄청난 저주를 다 경험하신 그분을 모시지 않으시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나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수 천 배의 경험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 가까이 계셔서 중보사역을 효과적으로 담당하는 구세주를 원하십니까?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보다 더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계실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가까이 계셔서 당신이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그리스도를 모시기 원하십니까?  아내와 남편, 포도나무와 가지, 머리와 지체와 같이 영적인 연합으로 하나가 된 그 분보다 더 가까운 자를 원하십니까?  당신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와 같이 당신과 연합될 것입니다.


당신은 말씀으로 뿐만 아니라, 그가 행하신 일을 통해서 죄인에 대한 긍휼과 사랑에 대하여 크고 특별한 증거를 보여주신 구주를 모시기 원하십니까? 그리스도가 행하신 것 보다 더 탁월한 일을 생각할 수 있으십니까?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영원토록 참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참 사람이 되시기 위해서 인성을 덧입으신 것은 얼마나 위대합니까? 설령 그가 행하신 일이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죄인을 위하여 담당하신 고난은 사랑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구세주는 죄인들을 위해서 그리스도보다 더 큰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주가 되기에 부족한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특별히 두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1) 그리스도는 당신이 나아와서 신뢰하게 하시려고 당신을 초청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정말 달콤한 은혜와 친절을 가지고 시간 시간마다 당신을 부르시고 초청하십니다.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리라"(잠8:4)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갈한 심령을 초청하시고 "물로 나아오라, 와서 사 먹으라"고 거듭 거듭 부르시는 주님은 얼마나 은혜로우신지요!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돈 없이 값없이 오라"고 당신을 초청하시는 그분의 초청은 얼마나 탁월합니까! 당신의 가난도 초청을 거절하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은혜로운 논리와 충고로 당신을 초청하십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55:2)


말하자면 이제는 자신의 의로 이 세상에서 누릴 안식을 추구하는 것처럼, 결코 당신이 얻지 못할 것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좋은 것, 너를 만족시킬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 놓고 너를 영접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고 있다. 두려워 말고 내게 나아오라.  너의 모든 필요가 채워주겠다. 너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잠언 9장 초반부를 보십시오. 얼마나 은혜롭고 달콤한 초청을 하시는지요!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당신이 아무리 가난하고 무지하고 눈먼 사람일지라도 당신은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귀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친히 준비해 두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와서 나의 양식을 먹으며 내가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라."


당신이 가난하고 굶주린 상태에 놓여있으면서 죽어 가는 당신의 영혼을 먹일 수 있는 양식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무언가를 추구해왔지만 당신을 비참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의 빵을 먹고 그가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라는 그리스도의 초청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마11:28-30절에서 그리스도는 어린 양처럼 초청하시지 않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오, 비참하고 고통받는 영혼이여! 당신이 누구든지 그리스도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실 때 바로 당신을 부르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는 만일 그에게 나아온다면 당신에게 안식을 주신다고 수없이 반복해서 약속하십니다. 28절에서는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또 29절에서는 "너희 영혼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당신이 원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당신 그렇게 오랫동안 추구했지만 얻지 못했던 바로 그것입니다. 오, 그 안식은 얼마나 달콤할까요! 그리스도는 당신을 격려하기 위해서 자신을 어린양으로 나타내셨읍니다!


그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십니다. 당신은 그런 분에게 나아오는 것을 두려워 하십니까?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나는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그리스도는 당신을 부르시려고 낮아지셨을 뿐만 아니라 그는 당신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는 당신의 문에 찾아 오셔서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는 신하를 보내서 반역자와 악당 같은 당신을 체포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당신이 그 분을 친구요 구주로서 집안에 모셔들이도록 당신의 문에 오셔서 두드리십니다. 그는 당신의 문을 두드리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등을 돌리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밖에 서서 기다리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당신이 그를 영접한다면 당신을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시며 어떤 특권을 주실 것인지 약속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당신과 더불어 먹고 당신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먹을 것입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22:17-17)


그리스도는 당신 앞에 더 말할 나위없이 매력적인 탁월성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는 자신  뿐만 아니라 성령과 신부의 초청을 선포하시기 위해서 낮아지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당신이 초청에 응답하도록 격려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값진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게 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을 초청하십니다!

