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重生)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구속하신 자들을 성령께서 구원하신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다. 중생(重生)은 이미 구원 받은 성도들이 과거에 받은 은혜이다.
17-1. 중생의 의미
중생(重生, 거듭남)이란 죄로 인해 죽은 영혼이 다시 사는 것, 새 생명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구원이다.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며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중생이 필요하다. 에베소서 2:1, 5,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요한복음 3:3,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중생의 새 생명은 '하나님의 씨'로서 다시 범죄할 수 없는 원리이다. 이것을 '새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영혼에 심어짐으로써, 사람의 영혼의 지배적 성향은 거룩해진다. 거듭난 자는 새 마음을 받는다. 옛 사람은 무지와 도덕적 불결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성도는, 비록 그에게서 옛 죄악성이 완전히 뿌리뽑힌 것은 아니지만, 여실히 하나님을 알고 의로운 삶을 지향한다. 에베소서 4:22, 23, "유혹의 욕심을 따라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 . .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17-2. 중생의 방법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오직 성령에 의해서이다. 중생은 성령의 주권적(主權的) 활동이다. 요한복음 3:5, 6, 8, "물과 성령으로(에크) 나지 아니하면 . . . 성령으로 난 것은 . . . 성령으로 난 사람." 성령께서 원인자이시다. 디도서 3:5,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죽은 영혼은 스스로 살아나지 못하며, 살리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협력하지도 못한다. 중생에 있어서, 죄인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그러나, 비록 유아들의 경우는 예외이지만, 성인들의 경우 중생은 주로 복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도는 죄인의 거듭남과 구원을 위해 필수적 수단이다. 야고보서 1:18,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 . .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중생의 내면적 이치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공로를 죄인에게 적용하심으로, 즉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주심으로 새 생명을 심으시는 것이다. 죄의 형벌은 죽음이었고 죄 씻음은 생명이다. 베드로전서 1:3,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에베소서 5:26,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히브리서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물 세례는 죄 씻음을 상징한다.
17-3. 중생의 증거
중생의 증거는 믿음이다. 요한복음 1:12, 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 . .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3:16, ". . .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음은 지정의(知情意)의 요소들을 포함한다. ①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지식을 포함한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결코 지식 없는 맹목적 믿음이 아니고, 최소한의 복음지식이라도 가진 믿음이다. ②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③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로마서 6:17,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참 믿음은 마음의 순종이다.
중생의 증거는 또한 회개이다. 요한일서 2:29, ". . .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요한일서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누가복음 5:32, "나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노라."
회개도 지정의의 요소들을 포함한다. ① 회개는 자신의 죄인됨과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는 것이다. ② 회개는 자신의 죄악됨을 슬퍼하고 죄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③ 회개는 자신의 죄악들로부터 실제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즉 회개는 죄악되었던 옛 생활 방식을 여실하게 청산하는 것이다.
중생(重生)
5-1. 중생의 의미
성경은 구원을 또한 중생(거듭남)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중생(重生, 거듭남, regeneration)이란, 죄로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산 결과, 중생한 자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새로워진다. 그는 새 사람이 되고 새 마음을 가지게 된다.
성경은 중생을 '하나님께로서 남,' '거듭남,' 혹은 '성령으로 남'이라고 표현한다. 요한복음 1:13,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3:3, "사람이 거듭나지(겐네데 아노덴) 아니하면." 요한복음 3:5, 6,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야고보서 1:18,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아페퀴에센)." 디도서 3:5, "중생의(팔링게네시아스)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역사적으로 볼 때, 초대교회의 어거스틴은 중생과 회심을 구별하여 중생은 마음의 시초적 변화로서 하나님의 단독적(單獨的, monergistic) 사역이며, 회심은 중생에 따라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중생을 하나님의 단독적, 주권적 사역으로 본 것은 성경적이다. 그것은 종교개혁자 루터나 칼빈의 사상이었고, 오늘날 개혁신학의 기본 입장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중생과 칭의를 명확히 구별하지 않았다.
