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첫 열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는 사람들
에게는 정죄 받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롬8:1-4)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는 사람들"(롬8:1)이라는 말은, 성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고 있는 사람들, 즉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동5:1)사람들을 의미함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믿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육을 따라 살지 않으며"(동8:4) 더 이상 부패한 본성의 활동을 따르지 아니하고, "영을 따라"(동8:4)사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 발언, 행위는 다 하나님의 축복의 영의 지시 아래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이제 정죄 받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동8:1).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을 통하여, 당신의 은혜로 거저 의롭다"(롬3:24)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불법행위를 용서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도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내면으로부터 정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받은 것은 세상의 영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거저 주어진 은혜의 선물들임을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전2:12). 성령께서 "그들의 영과 더불어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롬8:16)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다가 "그들이 육적인 지혜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솔직함과 진실함으로 행했다는"(고후1:12)그들의 양심의 증거가 덧붙여 집니다.
3. 그러나 이 성서는 너무도 자주 오해되어 왔습니다. 그것도 매우 위험한 방식으로 말입니다. 수많은 "무식하거나 마음이 굳세지 못한 사람들"(벧후3:16)(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 따라서 진리 가운데 굳건히 서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킨다)이 그것을 곡해해서 자신들의 파멸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분명하게 다음의 사실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들"(롬8:1), 그래서 "육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사는 사람"(동8:4)이란 누구인가? 둘째로 어찌하여 이런 사람들은 "정죄 받는 일이 없는"(동 8:1)것인가? 나는 약간의 실제적인 추론을 가지고 결론짓겠습니다.
Ⅰ
1. 먼저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는 자"(롬8:1) 란 누구인가를 보이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자신의 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소유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는"(빌3:9)사람들이 아닙니까?
"그의 피를 통하여 속죄함을 받은"(엡1:7) 이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안에 사는 자라고 말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살고 또 그리스도가 그들 안에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 성령 안에서 주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접목되는 것과 같이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습니다. 그들은 지체가 머리에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 결합의 방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그들 마음 속에 들어가 보기 전에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2.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죄를 범하지 않으며"(요일3:6), "육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롬 8:4).
성 바울의 통례적인 용어에 의하면, 육이란 부패한 본성을 의미합니다. 그런 뜻으로 그는 갈라디아인에게 편지 쓸 때에 그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행위는 명백합니다"(갈5:19). 그리고 바로 조금 전에 다음과 같이 씁니다. "성령이 지도하시는 대로 따라 행하시요. 그리하면 육적인 욕정을 채우려는 생활은 결코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동5:16).
"성령을 따라 사는"자는 "육적 욕정을 채우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는 즉시 다음과 같이 더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의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의욕은 육신을 거스리므로 (이 둘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동5:17).
이 성구의 번역은 문자적으로 된 것인데; "그리하여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가 없게 된다"가 아닙니다. 만일 그와 같은 번역이라면, 마치 육신이 영을 이긴 것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러한 번역은 사도의 원문과 전연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그의 논의 전체를 전연 가치없는 것으로 해 버립니다. 그뿐 아니라 그가 입증하고 있는 일의 정반대를 주장하는 일이 됩니다.
3. 그리스도에게 속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것입니다"(갈5:24). 그들은 다음과 같은 육신의 모든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음행과 더러움", "불결과 호색", "우상숭배, 마술, 우상숭배와 다툼", "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살상, 술취함, 연락"(동 5:19-21), 즉 본성의 부패에서 나오는 모든 기획, 발언,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 안에 쓴 뿌리를 느낀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발 아래 끊임없이 짓밟기 위한 위로부터의 힘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쓴 뿌리가 "돋아나서 그들을 괴롭게 하는"(히12:15)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경험하는 모든 새로운 공격은 단지 그들에게 찬미를 위한, 다음과 같이 외치기 위한, 새로운 기회를 줄 따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롬7:25).
