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증거(2)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8:16)
Ⅰ
1.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이와 같은 진리의 중요성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말씀 속에서 이 진리는 단 한번만이 아니요 또 모호하거나 우연히 계시된 것이 아니라, 자주 그리고 그것도 명백한 용어로 그리고 진지하게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두드러진 특권의 하나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2. 그리고, 이 진리의 좌우 양측에는 위험한 이론들이 있기 때문에, 이 진리를 설명하고 변호할 필요성이 더욱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에 이것을 부인하면 우리들의 종교는 단지 형식적인 것으로 떨어져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부인은 안한다 할지라도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등한히 하지는 않을까 하는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인다 하여도 무엇을 인정하는가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열광주의의 무모함에 뛰어들어가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이런 위험에서 보호함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것도 이 중대한 진리에 관한 성서적, 합리적 설명과 확증에 의해서 말입니다.
3. 이 주제에 관하여 그간 명확하게 쓴 글이 그처럼 적었고, 또한 그 문제된 그릇된 견해에 대하여 변론하여 잘 설명하여 줌으로써 그릇된 것을 제거해 주는 담론이 없는 한, 이런 종류의 설명이 더 더욱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러한 것들이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투박하고 비성서적인 설명에 의하여 야기되었던 것입니다.
4. 이 교리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하고 변호하는 것은 소위 감리교도들에게 더욱 분명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왜그러냐하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전하라고 감리교도들에게 주신 증거의 중요한 부분인 까닭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거의 잊혀졌고 또 잃었던 이 위대한 복음적 진리가 재발견되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경험에 의하여 확증된 것은 하나님께서 감리교도들에게 그들이 성경을 상고할 때 주신 특별한 축복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Ⅱ
1. 그러면 무엇이 성령의 증거입니까? 원어의 "마르투리아"라는 말은(여러 곳에서 그렇게 번역되어 있듯이) 증거(witness) 또는 어느 정도 분명하게 증언함(testimony), 기록(record)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번역 요한 1서 5장 11절에는 "또 기록은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안에 있는 그것이니라"고 한 "기록"(record ; 우리말 성경에는 "증거"라고 번역됨 - 역자주)으로서 곧 모든 영감된 기록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이 영생은 그의 아들 안에 있다"고 하나님께서 증언하신 요점 곧 증언(testimony)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증언"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주어지고 우리 영에게 또 우리의 영과 더불어 증언하는 증언입니다. 성령은 증거하시는 인격이십니다.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증거의 즉각적인 결과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등입니다.
이런 열매들 없이 이 증거 자체는 지속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외면적 죄를 범하거나 알려진 의무를 태만히 함으로써 뿐만 아니라 어떤 내적 죄에 굴복함으로써, 한 마디로 말씀 드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들에 의하여 이 증거는 어쩔 수 없이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2. 나는 인간의 언어를 가지고 하나님께 속한 깊은 일들을 설명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여러 해 전에 알았습니다. 참으로 인간의 언어에는 하나님의 영께서 그의 자녀들 속에서 일하시는 것을 적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마 나는(하나님께로서 배운 사람이 이 표현을 시정하고 부드럽게 하고 또 강하게 하기를 바라면서) 성령의 증언이란 말을 영혼을 향한 내적 인상(inward impression)이라고 보고, 이것에 의하여 하나님의 영이 나의 영에게 "내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고 나의 모든 죄는 도말되었으니 나도, 아니 나까지도 하나님께 화목되었다"고 즉각적으로 직접적으로 증거하시는 것이라고 말하여도 좋을 줄 압니다.
3. 그후 20년 동안 더 상고 하여 보았지만 이것의 어느 일부라도 취소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다 잘 이해시키기 위하여 이 표현의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할지도 또한 나는 느끼지 않습니다. 만약에 어떤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 이에 대하여 보다 명료한 표현을 지적한다면 나는 첨가하겠고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일치되는 표현으로서 나의 의견과 다른 것을 제시한다면 나는 기꺼이 위에서 말한 표현을 버릴 것입니다.
4. 그러나, 나는 이로써 하나님의 영이 어떤 외적 음성으로 이를 증거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적 음성으로 때때로 증거하시지만 그렇다고 늘 그렇게 하신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항상 사람의 마음에 어느 성경귀절을 가지고 지시하신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하나님께서 종종 그렇게 하시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인 영향으로, 또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강한 작용으로 영혼 위에 그처럼 활동하시므로 폭풍과 성난 물결은 진정되고 아주 고요해져서 마음은 예수님의 품안에 있는 것처럼 안식하고, 죄인은 하나님과 화목되며, 모든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음으로 그 죄인은 분명히 만족케 되는 것입니다.
