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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ㅡ 신생의 표적 - 존웨슬리

by holyway posted Nov 2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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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의 표적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 요 3 : 8 )

 

 

1. 성령으로 난 자, 즉 거듭난 자,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들은 모두 어떻다는 말입니까? 거듭난다,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혹은 성령으로 난다는 말이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의 아들 혹은 자녀가 되었다 또는 양자의 영을 가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총에 의하여 얻어지는 이런 특권들은 보통 세례(본문 앞절에서 우리 주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 데서 유래한 말)와 관련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권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새로 나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2. 아마도 새로 난다는 말의 정의를 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성경도 그런 시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질문이 모든 인간들에게 가장 심각한 관심거리요, 또 '거듭난 자' 혹은 '성령으로 난 자'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는 까닭에, 나는 그 새로 난 자의 표적을 성경에 근거하여 가장 평범한 말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1. 신생의 표적의 첫 번째 근거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다른 모든 표적들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와 같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느니라,"(갈 3:26)

또 사도 요한도 이와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이 말은 권리 또는 특권으로 번역됨이 더 좋을 듯함)를 주셨느니라."(요1:12)

 

이와같이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자연적인 출생에 의하지 않고, 사람들에 의해 양자로 삼는 것 같이,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양자가 되었다고 해도 내면적인 변화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그가 믿을 때 새로 나는 것입니다.(13절) 요한은 또 그의 서신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난 자니"(요일5:1) 라고 하였습니다.

 

 

2. 그러나 사도들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믿음은 단순히 관념적이거나 사변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명제에 대한 단순한 동의가 아닙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의 신조나 신구약 성서에 포함되어 있는 명제에 대한 지적 동의도 아닙니다. 또는 어떤 믿음이 그런 것이라면, 마귀들도 하나님께로부터 거듭난다고 하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것을 누가 믿어 주겠습니까만) 왜냐하면 마귀들도 그와 같은 믿음은 가졌으니까 말입니다. 사실인즉 마귀들은 두려워 떨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으며 하나님이 참되신 것처럼 모든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되어졌기 때문에 역시 진리임을 믿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란 신적 진리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이나 혹은 기적의 증거에 대한 단순한 동의가 아닌 것입니다. 그 까닭은 귀신들도 이미 예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을 미쁘시고 참되신 증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증거를, 즉 예수님 자신의 증거와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증거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들은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그 큰 날의 대심판 아래 두시려고 어두움의 쇠사슬에 여전히 묶여 있는 것입니다.(유다6절)

 

 

 

3.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죽은 믿음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된 기독교 신앙, 살아있는 기독교 신앙은 그 신앙을 가진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며, 이는 어떤 동의 곧 이해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마음 안에 역사하신 내적 성향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 안에서의 확고한 의뢰와 믿음을 말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그 죄가 용서되며 그가 하나님의 사랑에 화해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곧 사람이 먼저 자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지기 위하여"(빌3:9),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아들여지기 위하여, 인간이 그 "육체의 신뢰"(빌3:3)를 완전히 물리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지불할 것이 채로, 곧 자신의 업적이나 어떤 종류의 의에 의지함이 없이, 단순히 하나의 잃어진 자요 비참한 자며 자기 파괴자요 자기-정죄자요 망해버린 자요 또한 절망에 빠진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그는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는 자요,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죄의 책임이 있는 자로서 주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충만한 확신이 동반된, 그러한 죄의식(이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이를 악평하여 '절망'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바라는 간절한 소원, 이러한 것들이 산 믿음 즉 '자신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속전을 치루셨고 자신의 생애 속에서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일에 반드시 앞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났다고 하는 그 믿음은, 단순히 우리의 신앙의 모든 신조들을 시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진실히 확신하는 것입니다.

 

 

 

4.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이 믿음의 즉각적이고도 항상 있어야하는 열매, 곧 믿음과 잠시라고 결코 나눠질 수 없는 이 열매는 바로 죄를 이기는 힘입니다.