4. 이제 그들은 그 마음과 생활 양면에서 모두 "영을 따라 살고"(롬8:4)있습니다. 영생하도록 솟아오르는 샘물(요4;14)과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도록 성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에 의하여 그들은 모든 거룩한 욕구, 모든 신적인 그리고 천적인 기질에로 인도되며, 마침내는 그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이 주께 대해서 거룩한 것이 됩니다.(렘2:3, 슥14;20-21)
5. "성령을 따라 사는"(롬8:4)사람들은 또한 성령에 의하여 생활양식 모두가 거룩한 것이 되도록 인도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을 가지고, 그들의 "말은 언제나 은혜스럽고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습니다"(골 4:6). "그들은 부패한 대화는 입 밖에 내지 않습니다." 단지 "필요한 경우에 덕을 세울 수 있는 유익한 말을 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게 합니다"(엡4:29).
그리고 또 그들은 밤낮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만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들의 모든 외적 행동에서 "우리들에게 그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시려고 본을 남겨놓으신"(볃전2:21)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힘씁니다.
그들의 이웃과의 모든 사귐에서 정의, 긍휼, 진실 안에서 걸으려고 합니다. 어떠한 생활 환경 속에서도,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합니다"(고전10:31)
6. 이들이 실제로 "영을 따라 사는"(롬8:4)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의 영의 참된 열매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들의 생활에서, 즉 그들의 모든 말과 행동에서 그것을 보여줍니다. 그 열매란 즉 "사랑과 기쁨과 평강과 오래 참음과 관용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갈5:22,23) 그리고 그밖의 모든 사랑할만하며, 칭찬 받을 만한 일입니다.(빌4:8)
"그들은 모든 일에서 우리 구주이신 하나님의 복음을 빛나게 합니다"(딛2:10). 그들이 참으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행3:15) 같은 영(성령)으로 움직여지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를 모든 인류에게 주는 것입니다.
Ⅱ
1. 둘째로, 나는 어떻게 이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따라서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사는" 자에게는 "정죄받는 일이 없는"(롬8:1,4)가를 나타내려고 합니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어 영을 따라 사는 자들은 그들의 과거의 죄 때문에 "정죄받지 않습니다"(동8:1). 그들 과거의 어떤 죄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죄는 마치 전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것들은 "돌과 같이 깊은 바다에 던져"(미7:19)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이상 그것들을 기억하시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들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세우신' 하나님은 '지금까지 지은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를(가) 그들에게 (당도했음을) 명백히 알리셨던 것입니다"(롬3:25)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죄의 어느 하나도 그들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그러한 죄의 기억은 그러한 죄와 함께 소멸된 것입니다.
2. 그리고 그들 자신의 내심에는 정죄도, 죄책의 느낌도,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공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 속에 이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요일5:10). 그들은 저 뿌린 피의 이익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두려움", 의심, 고통을 주는 불확실성에 "빠지게 하는 노예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바 아버지'라고 마음 속으로 부르짖는 "아들이 되게 하는 영을 받은 것입니다"(롬8:15).
이처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으므로"(동5:1) 그들의 마음 속은 하나님의 평강으로 지배되고 있습니다. 이 평강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긍휼을 부단히 느끼고 있는 데서 흘러나오는 것이어서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벧전3:21)인 것입니다.
3. "그러나 때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도 하나님의 긍휼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러한 어두움이 그에게 닥쳐와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이상 보지 못할는지도 모릅니다. 속량의 피에 자기가 참여되고 있다는 자기 안의 그 증거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할는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그는 내적으로 정죄 받고 있으며, 그는 다시금 '자신 속에 죽음의 선고'(고후1:9)를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들 합니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가 하나님의 긍휼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때에 그는 신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빛을, 영혼 위에 비취는 빛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빛을 잃고 있는 한, 그 사람은 그동안 신앙을 잃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심없이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있는 사람도 신앙의 빛을 잃을는지도 모르는 것이요, 그것이 잃어져 있는 한, 한 동안 그는 다시 정죄받는 상태에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는 자"(롬8:1), 지금 그 이름을 믿고 있는 자의 경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고 영을 따라 사는 한, 하나님도 그들의 자신의 마음도 그들을 정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 다음으로, 그들은 현재의 어떠한 죄 때문에, 즉 현재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하는 것 때문에는 정죄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명령을 위반하지 않기 때문이요; 그들은 "육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살기"(롬8:4)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요일5:3)하고 있다는 부단의 입증인 것입니다. 성 요한이 증거하는 바와 같이 "누구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동3:9). 하나님의 씨, 곧 사랑하는, 거룩한 믿음이 그의 안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죄를 범할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서 "그가 자신을 지키는" 동안은, "악한 자가 그를 다치지 못합니다"(동5:18).
