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여전히 옛사람을 벗지 못하고 사탄의 형상을 입고 있는 자들에게
여전히 옛사람의 폐허 속에 누운 채, 그들의 삶 속에 짐승의 형상을 담고, 그들의 마음 속에는 사탄의 형상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 몇 가지 권면과 경고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새로운 피조물의 상태를 추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권면합니다. 당신의 마음이 다른 것에 열중해 있느라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일을 무시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만약 새로운 피조물의 상태에 이르지 못한다면, 분명히 두려운 결과에 빠질 것입니다. 복음 아래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으면서도, 옛 본성의 고집스러움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일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너그럽게 여기지 마십시오. 옛사람을 가장 엄격하게 대하십시오. 아브라함이 하갈을 보낸 것처럼 그것을 멀리 보내 버리십시오. 다시는 돌아올 희망을 갖지 못하도록 물 한 병도 주지 말고 보내십시오.
그러해야 함에도 당신은 어떻게 이 원수를 품에 품고 안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그것이 당신의 일부인 것처럼, 마치 독이 없이는 살 수 없고 불행이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을 그렇게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에게서 무슨 몹쓸 것을 발견했기에 당신은 그분의 형상을 무시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당신에게 새겨져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에게 탄원하시는 성령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구주께서 육신으로 오셨을 때 누우셨던 마구간보다 더 천한, 잡동사니 쓰레기 같은 우리지만, 우리 주님과 성령이 머무시는 성소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눅2:14)라고 노래 불렀던 것처럼 ,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서 태어날 때에도 그러한 찬송을 높이 부르게 될 것입니다. 평화와 영원한 사랑이 이러한 영혼들에게 넘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마음 속에 심한 갈등과 양심의 고통이 있는데도, 어떠한 진전이 없다면, 이러한 고통과 갈등은 당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당신의 저주받은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도록 다음 몇 가지를 더 설명에 드리겠습니다.
1. 현재의 상태가 비참하지 않습니까?
당신을 ‘진노의 자녀’(엡2:3)로 만드는 것은 하나의 본성입니다. 이 옛 본성은 하나님께 혐오습럽습니다. 옛 본성은 사탄의 불결함이며, 뱀의 독이고, 비틀어진 문둥병입니다. 거기에서는 지옥의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그러하다면 다른 본성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익숙하지 않은 심각하고 비참한 죄를 범하였을 때, 그것을 피할 수 있다면 기쁘지 않겠습니까? 한 가지 죄를 피하여 개혁하는 것이 그렇게 기쁜 일이라면, 본성 전체를 개혁하는 일은 얼마나 더 기쁘겠습니까?
부패는 당신의 불명예요, 영혼을 해치는 독이요, 불행의 원인입니다. 따라서 이 저주 받은 옛사람을 당신에게서 떼어 내고, 그것을 정복하기까지 쉬지 마십시오. 당신의 내장과 골수에 박
혀 있는 것이라고 결코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영원한 행복과 관련된 것에서는 어떠한 변명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2. 탁월한 다른 상태에 이르고 싶지 않습니까?
원형과 가장 가까운 작품을 탁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하다면, 영혼의 행복이란, 그 참된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점 없는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 원래 만들어졌던 그 목적에 마땅히 종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사는 것, 하나님의 형상이 당신에게 새겨지는 것, 그리고 당신의 영혼이 그분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것, 이러한 것들 외에 더 탁월한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무한한 의로움과 닮게 만드는 것이 불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사람의 최고의 완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서 당신과 닮은 것을 거울로 보는 것처럼 보실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죄와 사탄이 그렇게도 더럽게 지워 버린 그것을 더욱 생생하고도 영속적인 색깔로 다시 그리는 일이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원래의 부패함은 당신의 건강을 해치고, 당신의 순결함을 더럽히며, 당신의 자유를 손상시킵니다. 그러나 거듭남은 그 건강을 회복시키고, 그 더러움을 쫓아내며, 그 족쇄들을 끊어 버립니다. 이와 같이 후자의 더 나은 탁월함이 당신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3. 새로운 피조물의 명예스러움을 누리고 싶지 않습니까?
세상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그 하나님의 본성에 참예하는 것이, 옛 본성의 결과로 쓰레기 잡동사니요 하나의 병이기도 한, 지저분한 욕정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더욱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영혼이 몸보다 더욱 탁월한 것처럼, 영적인 존재와 그 뼈대는 육체적인 것보다 더욱 명예롭습니다.
자연적인 출생에 의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보다도 하나님과 새로운 피조물 사이에 있는 관계가 더 위대합니다. 새롭게 된 사람은 자기 안에 전체의 신적인 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만물이 일어나서 당신이 복되다고 외칠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이루게 된 그것으로, 복된 마리아가 그 자궁 속에 그리스도를 잉태한 것보다 그리스도와 더욱 연합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적인 형상으로 주형(鑄形)되는 것보다 더 명예로운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4. 이러한 즐거움이 당신을 매료시키지 않습니까?