 

첫째로는, 모든 외적인 죄를 이기는 힘인데, 모든 악한 말과 행실을 이기는 힘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죽은 행실로부터 양심을 깨끗게 하도록"(히9:14) 어디에서나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내적인 죄를 이기는 힘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열매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 여러번 언급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2절)...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절)...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11절)...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까지라도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고(12절)...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와 같이 하나님께 드리자(13절)...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14절)...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죄에게서 해방죄어"(18절) - 쉬운 말로 하면 너희가 과거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5. 바울이 말한 것과 똑 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무한한 특권에 대하여 사도 요한도 강하게 역설하였습니다. 특히 믿음의 열매의 전자 곧 외적 죄를 이기는 힘에 관하여서 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의 풍성하심의 깊이에 놀란 사람처럼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 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요일3:1-2) 그리고 사도 요한은 즉시 이어서,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안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9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누구난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습관적으로'라니요?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그런 단어를 읽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습관적으로'라고 덧붙인 것입니다. 도대체 당신이 누구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고치며 이 성경 말씀에 덧붙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재앙들을 더하시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특별히 덧붙여진 의견이 성경 본문을 완전히 삼켜버리는 경우, 그리하여 '메도데이아 플라네스' 즉 교묘한 속임수에 의하여 그 귀한 약속이 완전히 잃어버려지거나 '쿠베이아 안드로폰', 즉 사람의 교묘한 속임수로 하나님의 말씀이 무효화하는 경우에는 더욱 더 조심해야 합니다. 이 책의 말씀을 그렇게 취하여 전체적 의미와 정신을 내던져 버리고 죽어버린 듯한 부분만 남겨놓는 여러분이여!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이름을 생명 책에서 지워버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6.우리가 사도 요한 자신의 해석을 듣되 그의 논의의 전체적인 주지에 의하여 참을성 있게 들어봅시다. 요한일서 3장 5절에 "그가(그리스도) 우리의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 죄가 없느니라."고 적혀 있습니다. 무엇을 뜻합니까?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느니라"(6절) 이처럼 중요한 점을 전제로 하였습니다. 즉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7절)는 것입니다. 많은 자들이 여러분을 꾀어 거룩치 않도록 하며 범죄하도록 하나,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우심 같이 그도 의롭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하여 있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8절) 성경 말씀은 다음과 같이 계속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니라."(9절) 요한은 덧붙여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밝히 드러납니다."(10) 이처럼 명백한 증거(죄를 짓느냐 안짓느냐)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서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5장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로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5:18)



7. 살아있는 믿음의 또 다른 열매는 평안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모든 죄가 도말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기"때문입니다. (롬5:1) 우리 주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 친히 제자들에게 분명히 유언하셨으니, "평안을 너희(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는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시기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요16:33) 하셨습니다. 이러한 평안은 모든 이해를 초월한 것이요, 자연인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으로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파도와 폭풍이 이 평안에 부딪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평안입니다. 그것은 이 평안이 반석 위에 세워진 까닭입니다. 이 평안은 언제든지 그리고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줍니다. 살기에 편안하거나 고통스럽거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부요하거나, 가난하거나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언제나 행복합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그들은 스스로 만족하기를 배웠으니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사는 것입니다. "무엇이건 간에 존재하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다."라고 했다는 말은 그것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삶의 파동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은 주님을 믿기 때문에 튼튼히 서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로 난 자의 두번째 성서적 표적은 "소망"입니다. 외국에 흩어져 사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벧전 1:3)


"엘피다 조산" 즉 "생동하는" 또는 "살아있는" 소망이라고 그는 말하였습니다. 산 믿음에 대하여 죽은 믿음이 있듯이 산 소망에 대하여 죽은 소망이 있으니 하나님께로서 나온 것이 아니요, 그 열매가 스스로 밝혀 주듯이 하나님과 인간의 원수로부터 나온 소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은 교만의 자손이기 때문에 모든 악한 언행의 부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 이 산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거룩합니다. 이는 그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까닭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형제들에게, "사랑하는 이들이여,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의 계신 모습 그대로 볼 것입니다."(요일 3:2)라고 진실되이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정결하신 것처럼 자기를 정결케 합니다.(요일 3:3)



2. 이 소망은 히브리서 11장 22절, 6장 11절을 살펴보면 - 한글 번역으로는 가능한 한 강하게 표현하여도 성서 원어의 뜻보다 뜻이 약하기는 하지만 - "신앙의 충분한 확신" 혹은 "소망의 충분한 확신"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몇 가지 암시하는 바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서 살아간다는 우리들의 영혼이나 양심의 증거를 뜻하며(고후 1:12), 둘째로는 (주로) 하나님의 영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과 더불어 혹은 우리 영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십니다. 우리가 자녀라면 상속자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상속자 곧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됩니다.(롬 8:16,17)



3. 하나님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이와 같은 영광된 특권에 관련하여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치시는가를 자세히 살펴봅시다.