이제 분명한 것은, 자기가 전연 범하지 않은 죄 때문에 그가 정죄받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는"(갈5:18) 그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동). 즉 율법의 저주나 정죄 아래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그것을 파기하는 자 이외의 아무도 정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 하나님의 율법, "도적질하지 말지니라"(출20:15)는 실제로 도적질하는 사람 이외에 아무도 정죄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동20:8)는 이를 거룩히 지키지 않는 사람들만을 정죄합니다.
그러나 영의 맺는 열매를 부인하는 "율법은 없습니다"(갈5:23). 이 사실을 사도는 좀 더 충분히 디모데 전서의 다음과 같은 기억할만한 말로 언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법대로 쓰기만 하면 좋은 것인 줄을 우리가 압니다. 즉 다음의 사실을 알고 사용하면 좋습니다"(만일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죄의식을 일으키기 위하여 혹은 지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한편, 다음의 사실을 알고 또 기억한다면 좋은 것입니다)
("율법은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지만, 그러나) "율법은 의로운 사람을 반대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의로운 사람을 반대할 힘을 가지지 못하며, 그를 정죄할 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을 어긴 자와 불순종하는 자와 불경건한 자와 죄 있는 자와 거룩하지 않은 자와 속된 자에 대항키 위해,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라, 제정되었다"(딤전1:8,9,11)는 사실 말입니다.
5. 셋째로, 그들은 내적인 죄 - 비록 그것이 지금 머물러 있다고 해도- 때문에 정죄받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 안에도 본성의 부패가 아직 머물러 있다는 사실, 그들 마음 속에 교만과 허영, 분노와 탐욕과 악한 바램, 그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죄의 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 이것은 매일 경험하는 것이요 부인하기에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성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고전1:2)사람들이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또는 관계)를 갖게 된"(동1:9) 사람들이라고 바로 전에 증언한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형제들이여, 나는 영에 속한 사람에게 하듯이 말할 수 없고, 육에 속한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어린아이 같은 사람에게 하듯이 여러분에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동3:1)라고 언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어린 아이"라고 했으니,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도가 낮은 신자였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얼마나 많은 죄가 그들 안에 남아있는지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는 육의 생각"(롬8:7) 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 것입니까!
6. 그러면서도 그러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죄받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이 그 안에 육의 성품, 악한 본성을 느낄지라도, 그들의 "마음이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렘17:9)을 날마다 더욱 더 느낄지라도, 그들이 거기에 굴복하지 않는 한, 악마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한, 육신이 그들에 대한 지배권을 갖게 아니하고 그들이 늘 "영을 따라 살"(롬8:4)도록 모든 죄, 즉 교만, 분노, 욕망과 끊임없이 계속 싸우는 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죄받는 일이 없습니다"(동 8:1).
하나님은 그들의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진실한 복종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고 알고 있으므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요일3:21).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들이 그의 자녀인 줄을 압니다(동 3:24).
7. 아니 그뿐 아니라, 넷째로, 그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죄가 굳게 붙어 있음을 끊임없이 확신하고, 그들의 생각에서나 발언에서나 행위에서 완전한 율법을 성취하고 있지 못한 사실을 의식하고 있으며, 주 하나님을 그 마음과 뜻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최선을 다하여 그 의무를 행할 때에라도 다소라도 교만이나 고집이 가만히 스며들어 온다거나 뒤섞이거나 하는 것을 느끼며, 그들이 큰 회중과 함께 모인다든지 마음의 모든 생각과 의향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은밀히 그들의 마음을 쏟아놓든지 할 때에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사귐 속에서까지도 그들의 생각이 방황한다든지 그들의 정애가 죽어있다든지 활발치 못하다든지 하는 것을 언제나 부끄러워할지라도, 그러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으로부터도, 그들 자신의 마음으로부터도, 그들에 대한 정죄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종다양의 결함은 단지 그들에게 다음의 사실에 대한 보다 깊은 인식을 줄 뿐입니다. 즉 하나님의 귀에 그들을 대변하여 말하는 흘린 피, 그리고 "영원히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시는"(히7:25) 저 아버지 앞에서의 대언자를 그들은 항상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러한 결함은 그 믿어온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을 몰아내어 멀어지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매 순간 부족을 느끼는 그들을 하나님에게로 더 가까이 하도록 몰아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이 부족함을 깊이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였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자"(골2:9)는 열렬한 욕구를 더욱 느끼며, 그렇게 살아가려고 더욱 부지런하게 되는 것입니다.