태양에서 빛이 나오는 것처럼, 반드시 새로운 상태에서 즐거움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즐거움이 없는 새로운 상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감각적인 즐거움은 감각에 속하고, 지적인 즐거움은 이성에 속합니다. 그러하다면 신적인 즐거움은 신적인 본성에 속한 것입니다. 지혜의 모든 길은 ‘즐거운 길’(잠2:17)입니다.
무한한 완전함에는 무한한 행복이 수반됩니다. 신적인 원전함의 특성을 더 많이 가질수록, 당신은 신적인 행복을 더 많이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완전함 속에서 무한한 즐거움을 느끼십니다. 당신 자신을 즐기시고, 당신 자신을 바라보시는 것이 그분의 행복입니다.
즐거움은 영혼 속에 그려진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과 사랑에 대하여 가지고 계신 즐거움의 정도에 따라서 새로운 피조물의 즐거움의 정도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것입니다.
5. 당신은 자신이 사탄의 원수임을 고백하십니까?
사탄은 사람으로 하여금 큰 죄악들에 빠지게 하고, 그들을 죄 아래 묶는 어둠으로 인해서 희열을 느낍니다. 그의 주된 활동은 사람들을 자기와 닮게 만들고, 그 닮은 모습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세상이 사탄의 형상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온 세상은 악함 안에 처한 것이며”(요일5:19).
자연인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사탄과 자연인은 서로 눈짓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사탄은 낙원을 마치 불행한 곳처럼 오해하게 함으로써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의 궁전에 이르게 되는 첫 번째 관문인, 죄인됨의 확신을 억압시킵니다. 사탄을 만족시키지 마십시오. 사탄의 비참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그 형상으로부터 멀리 도망쳐 버리십시오.
6. 속에서 우러나오는 올곧은 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당신 안에 깨어 있는 이성이 당신에게 호소하고 있는데, 왜 당신은 당신의 감정을 거스르려고 합니까?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탄을 섬기는 일입니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입니까? 당신이 어떠한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더욱 합당합니까? 사람 안에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본능이 내재해 있지 않습니까? 아담은 그것을 부당하게 갈망하였습니다. 그와 똑같은 영이 그의 후손의 피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이 그것을 합당하게 원하며, 또한 성공적으로 얻을 수 있는 한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그것을 당신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원천으로 되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강물은 바다로 흘러 그 안에서 새롭게 형성됩니다. 햇살은 사물을 비췬 뒤에 반사되어서 다시금 태양을 향하여 되돌아갑니다. 그런데 왜 영혼은 하나님께로 되돌아가지 않는 것입니까? 그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사람은 따로 서 있어야 할까요? 그의 본성이 개혁되는 것 외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길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첫 번째 머리, 곧 아담 안에서 이것을 한 번 가졌다가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머리인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있고, 이제는 영원히 소유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찾으려고 힘써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원래의 형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그분에게로 되돌아가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영혼이 되돌아가겠지만, 도덕적으로 그분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없이는, 그래서 하나님과 같은 형상을 갖게 되는 것이 없이는, 그렇게 되돌아간다고 해도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7. 새 본성만이 행복을 알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것 외에 다른 어떠한 것도 당신에게 은혜를 줄 수 없습니다. 그 본성이 사라진 아담이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도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것처럼, 당신에게 새 본성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행복을 더 이상 누릴 수가 없습니다.
아담이 그 본성의 순결함을 잃어버린 뒤에는 창조세계의 가장 최상의 것도 그를 치료할 수도 없었고, 또한 만족시킬 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행복한 곳에서 그는 자신의 양심으로 인하여 더욱 괴로움을 겪었을 뿐입니다.
아담에게 유일한 소망은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뿐입니다. 그 후손으로 인하여 그의 이전 형상이 부분적으로나마 회복되어야만 행복한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8. 가장 낮은 자에게도 자격이 주어집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낮은 사람조차도 이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힘을 내십시오. 새창조 안에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골3:11) 계십니다. 곧 어떠한 차별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알려져 있는 이방인들 중에서 가장 조야(粗野)하고 교양이 없는 자들로 여겨졌던 스구디아인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재능이 우리에게 특혜를 재공하지 않고, 세상적인 부족함이 우리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가장 저급한 자라고 하더라도 가장 최상의 영혼과 똑같이 새창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새사람을 옷 입는 것에는 그 어떠한 것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에 의하여 성취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연약한 재능 밖에 없는 사람이 더 빨리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교만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만함이야말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큰 방해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자신의 형상만을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휘황찬란한 모습과 지혜에 현혹되시지 않습니다. 어리석을 제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졌을 뿐, 우리 구주께서 성전의 외적인 영광에 현혹되지 않으셨던 것과도 같습니다.