5. 그러면, 이에 관하여서 논쟁이 되는 점은 무엇입니까? 이는 성령의 증거가 있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느냐 안하시느냐가 아닙니다. 성경의 진실을 가차없이 부인하거나 진리의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비난함이 없이 이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가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 의하여 인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6.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간접적인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의 질문도 아닙니다. 이 간접적인 증거는, 정확히 같은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선한 양심의 증언과 거의 같은 것이며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속에서 느끼는 것을 추론하거나 숙고한 결과입니다.
엄밀히 말씀드려 이것은, 일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또 일부는 우리들 자신의 체험에서 오는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명하시기를 "성령의 열매를 가진 자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합니다.
체험 또는 내적 의식은 "나는 성령의 열매를 가졌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성적 판단에 따라 "그런 까닭에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결론 짓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인정할 것이므로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7. 그리고 우리는 성령의 열매 없이도 성령의 참된 증거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도리어 반대로 성령의 열매가 이 증거로부터 즉각적으로 솟아난다고 주장합니다.
증거가 처음으로 주어졌을 때 조차도 항상 똑같은 정도의 것은 아닙니다. 하물며 그 후에는 훨씬 그 증거가 덜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 증거 자체가 늘 똑같이 강하고 명백하지 않는 것과 같이 기쁨이나 평강도 늘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도 마찬가지 입니다.
문제의 요점은 여기 있습니다. 즉, 성령의 직접 증거가 과연 조금이라도 있는가 없는가, 환언하여 열매에 대한 의식에서 솟아나는 (간접적)증거 이상의 성령의 어떤 다른 증거가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입니다.
Ⅲ
1. 나는 그런 증거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본문의 명백하고도 자연스러운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하시느니라." 같은 것을 함께 증거하고 있는 두 증거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즉, 하나님의 영의 증거와 우리 자신의 영의 증거입니다.
돌아가신 런던의 감독은 이 본문을 가지고 하는 그의 설교에서 이 본문 말씀이 그 표면에 드러내고 있는 이 증거를 어떤 사람이 의심할 수 있다는 데 대해 놀란 것 같습니다. 그래, 그 감독은 말하기를 "우리 영의 증거"라는 것은 우리들의 진실성에 대한 의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를 좀 더 분명히 표현하면 이는 성령의 열매에 대한 의식이란 말입니다. 우리의 영이 이런 열매 곧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등에 대해 의식할 때는 이런 전제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쉽게 추리할 수 있습니다.
2. 어느 휼륭한 사람이 다른 증거란 우리들의 선행에 대한 의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이를 하나님의 영의 증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의 영의 증거에 속하는것, 즉 말의 통속적 의미에서 진실성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사도는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순진함)과 진실함으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기쁨)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진실이라 함은 우리들의 내면적 의향과 동시에 적어도 우리의 말과 행동을 언급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는 다른 증거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 바 바로 같은 것, 즉 진실함에 대한 의식의 한 가지라 할 수 있는 선행의 의식인 것입니다.
결국 여기에 단 하나의 증거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두개의 증거들을 말하고 있다면, 그것들 중 하나는 우리들의 선행의 의식이거나 우리의 진실함의 의식이 아닙니다. 이 의식 모두는 우리 자신의 영의 증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3. 그러면 다른 증거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만약에 본문 자체만으로 충분하게 분명치 못하다면 바로 전절에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즉,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하고 곧 이어서 "이 영이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느니라"하였습니다.
4. 더 나아가서 이는 이와 병행하는 성경 귀절(갈 4:6)에 의하여 잘 설명됩니다.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이것은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나 또는 논쟁의 결과에서 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것이 아닙니까? 이 영이, 우리의 진실성에 대한 숙고 즉 어떤 이성 추리라든가에 앞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으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이것이 이 말씀의 분명하고 자연적인 뜻으로서 우리가 들을 때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위의 본문들은 가장 명백하게 성령의 직접 증거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영의 증언이 그 본질에 있어서 우리 영의 증언에 선행하여야 한다는 것은 다음의 단일한 고찰에 의하여 분명해질 것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거룩하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기 전에 우리 마음과 생활이 거룩하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히 거룩하여질 수 있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성결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사랑하셨음이라" 그리고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에게 증거하시기 전에는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없고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 때에, 그 때에만 우리의 관심은
그의 보혈에 있음을 느끼고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외칩니다.
당신은 나의 주요 하나님이시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의 증거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모든 성결에 선행해야 하는 까닭에, 그 결과 성령님의 증거도 이런 것들에 대한 우리의 의식에 앞서야 합니다.