여기에서 증거하겠다고 나서는 분은 누구입니까? 우리의 영 뿐만은 아닙니다. 또 있으시니 곧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의 영과 함께 증거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증거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자녀라면 곧 상속자요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할 사람이 됩니다. -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만일 우리가 각각 자기를 부인하며, 만일 우리가 매일 십자가를 진다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인하여 즐거이 핍박과 능욕을 달게 받으면) '우리도 또한 주와 함께 영광을 받게 될 것'(롬 8:17)을 증거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은 누구 안에서 이를 증거하십니까?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서 증거하십니다.

바로 이런 논법으로 바울은 앞절에서 이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즉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계속하여,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느니라."(롬 8:14-16)



4. 위의 15절에 있는 말씀은 다시 한번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들이 되게 하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에 의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인 여러분은, 아들인 까닭에, 똑같은 양자의 영을 받은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릅니다.

"우리" 곧 사도요 예언자요 교사인 우리(우리의 의미를 이렇게 제한할 때에야 더욱 적절히 이해가 될 것으로 봅니다.)를 통하여 여러분들은 믿게 되었습니다만 "우리"란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고전 4:1)를 말합니다. 우리와 여러분이 한 주님을 모신 것처럼, 역시 우리는 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와 여러분들은 상속의 보증이신 "약속의 영"(엡1:13)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의 영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여러분들과 우리의 영과 함께 증거하는 동일한 영이십니다.



5.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라는 말씀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곧 설사 우리 영과 함께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증거보다 슬픔이 앞설지라도 - 두려움과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한 불안으로 고통하는 동안에는 어느 정도 슬픔이 없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드디어 이러한 하나님의 영의 증거를 느끼게 될 때, 그의 슬픔은 오히려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 고통이 전에는 어떠한 것이었든지, 때가 오면 그는 하나님게로서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치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인고로 슬퍼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하나님의 영을 가지지 못했음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이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인 까닭에 슬퍼할지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보혜사가 오시면 여러분의 마음은 기뻐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쁨이 충만할 것이며 또한 그 기쁨을 빼앗을 자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요 16:22)


여러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뻐합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지금 속죄함을 얻었으며, 그로 인하여 우리는 이 은혜 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곧 이 은혜의 상태, 사랑을 입은 상태, 하나님과 화목된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여기에 서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합니다."(롬 5:2 참조)

사도 베드로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산 소망을 얻게 된 너희들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으니 그러므로 비록 지금은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너희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나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으로 그를 기뻐하도다."(벧전 1:5)


참으로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인간의 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성령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그것을 받은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감추어진 만나입니다. 이 기쁨은 깊은 환란의 수렁 속에서도 오히려 우리에게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위로가 쇠하여졌을 때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도 작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환난이 가장 심할 때에는 성령의 위로하심은 더욱 더 풍성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다가오는 멸망 곧 궁핍이나 고통이나 지옥이나 무덤을 비웃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시고 그 환란들을 무저갱에 던져 넣으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러한 환란 때에도,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계 21:3,4)하는 "하늘 보좌에서부터 나는 큰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로 난 사람의 세번째 성서적 표적이며 그리고 모든것 중의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 마음 속에 부어져 있습니다"(롬 5:5). "그들이 아들들인고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영을 그들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갈 4:6).

이 영에 의해 하나님을 화평과 사랑의 아버지로 계속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그들의 일용할 양식 곧 육체를 위한 것이거나 영혼을 위한 것이거나 간에 필요한 물건들을 주시기를 간청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이미 받은 줄로 알기 때문에"(요일 5;16) 그들의 마음을 계속하여 하나님 앞에 쏟아놓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쁨이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마음의 '즐거움이요 그들의 방패요 대단히 큰 상급'입니다. 영혼의 소원은 하나님을 향하여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그들의 음식이요 음료인 것입니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그들은 만족해 하며, 한 편 그들의 입은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합니다"(시 63:5)



2. 이런 의미에서 또한 "내신 이(하나님)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요일 5:1). 그의 영이 구주 하나님 안에서 기뻐합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합니다'(엡 6:24). 그는 주님과 밀접히 결합되어서 '한 영'이 되었습니다. 그 영혼은 주님을 의지하고, '만민 중에 으뜸이신, 온통 사랑스러우신'(아 5:10) 주님을 선택합니다.