8. 다섯째로, 그들은 소위 약점의 죄(sins of infirmity) 때문에도 정죄되지 않습니다. (죄를 약점과 결합시킴으로써 죄를 은근히 조금이라도 장려한다든지 혹은 죄를 어떤 정도로 가볍게 하려 한다고 생각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그것을 약점이라고 부르는 편이 타당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처럼 불분명한 그리고 위험한 표현을 보유해야만 한다면 약점의 죄에 대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진실하다고 믿고 있는 사실을 말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이 증명될 경우와 같은, 고의 아닌 실패 혹은 아마도 이웃에게 선을 행하려고 의도했는데 알지 못하는 동안에, 혹은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 이웃을 해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런 일들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충분하고 또 완전한 뜻에는 벗어나 있다 할지라도, 그러나 적절히 말해서 죄는 아니며 "그리스도 예수 안의 사람"(롬8:1)의 양심에 어떤 죄의 책임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그러한 약점은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가르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의 얼굴 빛을 가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육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살고"(롬8:4)있는 그 전체적인 특징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9. 끝으로 그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모든 사실 때문에 "정죄 받지 않습니다"(동8:1). 그것이 내적인 본성의 것이든지 외적인 본성의 것이든지, 또는 그것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이든지 혹은 어떤 일을 하지 않고 버려두는 일이든지 그렇습니다.
예컨대 주의 성찬이 집행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거기 참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왜 않습니까? 당신은 병으로 자리에 누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당신은 정죄 받지 않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죄의 책임도 없습니다. "마음으로 원하고 있음" 으로해서 "그가 가지지 않은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진 것에 의하여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고후8:12)
10. 실로 신도는 어떤 때에는 그의 영혼이 갈망하는 것을 할 수 없어서 깊이 슬퍼하게 됩니다.
큰 회중 가운데서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일을 억류당하고 있을 때에, 그는 울부짖을런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42:1-2). 그는 다음과 같이 열렬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여전히 마음 속에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다시 무리들과 동행하며 또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기"(시42:4)를 바라고 있을런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가 갈 수 없다고 해도, 그는 정죄 받는다고는 느끼지 않으며 죄의 책임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대해서 화를 내신다고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욕구를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토로할 수 있습니다. "아, 내 영혼아, 하나님을 신뢰하라. 나는 나의 얼굴의 도움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신 분에게 오히려 감사하리로다"(시42:5참조).
11. 흔히 의외의 죄(sins of surprise) 라고 불리우는 것들에 관해서 결정하는 일은 더욱 곤란합니다. 그것은 보통 때 인내하던 이가 갑자기 또는 격력한 유혹을 받아 고귀한 율법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10:27)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우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성질의 위반에 관해서 일반적인 법칙을 고정시키기는 것은 용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의외의 죄 때문에 사람들이 정죄된다고도 정죄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느닷없이, 신자가 과오 속으로 밀려갔을 때에는 언제나 다소라도 정죄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것은 다소라도 그의 의지의 동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된 욕구 혹은 발언 혹은 행위가 다소 고의적인 것에 비례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소라도 언짢게 여기신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소라도 영혼에게 죄의 책임이 있습니다.