6. 그리고 여기 이 성서적인 교리를 확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의 체험을 말씀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은 두세 사람이나 소수의 체험이 아니라 셀 수 없는 많은 무리의 체험입니다. 이 교리는 이 시대에서 뿐 아니라 온 세대에 있어서, 구름떼와 같은 현재나 과거의 증인에 의하여 확인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여러분이나 나의 체험에 의하여 확인되고 있습니다. 성령은 나의 영에게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라고 증언하시고 이에 대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즉각적으로 "아바 아버지여!"라고 외쳤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그랬듯이) 내가 어떤 성령의 열매를 숙고하고 의식하기 전에 외쳤던 것입니다. 이 증거를 받은데서 부터 사랑, 희락, 화평 등 성령의 모든 열매가 넘쳐 흘렀습니다. 처음으로 나는 들었습니다.
"너의 죄는 사하여졌느니라!
너는 수락되었노라!
나는 들었노라, 내 마음에선
천국이 솟아올랐도다"
7. 그러나 이것은, 성령께서 그들이 하나님의 호의가운데 있다는 것을 직접 증거하실 때 까지는 그들이 그것을 전연 몰랐다고 선언할 수 있는 무수한 하나님의 자녀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죄를 깨닫고 그들에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는 자들에 의하여서도 확인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의 직접 증거 - 하나님은 불의한 자에게도 자비하셔서 그들의 죄와 허물을 이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성령으로부터의 직접적인 증언 - 이 아니고서는 만족하여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 중 어떤 이에게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속에 이뤄놓으신 것을 숙고해 봄으로써 즉 당신의 사랑, 희락, 화평을 생각함으로써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말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는 곧 "이 모든 것에 의한다면 내가 알기로 나는 마귀의 자녀가 아닐까요? 마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보다도 더 나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습니다. 즉 나의 육에 속한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나는 성령 안에서 희락이 없습니다. 내 영혼은 슬퍼 죽을 지경입니다. 나에게는 화평이 없습니다. 내 마음은 흉흉한 바다, 폭풍우를 만난 바다 같습니다.
이런 영혼들이 신적 증거(저들의 그 마음이나 생활에 있어서 선하다든가, 진실하다든가,성경에 일치한다든가 하는 증거가 아니라) 곧 "하나님께서는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게 하시느니라"(롬 4:5) 하시는 것에 의하지 않고서 그 외에 무슨 방법으로 위로받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그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순간까지는 전부가 경건치 못한 것이요. 또한 사람은 자기가 행한 어떤 의로운 행실 때문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긍휼에 의하여, 즉 전적으로 오직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를 위하여 행하시고 고난 당하신 일 때문에 하나님께 수납되었다고 의식할 때 까지는 참으로 선한 것은 행하지 않으며 그런 것은 아무것도 행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면 다르게 말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의 칭의에 앞서 무슨 내적 또는 외적 선을 의식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기 전에는 지불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즉, 우리 안에 선한 것 곧 본질적으로 반드시 있어야 할(필요한) 선 (외적인 것이나 내적인 것이나)이 없음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이 다음과 같은 점, 곧
"나는 이것 외에 아무 변명도
않으렵니다.
주여, 나도 멸망을 받게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죽으셨지요!"
여기에 도달하기 전에(세상에 태어난 후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고 또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까?
8. 그러므료 이런 증거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결국에 있어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 증거를 결코 경험한 일이 없거나,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았다든가, 아니면 사도 베드로가 말한 대로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다는 결론이 됩니다. 이 옛 죄에서 깨끗함을 받았다는 것은 베드로가 친히 한 체험이요,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에 역사하신 방식입니다. 그 때에 그의 죄는 도말되었던 것입니다.
9. 그런데 세상 자녀들의 경험을 보아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 체험은 확인됩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합니다. 어떤 이는 고통을 겪으면서까지 그리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누가 자기의 죄가 용서함 받은 것을 안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가장 어이없는 일로 여기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 가운데 이 사실을 믿는 척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아직도 그들 중 다수는 스스로의 진실성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어느 정도에 있어서는 자기들의 영의 증거, 즉 그들 자신이 옳다는 의식을 의심 없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에게 자기들은 용서함을 받았다는 의식, 즉 저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식을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저들은 진실하여지면 할수록 일반적으로 더욱 불안하여집니다.
우리가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신의 자녀라고 직접 증거하시는 일 없이는, 우리 자신의 영의 증거만 가지고는 도저히 만족하게 알려질 수는 없다는 것을 본문은 명백히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Ⅳ
1. 이 모든 것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즉, 성령의 증거란 신자의 영혼을 향한 내적 인상(인각)입니다. 이에 의하여 하나님의 영은 저들의 영과 더불어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직접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성령의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떤 직접적인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 다른 말로 하여, 성령의 열매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증거 이외에 다른 어떤 증거가 있는가 없는가였습니다. 우리는 그런 증거가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본문에 자연히 나타난 명백한 뜻이며, 또한 앞절의 말씀이나 이와 병행되는 갈라디아서의 말씀에 의하여 더 잘 설명되어 있는 까닭에 그렇습니다. 또한 이는 사리로 보아서 이 증거는 그에게 나오는 열매보다 먼저 있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의미는 수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체험에 의하여 확증되는 까닭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죄를 깨닫는 자, 이 직접적인 증거를 갖기까지 안식할 수 없는 자들의 체험에 의하여 확인됩니다. 아니, 이는 이 세상의 자녀들 곧 그들 안에 증거가 없고 모두 죄가 용서함 받은 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체험에 의하여서까지 확인되는 것입니다.
