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말씀을 풀어서 옮기면 이런 뜻이다. “요한은 선지자이다. 그는 내가 복음을 전하도록 내 앞에 먼저 나타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제로 전파한 사람이다”. “하지만 요한이 그처럼 놀라운 메시지를 전하였고 나도 이런 사역을 해왔지만 너희들의 대다수는 전혀 복음에 관심도 없고 반응도 없다. 너희들은 마치 요한이 나타난 적도 없고 나도 이 세상에 온 적이 없었던 것처럼 여기면서 사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듣고 하나님 나라로 몰려 드는 자들이 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본절의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들이 난폭한 죄인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의 이 말씀은 이렇게 옮길 수 있다.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이 메시지의 진리를 깨달은 자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몸부림 친다. 이 일의 긴급성을 그들이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본절은 긴급성에 대한 서술을 침노라는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시를 하나 들겠다. 불난 집에 갇힌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본시 조용하고 양전한 성격을 가졌다. 그는 어떤 일에도 흥분하지 않는 매우 침착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불난 집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속히 집에서 빠져 나가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것을 지각한다. 그는 갑자기 격렬해지면서 자기 생명을 구하기 위한 탈출구를 맹렬히 찾는다. 그는 더 이상 조용하게 가만히 앉아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불에 타 죽게 되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화급해지고 격렬한 몸짓으로 살 길을 찾는다. 그는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인식한 자이다. 그래서 그에게 과격한 성격이 나타나고 황급하게 탈출을 시도한다.
본문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절급성을 시사한다. 주님의 말씀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은 이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침노하는 사람들과 같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을 믿은 자들은 누구나 이러한 화급성을 지각한 사람들이다.
우리들의 현실은 아직도 옛날과 같지 않은가? 우리들의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문제들이 산적해도 대다수 사람들의 인생관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한다. 본인은 어떤 영화배우가 이렇게 말한 것을 신문에서 읽었다. 그녀에 의하면 런던은 정말 멋진 곳이라는 것이었다. 그 까닭은 런던에서는 새벽 3시까지 먹고 마시고 실컷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자세로 일생을 산다. “현재의 순간이 중요하다. 이 순간을 최고로 즐기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죄로 인해 생긴 무관심이다. 이것은 인생의 실체를 직면하지 않는 실패이며 경고의 소리에 귀를 막은 소치이다.
그럼 사람을 ‘침노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례 요한의 설교이다. 둘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이다. 요한의 설교 방식은 외치는 것이었다. “다가올 진노에서 피하시오.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습니다”’ 그의 설교는 단순히 가지를 쳐 주는 정도가 아니고 그보다 더 중요한 심판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는 앞으로 오실 자에 대해 외쳤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것이 요한의 메시지였다. “회개하십시오.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죄를 풀어 놓고 용서를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과의 그릇된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시오”. 요한의 설교는 어떤 이들을 침노하는 자로 만들었다. 그들은 요한의 메시지를 깨닫고 그에 따라 행동하였다.
20세기의 모든 지식과 배움에도 불구하고 현 세대는 가장 잘못된 사회를 이루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인류 역사에서 현대처럼 발전을 이룩한 때가 없는데도 왜 이 사회는 중세기의 어둠으로 들어가는 듯하는가?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가? 오직 한 가지 적절한 대답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회개의 메시지를 담은 성경책이다. 이 복음의 메시지에 직면하고 그 절급성을 깨닫는 자는 침노하는 자가 된다.
감사하게도이 영광스런 침노를 위해 권유의 말씀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설교이다. 내가 불 속에 갇혀 있다는 위험을 직시하면 탈출구를 찾는다. 그런데 나를 위해서 주님이 어떤 일을 해 놓고 기다리고 계신지를 알면 나의 탈출 시도는 한없이 더 절급해진다. 사람들이 자신의 상실된 상태를 깨달으면 두려워한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보면 그것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그럼 이 영광의 복음이 제공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모든 영광을 다시 한번 간단하고 쉬운 말씀으로 옮겨 보겠다. 세례 요한의 뒤를 이어 오셨던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곧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우리들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 이것이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가 지닌 뜻이다.
여러분, 여러분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죄의 용서를 제공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새 생명과 하나님 자신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 자신과의 교제의 삶을 제공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가슴에 기쁨과 평강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스러운 삶을 영원토록 당신이 누리기를 원하신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라는 일을 행하고 그분을 믿으면, 비록 이 세상이 당신을 괴롭혀도, 비록 전쟁과 기근이 닥쳐도, 비록 이 세상이 당신을 저버리고 당신을 죽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학살을 당하여도 당신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 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당신에게는 죽음과 무덤을 넘어 영광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다. 이 메시지를 깨달은 자들은 침노하는 자들이다. 절대 다수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나라 속으로 몰려드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요한의 말을 믿었던 자들이었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었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위험을 보았고, 구원의 길도 보았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이 구원을 가져야 한다. 구원을 받기 전에는 결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침노하게 한다.
이 침노하는 자들에게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자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침노하는 자들의 우선권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영혼의 구원을 첫째로 삼는 자들이다. 이것이 당신의 우선 순위인가? 당신의 영혼과 당신의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가 다른 어떤 문제보다 제일 먼저인가?
침노하는 자들의 두번째 특징은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사력을 다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 최대의 문제에 직면해 보았는가? 당신이 하나님 나라에 확실히 들어가 있는 것을 알려고 힘써 보았는가?
침노하는 자들의 세번째 특징은 그들이 받은 정보와 지식과 권면을 아주 즐겁게 받고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들은 불난 집에 갇혀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있는지를 안다. 그들에게는 비상 출구를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그때 “이것이 비상구다!"라고 말하는 음성이 들린다. “나를 따르라. 나는 비상 탈출구의 길을 만들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내가 있는 쪽으로 오라!” 다시 말해서, 침노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가서 자신들의 죄를 인정한다. 그들은 논쟁을 그치고, 똑똑한 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지닌 문제가 지적인 것이 아니고 도덕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 그들은 “너의 죄와 네가 지금 잘못하고 있다고 아는 그 모든 일들에서 떠나라. 그리고 이 세상의 풍조와 사고 방식과 그 가치관을 모두 버리라. 이 세상의 모든 죄악과 하나님께 대한 일체의 모독과 세속의 모든 사상들을 버리고 너는 내게 와서 나를 따르라". 침노하는 자들은 이 말씀을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
침노하는 자들의 마지막 특징은 그들이 불로부터 탈출했다는 것을 확지(確知)할 때까지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난 집 안에 있는 자는 빠져 나가지 못하면 타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탈출할 때까지 계속 출구를 찾는다. 성도들의 생애를 읽어 보시라. 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전기들을 읽어 보시라. 그들은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비상 탈출구를 향해 달려간 자들이었다. 그들은 일단 자기 영혼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못하고 이 세상에 사는 위험을 직지(直知)했을 때, 그들이 하나님을 대면할 날이 올 것을 지각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 속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확지할 때까지 조금도 쉬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을 읽었고 기도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행하였다. 그것이 침노하는 자들의 특징이다.
- 로이드 존스, 『복음의 핵심』, pp 9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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