12. 그러나, 그렇다면, 큰 죄의 책임과 정죄를 가져올 약간의 의외의 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의외성이라는 그 사태가 어떤 고의적이고 부주의한 나태가 원인이었거나, 혹은 미연에 방지되었을지도 모를 혹은 그 유혹이 오기 전에 제거되었을지도 모를, 영혼의 잠이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시련과 위험이 가까왔다는 경고를 받아도, 사람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할는지 모릅니다. "좀 더 자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잠언6:10). 이제 만일 이러한 사람이 나중에 엉겁결에 피할 수 있었을 수도 있었던 함정에 떨어진다면, - 그가 모르고 떨어졌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위험을 예지하고 피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경우의 떨어짐은 비록 의외이었다 해도, 결과에 있어서는 고의의 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또는 자기 양심으로부터 다 함께 그 죄인을 유죄 판결로 들어낼 수밖에 없는 고범죄인 것입니다.
13. 반면에 우리가 예지하지 못했고 또 거의 예지할 수 없었던 돌연한 강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으로부터 혹은 이 세상의 신으로부터 그리고 종종 우리 자신의 악한 마음에서 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의해 신자라 할지라도, 믿음이 약한 동안에는, 어쩌면 압도당하여서 의지의 협력이 없는데도 어떤 정도의 분노나 다른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는 일에 기울어집니다.
이제 이러한 경우에 질투의 하나님은 그가 어리석게 행동한 사실을 의심없이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 사람은 완전한 율법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벗어난 것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요 그 결과로 경신의 생각을 가지고 깊이 슬퍼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정죄될 까닭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음을 그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에게 동정하실 것입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시 103:13)하십니다. 또 그의 마음은 그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의 슬픔과 수치의 복판에서도 그는 오히려 말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12:2).
Ⅲ
1. 이상에서 고찰해온 것으로부터 약간의 실제적인 추론을 이끌어내는 일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우선 만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육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사는 자"는 그 과거의 죄 때문에 "정죄 받는 일이 없다"(롬8:1,4)면, 당신은 왜 두려워합니까, 아 믿음이 적은 당신이여! 당신의 죄가 한 때 모래보다도 더 많았다 할지라도, 지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당신에게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누가 감히 소송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신 이가 하나님이신데, 누가 능히 정죄하겠습니까?"(롬 8:33,34).
당신이 젊은 시절부터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받아들여질"(엡1:2) 그 때까지 범한 모든 죄가 겨와 같이 불려져 가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삼켜져버려 이제는 기억되지도 않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영으로 난"(요3:6)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거듭나기 전에 행한 것 때문에 고민하고 혹은 그것을 두려워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당신의 두려움을 물리치십시요. 당신이 부르심을 받은 것은 두려워하기 위함이 아니요 "사랑과 근신의 영"(딤후1:7) 에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당신의 부르심을 아십시요. 당신의 구주이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며, 그를 통하여 당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감사하시요.
2.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구주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 나서 또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2:6).
당신이 스스로 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스스로를 한하게 한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다시 당신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해 주시지는 않습니까?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십니다"(동 19:25). "내가 이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2:20). 그렇다면 그 믿음이 다시금 지나간 모든 것을 말소하는 것이요, 당신은 정죄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어느 때 참으로 믿든 간에 그 때부터 이전의 당신의 죄는 모두 아침 이슬과 같이 사라집니다.
그러니, 이제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자유케한 자유안에 굳게 서십시요"(갈5:1) 그리스도는 한번 더 당신을 죄의 책임과 형벌에서만이 아니라, 죄의 권세로부터도 자유하게 했습니다.
아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맙시다"(동). 죄, 나쁜 기질이나 발언이나 행위 등의 사악하고 악마적인 속박 - 이것은 지옥의 한 가장 슬픈 멍에이지만 - 뿐만이 아니라 노예가 가지는, 고통을 주는 공포와 죄책과 자기 정죄의 속박에 매어 있어서도 안됩니다.