2. 여기에 반하여 이 교리를 다음과 같은 것으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경에 의하여 지지되지 않는 교리를 증명하기에는 체험만으론 충족하지 못하다.
미친 사람이나 여러 광신주의자들이 이런 증거를 상상한다.
성령의 증거의 목적은 우리들의 고백이 순수하다고 증명하는데 있다. 그러나 그 증거는 그 목적에 부응하지 않고 있다.
성경은 말하기를 "열매로 나무를 알지니"라고 하였고 또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하였다.
이 직접적인 증거는 하나님의 모든 책들 속에 결코 언급된 바가 없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큰 망상에 빠지는 것을 막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께서 홀로 당하신 그런 시련의 경우가 아닌 한, 우리 속에 이루어진 변화가 넉넉한 증거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답변합니다.
① 체험이라는 것은 성경에 근거한 교리를 확증하기에 넉넉합니다.
②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한 듯이 상상하지만, 이것이 참된 체험에 대한 편견은 될 수가 없습니다.
③ 이 증거의 목적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케 하는 데 있는데, 이 증거는 진정 그 목적에 부응하는 것입 니다.
④ 성령의 참된 증거는 그 열매, 곧 사랑, 희락, 화평 등에 의하여 알려집니다. 그러나 열매들이 앞서는 것이 아니요, 열매는 그 뒤에 따르는 것입니다.
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네 안에 있는 줄 네가 알지 못하느냐?" 한 성경 말씀 속에 간접적인 증거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증거가 언급되어 잇지 않다는 것은 증명될 수 없는 것입니다.
⑥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과 더불어 증거하심이 우리를 모든 미혹에 빠지는 것으로 부터 보호하여 줍니다.
그러니, 결국, 우리 자신들의 영의 증거가 불충분하고 또 거기에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겨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영의 직집적인 증거보다 못한 입장에 서 있는 우리로서는 모두 시험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3. 위에 말한 바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추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누구든지 성령의 증거의 열매와 분리한 어떤 가상의 성령의 증거에 안주하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참으로 증거하시면, 그 즉각적인 결과 성령의 열매 곧 사랑이라든가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있게돨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열매가 강한 유혹을 당하고 있는 동안에는 당분간 구름에 가리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유혹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즉 사탄이 밀까부르듯 흔들고 있는 그 사람에게는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열매의 본질적인 부분은 그것이 두터운 구름 아래에서 조차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 있는 희락은 시련의 시간에는 박탈당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흑암의 세력" 과 "흑암의 시간"이 계속하는 동안에는 영혼이 심히 슬퍼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일지라도 일반적으로는 회복되어 마침내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벧전 1:8) 기뻐하게까지 되는 것입니다.
4. 둘째 추론은, 그 증거없이 어떤 성령의 열매라고 간주되는 그 어떤 것에도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 속에 그 증거를 가지기 훨씬 이전에도, 우리는 미혹된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희락, 화평, 평강과 사랑을 미리 맛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예수의 보혈로 인한 구속 곧 죄사함을 얻느니라"고 증거하시기 전에 이런 화평, 희락, 사랑을 미리 맛 볼런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수락되어 마침내는 이 수락에 대한 증거를 가지기 전에도 어느 정도의 오래참음과 양선, 온유, 절제의 열매를 가질 수 있습니다.(그것은 그림자가 아니라 선행적 은총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의 실제적인 것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안주하도록 권고할 것이 결코 못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 하다가는 영혼이 망하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영이 "아바, 아버지!"라고 외치실 때까지 우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특권입니다. 이것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결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것 없이 우리는 당혹케하는 의심과 두려움을 피할 수 없으며 확고한 평화를 보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 이 양자의 영을 받으면 이 "모든 지각에 뛰어나며 모든 의심과 두려움을 내어쫓는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뜻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키실 것입니다.(빌 4:7) 그리고 그 증거가 그 증거의 순수한 열매, 곧 모든 내적, 외적 성결을 가져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한번 주셨던 것들을 늘 주시는 것이 의심할 바 없이 우리를 부르신 분의 뜻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증거나 우리 자신의 증거, 곧 우리가 모든 의와 참된 거룩함 가운데 걷고있다는 의식 중 그 어느 것도 빼앗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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