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설교19장.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는 의(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주님은 17절~20절에서 그의 사역의 특징을 요약하고 있다. 특별히 20절에서 주님은 율법과 선지자들에 대한 그의 입장, 특히 율법에 대한 입장을 정의 하고 있다.
1. 왜 이런 입장표명이 필요한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친구가 되었으며 그 당시 성경해석의 표준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율법 해석을 비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은 율법자체를 무시한다고 오해했다. 하지만 그의 가르침은 결코 율법과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모순되지 않는다. 다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율법 해석과 차이가 날 뿐이다. 그의 오신 목적은 율법을 폐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율법을 지킬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극히 작은 계명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2. 왜 하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을 언급하시는가?
서기관들은 시간의 대부분을 율법을 가르치며 해석하는데 사용했던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이다. 바리새인들은 거룩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모세율법보다 더 엄격한 규칙을 만들어 준수했다.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까지 십일조를 내고 1년에 한 번 하면 되는 금식을 일주일에 두 번씩 했다. 일반 백성들은 이 사람들을 ‘의’와 ‘거룩’의 표준으로 생각했다. 주님이 이 사람들을 언급하시는 이유는 일반 백성들이 이 사람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공허한 가르침과 대조하여 제자들에게 참된 가르침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3. 그렇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종교 생활은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마음이 아닌 외적이고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했다.
둘째, 그들은 도덕(본질)보다 의식(형식)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율법의 요구를 궁극적으로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죄를 합리화 하는데 의식을 이용했다.
셋째, 그들 자신과 자신의 의에만 관심을 가졌다.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높이는 것이 목표였다.
넷째, 팔복에 묘사된 영적 특징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원리(마음)보다 행동에 관심을 가지며, 사람됨보다 행동에 관심을 가졌다.
4. 주님이 율법에 대해 가르치시는 것은 무엇인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바리새인들의 생활보다 더 훌륭해야 한다는 행위구원을 가르치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구원이 은혜이므로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아니다. 19절에서 주님은 이미 지극히 작은 계명도 지켜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주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참으로 받은 증거는 의로운 생활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죄가 용서 받았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새 생명과 새 성품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속에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게 된 제자의 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능가하게 된다. 그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는 대조적으로 외적 형식이 아닌 내적 본질을 붙든다.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팔복의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에게 십계명(율법의 대표)은 가혹하고 고통을 주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의 법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