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적 초자연적 빛 / 조나단 에드워즈
<하나님의 영에 의해 영혼에 직접 수여된 신적 초자연적 빛이 성경적이고 이성적인 교리임을 증명함>”은 에드워즈의 가장 유명한 설교들 중 하나이고, 가장 주요하고 유명할 글들 가운데 하나이다. 성령의 조명을 그는 “신적이고 초자연적 빛”이라 표현한다. 이 영적 조명이 없는 사람은 영적인 사실에 대해 장님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교리에 대한 지성적, 관념적, 사변적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복음이 사실임을 믿고 확신하는 데 이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복음에 대해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필히 성령이 직접 영혼에 비추어 주시는 신적 초자연적 빛이 있어야 한다.
신령한 빛에 관한 에드워즈의 지론을 담은 설교의 본문은 마태복음 16장17절이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에 근거하여 “영적이고 신적인 빛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곧바로 영혼에 전달된 것으로 자연적 수단에 의해 획득된 어떤 것과도 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교리를 제시한다.
신적이고 초자연적 조명이 아닌 것들
첫째, 자연인도 자기의 죄와 비참에 대해 확실한 깨달음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은 특별 은혜가 아닌 자연 은혜의 산물일 수 있다. 일반 은총은 단지 인간이 가진 자연적 능력을 보조할 뿐이다. 그러나 특별 은총은 은혜를 전달하거나 자연 이상의 어떤 것을 부여한다. 그것은 성령의 갱신하시고 성화시키는 역사다.
또 하나의 다른 원리가 영혼 속에 형성된다. 성령을 “성도의 마음 속에 살아서 내주하시는 하나의 원리”로 보는 것은 에드워즈 성령론의 중요한 특징들 중 하나다. 성령의 비중생자와는 연합하지 않으시나 성도와는 연합하신다. 그분은 성도를 자기의 성전으로 삼고 “생명과 행위의 새로운 초자연적인 원리”로서 성도에게 “영향을 주고 그를 움직인다”. 성령은 경건한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자신을 전달”한다. 즉 자신의 고유한 본성인 “거룩을 그에게 전달”한다. 그러한 변화는 죽었던 시체가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신적 초자연적 빛은 “상상력에 새겨진 어떤 인상”이 아니다. 그것은 외적 빛이나 영광, 혹은 형태나 용모의 아름다움, 혹은 어떤 대상의 가시적 광채나 찬란함에 관한 개념도 아니다. 영적 조명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진리를 부각”시킬 뿐 성경에 없는 어떤 새로운 진리나 명제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진리나 교리를 제시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받았던 “영감”이다. 에드워즈 당시 광신자들은 그러한 영감을 받은 척했다.
신적 초자연적 빛
영적 신적 빛은“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신적 탁월성에 대한 진정한 지각” 혹은 “이해” 그리고 “그것들의 진실성과 실재성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이다.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구속의 사역, 그리고 하나님의 길과 사역들”에 대한 “영적이며 구원 얻는 확신들”은 그것들의 신적 탁월성과 영광에 대한 안목이 생겨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신령한 빛이 영혼에 비쳐 우리의 영안이 열릴 때 비로소 복음의 진리를 확실히 이해하고 “보고”, “지각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체험을 가진 하나님이 영화로우시다는 사실을 단지 “이성적으로 믿는”데서 끝나지 않고 자기 마음 속에 하나님의 영화로우심에 대한 감각이 있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선에 관한 두 종류의 지식이 있다. 하나는 사변적이거나 순이론적인 지식이다. 다른 하나는 마음의 감각으로 이루어지는 지식이다. 그것은 어떤 것의 아름다움, 사랑스러움, 혹은 달콤함에 대한 감각이다. 그것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 마음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에드워즈는 견해로서의 지식과 감각으로서의 지식을 구별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시다는 사실에 대한 견해를 갖는 것과, 그 거룩함과 은혜로움의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갖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말씀의 신적 탁월성에 대한 감각이 진리를 확신시켜 주는 두 가지 방법
첫째는 간접적인 방법이다. 이 감각에 의하여 편견들이 제거된다. 자연인의 마음은 하나님의 일들을 적대시하는 편견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성이 성화되어 그것들의 진실성에 대한 논증들의 능력에 개방적으로 된다. 하나님의 일들의 탁월성에 대한 감각은 이성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성을 도와 준다고 한다.
둘째는 직접적인 방법이다. 에드워즈는 영적으로 조명된 사람들이 기독교의 진실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증거는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리들이 신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 신성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속에서 신적이고 초월적이며 아주 분명하게 두드러지는 영광을 본다. 구원 얻는 믿음 속에 있는 “참된 영적 확신”이다. 이 빛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지는 방법에 대해 답한다.
첫째, 자연적 능력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해력을 사용하셔서 그 초자연적 빛을 주입하신다. 둘째, 외적 수단이 이 일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도 아니다. 이 일에서는 복음이 사용된다. 셋째, 스스로의 능력이나 자연적 힘에 의해 작동되는 어떤 수단들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말씀 없이 영적 빛을 얻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말씀이 그 빛을 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먼저, 교리가 우리 정신 속에 있지 않으면 우리는 어떤 교리의 탁월성을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가 계시며 그는 거룩하고 은혜로운 분이라는 인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우리 정신에 전달된다. 그러나 그 거룩함과 은혜 때문에 그가 탁월하시다는 감각은 성령의 직접적 사역이다.
성경적 근거
첫째는 이 주장에 대한 성경적 증거이다. 성도가 불신자들과 다른 점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눈을 가진다는 것임을 성경을 누누이 보여 준다고 그는 주장한다.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일3:6).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요삼1:11).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요14:19).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이러한 지식은 사변적인 지식일 수는 없다. 그것은 “보는”것과 “아는”것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따르면 이러한 빛과 지식은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마11:25-27)“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이 지식을 주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과 역사로 되어 있다. (고후4:6)“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그것은 마치 빛이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능력과 의지의 직접적인 결과다. 하나님이 천지창조 시에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빛을 만드신 것에 그것이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의 회심시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주신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갈1:15-16). 하나님의 섭리, 은혜 언약, 그리고 자기 백성들을 향한 은혜의 방도에 대한 지식이 성도들에게 고유한 것이며 오직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시25:14). 이런 발견으로부터 복음의 진리에 대한 “참되고 구원 얻는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요12:44-45)“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그를 영적으로 보는 것이 병행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성적 근거
에드워즈는 신적 사물들 속에 너무나 초월적이고 달라서 만일 그것을 보기만 한다면 명백히 여타의 것들과 구별될 수 있는 그러한 탁월성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이성적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가장 현명한 인간의 말조차도 상대적으로 비천하고 저열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그러한 탁월성과 숭고함, 지혜, 거룩함, 위엄, 그리고 다른 신적 완전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성적이라는 것이었다.
에드워즈는 또 이러한 지식이 자연적 수단에 의해 획득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그처럼 신성하고 탁월한 성격을 가진 지식과 지혜는 하나님이 보유하시고 직접 수여하시지 이차적 원인의 능력에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적 지혜와 은혜는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부여하시는 가장 높고 탁월한 선물이다. 이성적 피조물의 최고의 탁월성과 완전성, 그리고 인간의 행복과 복지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그는 확언했다. 영적 일들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보는 것은 이성에 속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사변적인 일이 아니라 마음의 감각에 달린 일이었다.
양낙홍,『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제2부3장 신적 초자연적 빛 pp18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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