초대교회의 펠라기우스는 중생을 사람이 자기 생활과 습관을 도덕적으로 개선하는 행위 정도로 보았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본질적으로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진다. 교회 역사상 어떤 이들은 중생을 하나님과 사람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으로 보았다. 이런 견해를 신인협력설(神人協力說, synergism) 혹은 반(半)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라고 부른다. 근세에 나타난 알미니우스주의는 본질적으로 이런 견해와 같다. 한편, 로마 천주교회는 사람이 세례를 통해 부패성이 제거되고 의가 주입(注入)됨으로써 중생된다고 보았다. 이것을 세례중생설 혹은 주입은혜의 교리라고 부른다.
5-3-1.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
첫째로, 중생은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다.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었고 전적으로 부패되고 무능력해져 있었다. 로마서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혹은 '절망적으로 악한') 것은 마음이라."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죽은 영혼은 스스로 살아나지 못하며, 하나님의 활동에 협력하지도 못한다. 죽은 자는 자신의 부활을 도울 수 없다. 따라서 중생에 있어서 그는 전적으로 피동적(被動的), 수동적(受動的)이다. 그것은 마치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나사로야 나오라'고 불러내실 때 죽은 나사로가 주의 음성에 협력할 수 없는 것과 똑같다. 선지자 에스겔이 에스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향해 대언할 때도 오직 하나님의 역사로만 그것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겔 37장).
그러므로 중생은 하나님의 단독적(單獨的), 주권적 활동이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중생에서 사람은 전적으로 피동적(被動的)이다. 중생에서 사람의 의지는 협력적 원인이 될 수 없다. 물론 하나님께서 단독으로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 때문이다. 성경의 많은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을 중생시키심을 증거한다.
에스겔 11:19,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3:5,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성령으로'(엑스 프뉴마토스)라는 말은 중생에서 성령께서 원인자이심을 보인다. 요한복음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에베소서 2:1, "[하나님께서] 허물들과 죄들로 죽었던 너희들을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4, 5,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디도서 3:5,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 . .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중생시키실 때 주로 복음의 말씀을 사용하신다. 따라서 성경은 말씀을 중생의 수단이라고 표현한다. 야고보서 1:18, ". . .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유아들의 경우는 다르나, 성인들의 경우 중생은 복음을 듣고 믿는 것과 동시적이다. 그러므로 우리편에서는 오직 전도에 힘써야 한다.
둘째로, 중생은 영혼의 지배적 성향의 변화이다. 중생은 중생한 자의 이전의 영혼과 새 영혼이 실체적으로 교환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그 자신이다. 그의 영혼은 동일하다. 그 동일한 영혼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또한, 중생은 영혼의 지정의(知情意)의 기능들 중의 일부나 전부가 단지 새로와지는 정도도 아니다. 죽은 영혼이 다시 산다는 것은 그 이상의 무엇을 의미한다. 물론, 중생은 중생한 자가 범죄할 수 없는 존재로 완전하게 변화되는 사건도 아니다. 사람은 중생한 이후에도 여전히 죄를 짓는다. 그것은 성경도, 경험도 증거하는 바이다.
중생은 영혼의 지배적 성향(governing disposition)의 변화이다. 중생 사건에서 하나님의 영께서는 영적으로 죽은 죄인들 속에 새 새명의 원리를 심으셨고,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산 결과, 중생한 자의 영혼의 성향, 의향, 혹은 마음가짐이 근본적으로 새로워진다. 그는 새 마음을 받는다. 비록 옛 죄악성이 그의 인성에 남아 있어 자주 실수하고 실패하기도 하지만(롬 7장), 그의 영혼의 이 새 성향은 의를 지향하고 의만을 지향한다. 그것은 다시 불경건과 부도덕의 죄악성에 굴복할 수 없는 새 생명의 원리이다.