그는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나에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다"(아 2:16), 또 "당신(주님)은 인자들 보다 아름다우시며, 은혜가 입술에 가득하시니,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영영히 복을 주시나이다"(시 45:2) 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3. 이러한 하나님 사랑의 필연적 결과는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영혼, 곧 우리의 원수와 우리를 능욕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을 우리 자신 처럼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 주님께서는 더욱 강력히 말씀하셨으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기록된 계명은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했으니 그와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으니, 이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요일 3:16).


요한은, 이 말씀에 이어 결론하기를,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우리의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미 죽음의 나라에서 생명의 나라로 옮겨간 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이같이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요일 3:14).

이것으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난 것을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음을 압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사랑의 영을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동 4:13). 사랑은 하나님께로서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하나님을 압니다(동 4;7).



4. 그러나 혹시 어떤 이들은 "사도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곧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니라' 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킨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의미는 또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 낼 수 있습니까? 외적인 계명들(outward commandments)을 지키는 것이 바로 "네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신 말씀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신 말씀이 뜻하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영혼으로부터의 애정이 아니라 단순히 외적으로 나타나는 섬김(an outward service)을 뜻한다고 하겠습니까?


사도 요한의 말씀을 이렇게 거칠게 해석한다면 이는 말씀을 전적으로 파괴해 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이 말씀의 분명한 뜻은, 계명들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요 표시이니 즉 우리가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을 지킨다는 증거요 하나님의 다른 계명들도 지킨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서 일단 흘러나오게 되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도록 강권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5. 하나님을 사랑하는 둘째 열매는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요(순종이 사랑에서 분리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의 뜻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곧 마음으로든 행동으로든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여, 마음과 생활 모두에서의 순종이며, 모든 성품과 모든 행동양식 있어서의 순종입니다.

여기서 뜻하는 가장 분명한 성품의 하나는 "선한 일에 열심하게"(딛 2:14)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대로, 선을 행하려고 선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처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의 전부를 소비하기를, 또 소비되기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보상을 생각하지 않으며, 오직 의인의 부활로서 만족스러운 보상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1. 이렇게 하여 저는 성서가 말하고 있는 것으로서 제가 발견된 신생의 표적들을 평이하게 말하여 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는 중요한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대답하고 계십니다. 만약 이 대답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설명된 것이라면, 이 대답은 곧 "성령으로 난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의 판단으로 보건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또는 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이 말은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음으로, 죄를 짓지 않게 되고 또 언제나 어디에서나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빌 4:17)을 즐기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소망하므로, "선한 양심의 증거"를 가질 뿐 아니라 또한 "여러분들의 영과 더불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죄를 속량하신 하나님 안에서 항상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당신들이 남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이제까지 체험해보지 못한 큰 사랑으로, 당신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므로, 당신들이 모든 사람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도록 강권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곧 마음에서만 불 탈 뿐아니라, 그 불이 당신들의 행동과 대화에 불 붙어서, 당신들의 전생애를 '사랑의 수고'로 만드는 그 사랑을 가지고, 다음의 계명을 계속하여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자비하니 너희도 자비하라", "나 곧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2. 그러면 이와같이 하나님께로 난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요일 3:19).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말씀들을 음미해 본 사람마다 한 진리를 느끼게 되고 알게 되는 데 그 진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닌가 하는 사실입니다(사람에게 하지 말고 하나님께 대답하시요).