(2) 당신이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면 그는 영광스러운 능력과 권세로 당신을 보호하는 사자가 되실 것입니다.

그의 모든 탁월성은 당신의 것이 되며 당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사용될 것입니다. 그는 사자처럼 당신의 원수와 싸우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당신을 건드리거나 해치는 자는 사자처럼 일어나실 그분의 진노를 촉발시키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원수가 이 사자를 정복하지 않는 한 그들은 당신을 파멸시키거나 해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보다 더 강하지 못하다면 그들은 당신의 행복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가 불려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인하여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을 인하여 굴복치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영위에서 싸울 것이며"(사31:4).


(3)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만을 당신의 친구요 기업으로 삼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여러 가지 탁월성이 만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드려야 합당한 모든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친구에게 있어야 할 것 또는 있을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가장 높은 수준으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 있습니다.


당신은 존귀한 분을 친구로 선택하기 원하십니까?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을 친구로 삼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천한 여종이 위대하고 탁월한 왕자에게 사랑의 대상이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그리스도는 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왕들보다 높으시며 당신보다 무한히 높으신 분입니다. 이처럼 귀하신 분이 당신에게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당신은 위대(great)할뿐만 아니라 선한(good) 친구를 선택하고 싶으십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무한한 위대함과 무한한 선이 만나며 광채와 영광을 발합니다. 그의 위대함은 그의 선하심이 사랑스럽게 빛납니다.


선함이 없이 위대한 사람은 위대할수록 더 악해집니다. 그러나 무한한 선이 위대함과 결합될 때 영광스럽고 존귀한 위대함이 됩니다. 또한 그의 무한한 선하심은 그의 위대하심 때문에 더욱 빛이 나게 됩니다.


위대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는 선한 자는 그보다 못하면서 선한 자보다 더 존경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선함은 그 자체로서 아름답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위대함과 결합될 때 그것은 탁월하게 됩니다. 금은 그 자체로도 값이 나가지만 더 귀한 것과 결합될 때 가치가 높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위대한 창조자시요 하늘과 땅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셔서 천하고 무가치한 자들에게 부드러운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광경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 그의 전능한 능력과 무한한 엄위와 자족성(self-sufficiency)은 그의 넘치는 사랑과 은혜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그의 낮아지심과 연민은 그의 위엄과 능력과 주권을 감싸면서 아름답게 해 줍니다. 당신의 친구가 아무리 위대하고 존귀하다고 해도 그의 높은 지위가 우정을 방해하지 않도록 언제나 그에게 나아갈 수 있도록 낮아지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당신의 친구의 당신에게 더 가까이 나아오기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당신보다 훨씬 더 높지만 당신과 같은 수준으로 내려오신 그를 친구로 모시지 않으시렵니까?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을 친구를 삼기 원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환경이 비슷한 친구를 원합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크신 하나님이시지만 당신의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당신의 주님이 되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형제요 친구가 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성품을 입고 오신 목적입니다. 그의 신성은 인간과 무한한 거리를 가지게 하지만 인성은 친숙한 교제를 가능케 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사모하였습니다.

"네가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었더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아8:1)


복음 안에 담긴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온전한 경배의 대상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는 주님께 경배를 드리려는 성향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우정을 더 추구하는 성향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덕스럽고 거룩하게 되어도 이러한 본성의 경향은 없어지거나 약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성향까지도 만족시켜 주는 분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셨고 우리와 같은 본성을 취하셨으며, 우리 중의 하나처럼 되셨고, 자신을 우리의 친구요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동무라고 칭하셨습니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내 가운데 평강이 있을 지어다".(시122:8)


그처럼 높고 위대하신 분이 무한히 낮아지셔서 당신과 같은 본성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당신이 그 분 앞에 나아오도록 격려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당신에게 좀더 용기를 주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놀랍도록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당신을 위하여 사람이 되셨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 들 가운데 가장 온유하시고 가장 겸손한 분이십니다. 그런 분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탁월성을 완벽한 형태로 지니고 계십니다.


출처: http://blog.daum.net/piaosx/4857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