에스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베소서 4:22, 23, "유혹의 욕심을 따라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요한일서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새 생명]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중생의 증거는 회개와 믿음이다. 중생한 자는 죄를 깨닫고 죄로부터 돌이키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일서 2:29,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요한일서 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로서 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7, ". . .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한복음 1:12, 13, "영접하는[영접한]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3:16의 말씀도 요한복음 3:3, 5의 중생에 대한 말씀과 관련해 생각하면, 중생으로 얻게 되는 영원한 새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확증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요한일서 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중생한 영이 범죄치 않는다는 견해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중생한 영은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를 입어 다시 살았으므로 그것이 범죄한다면 다시 죽어 그리스도의 대속이 무효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은 범죄할 수 없다. 중생한 사람이 범죄하는 것은 영이 아니고 심신(心身, 몸과 마음)이다. 영과 심신(心身)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며 죄성은 심신에게만 있고 영은 완전 성결하다. 믿는 사람에게 영의 구원은 이루어졌으나 육의 구원은 아직 안 이루어졌으므로 그의 심신은 중생한 영의 지배를 받아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이 견해의 주요한 근거 구절은 요한일서의 다음 몇 구절이다: 요한일서 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한일서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중생한 영이 범죄치 않는다는 견해는 이상의 구절들을 중생한 영에 관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견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영과 심(心, 마음)이 존재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전통적 개혁신학이 이해하는 대로, 사람은 영(프뉴마) 혹은 영혼(프쉬케)과 육(소마)의 두 실체로 구성되었고, 마음은 영의 기능이다. 육은 물질적 실체이며 자체적으로 지정의(知情意)의 기능을 가질 수 없다. 물론, 영육의 결합체로서의 인간의 마음이 순전히 영의의 활동만인가하는 질문은 정당한 질문이다. 영육의 결합체로서의 인간의 마음은 순전히 영의 활동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의 마음은 육과의 결합 속에서 생성된 마음이다. 사람이 죽기 전에는 영육의 존재적 분리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육과 분리된 영에 대해서만 무엇을 논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요한일서의 구절들은 실상 중생한 영의 문제가 아니고, 중생한 사람의 문제이다. 만일 그것이 중생한 영의 문제라고 한다면, 요한일서 전체의 교훈의 필요성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요한일서는 중생한 성도가 의를 행하고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이 범죄하느냐 않느냐 하는 문제는 요한일서의 교훈의 강조점에서 볼 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생한 사람이 범죄치 않고 의를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요한일서의 강조점이다.
요한일서의 표현들은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이해하는 대로 동사의 현재시제의 현재진행적, 반복적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한다"는 3:6의 말씀은 주 안에 거하는 자, 즉 중생한 영이 아니고 중생한 사람이 현재진행적으로 혹은 반복적으로 범죄하고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잠시 넘어졌을지라도 즉시 일어나 회개하고 의롭게 살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라는 3:9의 말씀도 중생한 자가 계속 죄를 짓고 있거나 죄 가운데 살고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 생명이 그 속에 심어졌고 그 새 생명은 거룩하고 의롭게만 살려는 새 성향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생한 자가 범죄하면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가 무효화 되리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법적인 칭의와 실제적인 성화를 오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생한 자가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에 근거하여 법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을 때, 그의 죄책(罪責) 즉 하나님 앞에서의 법적인 책임은 제거되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하고 영원한 의를 전가(轉嫁)받았다. 그러므로 중생한 자에게 죄성(罪性)이 아직 남아 있고 그가 종종 범죄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성화의 전 과정은 실상 죄책 없는 죄성의 문제요 결코 정죄될 수 없는 과정이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는 단지 중생한 자의 영에게만 적용되지 않고 영육의 인격 전체에 적용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은 전인적(全人的) 구원이다. 성도의 중생뿐 아니라 또한 성화와 영화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의 구원과 육의 구원을 분리시켜 중생한 자의 현실적 죄 문제에 연관시키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택자들의 모든 죄 곧 영육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이 범죄치 않는다는 적극적 진술은 성경적인 근거가 약하다. 역사적 개혁신학은 그런 진술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생한 자에게 있어서 육과 분리된 영의 순결성과 완전성을 추론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베드로전서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카타 테스 프쉬케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톤 살키콘 에피두미온) 제어하라." 이 구절은 '육체의 정욕'과 '영혼'을 구별하고 대조시킨다. 이것은, 육체 혹은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을 대조시키는 구절들과 다르다(롬 8:4-6; 갈 5:16, 17).
또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37문) "신자들은 죽을 때 그리스도께로부터 어떤 유익들을 얻습니까?" 답) "신자들이 죽을 때 그 영혼들은 거룩에 있어서 완전해지며 즉시 영광으로 들어가고, 그 몸들은 그리스도와 여전히 연합된 채 부활 때까지 그들의 무덤들에서 쉽니다." 신자들이 죽을 때 그 영혼들이 즉시 완전히 거룩해진다는 생각은, 육과 분리된 중생한 영의 완전한 순결성의 가능성을 생각케 한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