문제는 "당신이 세례를 받음으로 어떻게 되었나?"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무엇인가?"(책임을 회피하지 마시오)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양자로 삼으신 영이 지금 당신의 마음 속에 있습니까?" 이 질문을 당신 마음 속 깊은 곳에 던져 보십시오. 나는 여러분이 과거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러분이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할례로 할례 받았던 사실을 인정합니다(사도 바울은 세례란 뜻을 강조하여 할례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스도의 영, 영광의 영이 지금 여러분속에 머물러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할례는 무할례가 되었습니다"(롬 2;5)



3. 그러므로 당신 마음 속으로 "내가 한 때 세례 받았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슬프게도 그 결과는 결코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세례받은 탐욕자와 주정꾼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례받은 거짓말장이와 세례받은 오입장이들, 도둑들 그리고 세례받은 착취자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까? 여러분이 누구이든지, 혹은 위에 말한 세례받은 타락자들 중 어떤 이들과 닮았든지, 나는 여러분에게 진실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여러분의 아비의 행한 바를 여러분들도 행하고 있습니다"(요 8:44). 나는 여러분이 다시금 십자가에 못박은 분의 이름을 새롭게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할례받았던 여러분들의 선배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새롭게 상기시키십니다. "너희 뱀들아! 너희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4. 정말로 당신들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당신들은 지금 죄와 허물로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중생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세례 때 외의 새로 남이란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당신들 모두를, 희망도 없이는 저주 아래 두는 것이요, 아무 도움 없이 지옥에 맡겨두는 결과가 됩니다.


어떤 이들은 타락된 자들을 지옥에 맡겨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물론입니다. 죄인들을 진멸하시요.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시요. 기브온 족속을 남김없이 죽입시다. 그들은 그렇게 되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아니올시다.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없고 여러분들도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나나 여러분이 받아야 할 응보는 저들이나 마찬가지로 지옥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지금 꺼지지 않는 불에 있지 아니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자비 즉 값없이 주시는, 우리가 감히 받을 수도 없는 그런 자비에 의하여 된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그러나 우리는 씻김을 받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지 않았느냐?" 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들 타락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거듭난 것은 문제가 될 리 없습니다. 당신들이나 그들이나 모두 지금 거듭난 상태가 지속되어야 합니다.

당신들은 "사람 중에서 높임을 받는 것이 곧 하나님 앞에서 혐오스러운 것"(눅 16:15)임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이 세상 성인들이여! 와서 보시오. 이 불쌍한 사람들, 이 땅 위에서 살 자격도 없는 사람들, 더러운 창녀들, 간음한 자들, 그리고 살인자들에게 '과연 누가 먼저 돌을 던질 것인가를...'(요 8:1-11참조).


여러분은 오직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요일 3:15),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

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또 "너희 간음한 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된 것임을 알지 못하느뇨?"(약 4:8)라고 하신 말씀들이 무슨 뜻인지를 먼저 배우십시오.



5. 진실로, 진실로,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당신들도 또한 거듭나야 합니다. 당신들이 다시 남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 세례 때 거듭났었다고 하는, 상한 갈대로 만든 지팡이를 이 이상 더 의지하지 마십시요. 당신들이 하나님의 자녀였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자였음을 누가 부인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신들은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거듭나야만 합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한 때에, 사탄이 당신들의 마음을 유혹하지 못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자녀된 표적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배웠습니다. 세례를 받았거나 안받았거나, 당신들의 영혼에 이 표적들이 없다고 하면, 그것들을 받아 들여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심할 여지 없이 당신들은 영원히 멸망받을 것입니다.


만약 당신들이 세례를 받았다면 당신들에게는 오직 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었는데, 지금은 마귀의 자식이라면, 다시금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곧 잃어버렸던 양자의 영, 다시 말하여 '아바 아버지여!' 하고 마음으로 외칠 수 있는 양자의 영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주님의 얼굴을 다시 찾는 준비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양자의 영을 다시 받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들에게 지금 다시 당신의 이름을 믿을 힘을 주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피로 속죄함 곧 죄사함을 얻은 것을 느끼고 알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로 났으므로 죄를 질 수 없음"을 알고 느끼게 하옵소서. 산 소망을 향하여 다시금 태어날 수 있게 하셔서, 주님께서 정결하신 것처럼 그들 스스로를 정결케 하도록 하시옵소서. 그가 "하나님의 자녀이오매" 사랑과 영광의 영이 그에게 머무시므로, 영육 간의 모든 더러운 것들로부터 그를 씻도록 하시오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에 완전한 거룩에 이르도록" 그를 가르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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