9. 새생명의 탁월한 특권을 누리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새생명을 주심은 당연히 하나님의 역사이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는 여러 수단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 수단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도덕의 교훈들을 지키는 사람은 도덕적 습관들을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새창조를 얻을 수 있도록 말씀 속에 기록된 규칙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 사람 안에 그것이
형성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더욱 분명한 것은, 그것이 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도덕적인 개혁을 행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새 마음들을 창조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규칙으로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원래부터 있었던 그 부패함에 대하여 민감해지십시오
아담이라는 거울로 당신을 보십시오. 두려운 타락의 결과를 묵상해 보십시오. 말씀이 가르치고 있는 대로 당신의 본성의 적대감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견해를 취하십시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추구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죄와 비참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자기를 비우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본성이 충분히 선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비참해지고 가련해집니다. 또한 스스로 변화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심히 겸비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당신을 낮추십시오. 당신의 부패한 본성에 대하여 탄식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녹아져 눈물로 자신을 적시십시오. 피곤하고 짐이 무거워서, 그것이 힘들어 참회할 때, 예수님께서 안식을 주시되 먼저 거듭나게 하실 것입니다. 마음이 새로워지기 전에 먼저 그것이 녹아져야 합니다. 교만함은 우선 꺾여야 합니다. 본성적으로 악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볼 때에도 악한 자이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자에게’(시34:18) 가까이하십니다.
3) 새로운 피조물의 탁월한 상태를 묵상하십시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할 필요성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는 것이 명예로움을 때때로 생각하십시오. 만일 당신의 지식이나 도덕, 혹은 선한 의도 등에 의존하려는 생각이 일어나거든,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당신의 영혼을 향하여 말하십시오.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
내적인 변화도 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당신을 우쭐하게 하는 생각이 떠오르거든, 사탄이 당신이 행복을 얻지 못하도록 훼방하고 있음을 아십시오.
4) 얻을 때까지 부단히 애쓰십시오
하나님의 손에 있는 그것을 얻을 때까지 쉬지 않겠노라고 단단히 결심하십시오. 아마 이전에도 결심을 한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다른 일들 때문에 그 결심이 흩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원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품만 하고 있으면서 무언가를 바라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여서 실행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열심히 찾는 피조물을 무시하거나, 진지하게 추구하고 있는데 도와주시지도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실 것이라는 가르침이 성경에 있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목적하고 강렬하게 추구한다면, 능력이 부족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또한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허망한 농담으로 당신의 결심을 바로처럼 날려 버리지 마십시오. 감각적인 쾌락 속에 당신의 결심을 빠뜨려 버리지 마십시오, 다윗과 같이,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시119:106)라고 고백하십시오.
5) 기도하십시오
거듭남은 옛 본성의 이끌림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하늘로부터 임하는 도움을 진지하게 구하십시오. 그것은 무릎 꿇음으로 가장 잘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기의 원천입니다. 그리스도에게로 가십시오. 그분 안에는 은혜의 충만한 것이 보물처럼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달라고 진지하게 구하십시오. 당신 안에 이 형상을 그려 주시는 위대한 화가로 임명되신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도대체, 당신은 이러한 은혜를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당신으로부터 이러한 목적을 위한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계십니까? 옛 본성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귀신과도 같습니다. 금식과 기도 외에는 쫓겨나지 않습니다.
영혼의 위대한 변화는 주로 기도와 말씀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을 올려다보며 의존하게 되는 그 시선으로 우리의 영혼 속에는 점진적인 변화가 있게 됩니다. 기도와 묵상 속에서 자주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통하여, 당신은 그분의 거룩함을 닮아 갈 것이며 그 속에서 점점 성숙해질 것입니다.
6) 부지런히 말씀을 살피십시오
당신을 새롭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 변화의 도구로서 지정하신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명예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의 젖을 빨아 먹음으로써 영혼 속에 그분의 형상을 이루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옛 본성이 거듭나게 되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고 율법과 함께 선포되는 복음의 역사에 의해서입니다.
이러한 방법들에 의해서 당신은 영적인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소외의 원천이 되는 그 무지를 없앨 수 있습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4:18).
그분의 약속들을 공부하십시오. 하나님은“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벧전1:4) 하려 하셨습니다.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떠한 인상에 저항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의 호흡하심을 사모하십시오. 성령께서 당신에게 역사하시고 당신을 깨우실 때에, 당신도 힘을 다해서 성령을 깨우십시오. 그분을 높이고, 머물러 계시도록 간청하십시오.
오, 복되신 성령이시여, 이 메마른 광야에 숨결을 보내시옵소서! 그 광야가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뀔 때까지, 나의 복되신 창조주와 은혜로우신 구속주께 기쁨이 되며 또한 그분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될 때까지, 결코 성령께서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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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차녹, 바로 알아야 할 거듭남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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