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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체험의 완전한 조화, 칼빈주의 메소디즘 - 로이드 존스

by holyway posted Dec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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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체험의 완전한 조화, 칼빈주의 메소디즘/ 로이드 존스


 

칼빈주의 메소디즘은 메소디즘이 신비주의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그들은 교리에 강조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감정에 강조점을 두어 “느껴진” 측면을 강조하면 신비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으며,

잘못된 환각주의나 일종의 “몽환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역사의 무대에 나타났다.

칼빈주의 메소디즘은 교리와 “느껴진” 요소 두 가지가 완전히 조화된 형태이다.

그것은 교리적으로 바른 자리를 지키게 보증해 줄 뿐 아니라

체험의 영역 자체 속에서도 많은 오류를 막아주어

일종의 신령주의로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칼빈주의 메소디즘이야말로 진정한 메소디즘이다.


 

칼빈주의 메소디즘은 참된 칼빈주의라고 나는 주장한다.

메소디스트가 아닌 칼빈주의는 세심히 시험해 볼 필요가 있다.

메소디즘이 아닌 칼빈주의는 지적이고 스콜라적인 데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우리를 붙잡아 주는 진리”에 대해서보다

“우리가 주장하는 진리”에 대해서 더 많은 말을 하게 된다.

메소디즘이 아닌 칼빈주의가 빠지기 쉬운 또 다른 위험은

신앙고백을 “부수적인 표준”으로 삼지 않고 최상 최고의 표준으로 삼아

신앙고백을 성경의 위치에 놓은 위험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이 순서를 거꾸로 할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칼빈주의가 메소디즘으로 교정되지 않으면 생길 수 있는 경향의 위험은

기도할 마음을 막는 성향이다.

칼빈주의 메소디스트들은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교회들은 기도가 특징이었다.

그 기도회는 뜨겁고 감동적인 기도 모임으로

때로는 몇 시간씩 계속되었고 그곳에서 큰 체험을 하게 되었다.

결국 메소디즘이 없는 칼빈주의는,

거칠고 냉랭한 신앙은 말할 것도 없고

기쁨이 없고 딱딱한 신앙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주지주의에서 나오는 것이다.


 

옛 칼빈주의자들은 부단히 “하나님의 찾아오심”에 대해 말했다.

어떻게 주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는지,

주께서 어떻게 그들에게 말씀하셨는지를 언제나 말하였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물러가심”에 대해서도 말했다.

필연적으로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와 활동을 강조하게 된다.

모든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시는 일에 주어진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강한 손이 우리를 붙잡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칼빈주의는 체험으로 유도되고 체험을 크게 강조하게 된다.

그런데 현대 칼빈주의자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성령이 찾아오심과 물러가심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칼빈주의는 칼빈주의의 모조품에 불과하다.

이런 것을 칼빈주의라 하는 것을 나는 반대한다.

참된 칼빈주의 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이 가도록 자극하는 것은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반전되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참된 칼빈주의는 부흥과 하나님의 역사가 “주어진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찾아오심을 강조하게 되어 있다.

칼빈주의가 강력해질수록 영적인 부흥과 재각성의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이것은 교리로부터 필연적으로 나오는 결과이다.

그리고 칼빈주의처럼 기도하게 하는 것은 없다.

기도하지 않는 칼빈주의는 칼빈주의가 아니다.

진정한 칼빈주의는 부흥에 관심이 있다.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최고의 관심거리이다.

세상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하나님이 계신데 세상이 어째서 이처럼 행동하는가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하나님의 영광!

칼빈주의자들의 모든 사고 체계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기다리고 갈망하며 영광을 “보여달라”고 하나님께 졸라대고,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어주시고 일어나셔서 주님의 원수들을 흩으시고,

원수들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며, 주님의 전능하신 팔의 힘을 보여 달라고 간청한다.

이것이 바로 칼빈주의이다.

 



- 로이드 존스, 『청교도신앙 그 기원과 계승자들』, pp299-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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