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한다는 말은 "나로부터 무언가를 차단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내가 내가 돼기 위해서는 전적인 하나님의 것으로 차단되지 않고
채워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존재(자아)의 살아 있음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확인되어 지는 것이지
불완전한 나 스스로의 인식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나로 통하여 이루어진 일체의 모습들은
불완전함 그 자체입니다. 죄의 또 다른 국면입니다.
결코 죄의 바른 인식이 없이는
현재의 나의 상태는 언제나 현실적 기준에 보다 합당한
만족을 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바리새인의 종교성, 바로 그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빠지는 함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의 것에 대한 반성과 돌이킴이 없으며
자신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일체화 시키는 일에
두려움조차 갖지 못합니다.
철저한 제한이 이들가운데
무지로 표현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재난을 당하고 비참해지며 불행하게 된 것은
이들의 삶 속에서 죄와 불순종이 항상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당신 역시 죄를 멈추기 전까지,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축복들을 알지 못합니다.
저녁이 되면 아침이 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고의적으로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으면서
축복을 달라고 구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 중 가장 공통적인 것입니다.
두번째 원인은 자기 만족입니다.
즉 자기 신뢰와 자기 의지입니다.
이것이 항상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문제의 근원이 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군대를 모집할 수 있었고,
자신들의 힘을 집합시킬 수 있었으며,
자신들로부터 훌륭한 장관들을 뽑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능력으로 적군을 대적했기 때문에
항상 패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했을 때는
비록 적은 숫자였지만 항상 승리했습니다.
우리도 자기 신뢰, 자기 만족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많은 종교간행물을 읽으면서 결론짓는 것은
모든 것이 이렇게 잘되어 간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좋게 보입니다.
교회는 참으로 약해져 가며, 힘을 잃고 있는데
이러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비극입니다.
이 자기 신뢰는 계속되어 갑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세워서 성공할 수 있다는 이 자신감,
이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자기 만족입니다.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 됐다고 사람들은 느낍니다.
"더 필요한게 있습니까? 모든 것은 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축복의 문은 닫혀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참으로 통회하는 자만 축복하십니다.
또다른 문제의 원인은 '무지와 맹신'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에 대한 무지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어떠한 가능성이 주어졌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그저 한 결정을 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시편 78편 11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행하신 것과 저희에게 보이신 기사를 잊었도다"
그들은 이 말씀을 항상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한 세대가 일어났습니다.
애굽으로부터 가나안 땅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한 세대가 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의 역사에 무지했습니다.
시편 기자가 그리하여 이것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대각성(Great Awakening)',
영적 부흥,
그리고 하나님이 임재하셨던 그 역사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역사의 사실들을 무시해 버림으로
우리 개개인에게 무엇이 가능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고작 자신을 비참하게 하며,
세상이 가진 모든 것들을 갖지도 못하는 격이 되는 사람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의 기쁨이 없습니다.
주 안에서 기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놀라운 축복을 하나도 받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부정적입니다.
모든 것들을 포기했어야만 했지만
벌거벗은 채,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들은 거기에 있습니다.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제한하는"
이 책망에 대한 죄를 인식할 수 있는 데까지,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빨리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죄와 어리석음 그리고 그 모든 수치를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편 81:10)
이것이 우리가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저 여는 것이 아니라
넓게 여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채우게 하십시오.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여십시오.
악속들을 믿으십시오.
선교사역의 창시자가 되는
윌리엄 캐리(William Carry)가 한 대로 하십시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것들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것들을 시도하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또 존 뉴톤(John Newton)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왕에게 나아오고 있습니다.
많은 간구를 갖고 옵니다.
그분의 은혜와 능력은 참으로 커서
누구도 너무나 많이 간구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당신 입을 넓게 여십시오.
위대하고 귀중한 약속 앞에 당신의 마음을 여십시오.
구원의 충만함을 즐길 때까지,
영원히 기뻐할 때까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개인적으로 알 때까지,
당신에게 하나님의 계명이 무겁지 않고 즐거울 때까지,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아래와 같이 고백하기 전까지는
마음의 만족을 갖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과
우리 영혼의 축복과 부를 위하여
그렇게 하실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아멘.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증표는
"하나님과 그분의 모든 충분함에 안식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1절 -13절에서 그것을 또한 발견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이 우리의 신앙 경험으로 나타납니까?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것을 채우십니까?
어려울 때나 문제가 있을 때,
그리스도의 충족케 함을 발견합니까?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것이 됩니까?
- D. M. 로이드존스, '하나님 앞에 사는 즐거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