3. 그러나, 둘째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는" 자 모두가 "육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사는 것"(롬 8:1,4) 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추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죄를 범하는 자는 누구나 이 사실에 전연 몫이 없습니다. 바로 지금 그는 자신의 마음에 의해 정죄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정죄한다면"(롬2:15참조), 즉 우리 자신의 양심이 우리가 죄의 책임이 있는 자라고 증거해 준다면, 의심없이 하나님도 그렇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요일3:20)에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생각지 마시요. "나는 일찌기 의롭다 함을 얻었노라. 나의 죄는 일찌기 용서함을 받았다"고. 그것을 나는 모릅니다. 또 나는 그러한 죄가 용서되었는지 용서되지 않았는지 논쟁하지 않겠습니다. 아마도 이렇게도 시간이 경과된 지금에는 그것이 진정한, 본래의 하나님의 역사였는지 혹은 당신이 자신의 영혼을 속이고 있었는지 어쩐지를 포용력있게 어떤 정도의 확실성을 가지고 아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나는 가장 강력한 확실성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습니다"(요일3:8).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의 아비 악마에게서 나왔습니다. 이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아비의 행위를 당신이 하기 때문입니다. 아아, 헛된 희망으로 스스로를 추켜세우지 마시요. 당신의 영혼에게 "평안, 평안"(겔3:10)하지 마시요.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으시요!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시요. 아마 하나님은 당신의 음성을 들으실는지도 모릅니다. 처음의 때와 같이, 비참한 그리고 가난하고, 죄많고, 불행하며, 앞을 못보고, 벌거벗은 채로의 인간으로 하나님께 오십시요. 그리고 방심하지 마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이 다시 계시되기까지, 하나님이 "당신의 배역함을 고치시고"(렘3:22), 당신을 다시 "사랑으로 행하는 믿음"(갈5:6)으로 채우기까지 당신의 영혼을 쉬게 해서는 안됩니다.
4. 셋째로, "영을 따라 사는"(롬8:4)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는 내적인 죄 때문에 그들이 거기에 굴복하지 않는 한, 정죄되지 않는 것입니까? 또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붙어있는 죄 때문에도 정죄되지 않는 것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불경건이 당신의 마음 속에 아직 남아 있다고 해도, 그 때문에 속상해 하지 마시요. 당신이 아직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이르지 못했다 해도, 더구나 또한 당신의 모든 발언이나 행위에 교만, 고집 혹은 불신앙이 붙어서 떠나지 않는다 해도 불평을 말하지 마시요. 그리고 당신의 마음의 모든 악을 아는 일과 당신이 알려져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당신 자신을 아는 일을 두려워하지 마시요. 아니 그 뿐 아니라 정상적인 평가보다도 당신 자신을 더 높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열망하시요. 당신은 계속 기도하시요.
내 영혼이 견딜 만큼 내부에 생긴
깊이를 내게 보여 주십시요.
모든 불신앙을 밝히 보여 주십시요.
속에 감취어 있는 교만을.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의 마음을 드러내실 때, 하나님께서 당신이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는가를 철저하게 보이실 때, 그 때에 당신의 신앙이 당신에게서 없어지지 않도록, 당신의 방패가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요. 부끄러워하시요. 티끌 속에서 겸손하시요. 당신 자신을 무로, 무 이하로, 공허한 것으로 보시요. 그러나 그러면서도 여전히 "당신은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시요"(요14:27). 여전히 계속 마음을 굳게 가지시요. "나, 이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일2:1).
그리고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의 사랑은 내 죄보다도 크십니다"(시103:11).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인인 당신에게, 당신과 같은 죄인에게도 자비로우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이신 하나님 자신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떤 종류의 좋은 것이라도 안주시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이제 십자가에 달려 있는 그 전체의 죄의 몸이 파멸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떠나 깨끗하게"(고후7:1)될 것입니까? 당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향한 깨끗한 사랑 이외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일은 좋은 것입니까? 기뻐하십시요. "당신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당신의 하나님을 사랑하게"(눅10:27) 됩니다. "약속해 주신 이는 신실한 분임으로 또 그 일을 하실 것입니다"(히 11:11).
당신이 해야할 일은, 인내심을 가지고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를 계속하는 일이요, 쾌활한 평강을 가지고, 겸손한 확신을 가지고, 고요한 그리고 맡겨버린 그러면서도 열성적인 기대를 가지고,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 일을 실행하실 것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5. 넷째로, "그리스도 안에 있고 영을 따라 사는"(롬 8:1-4) 사람들이 약점의 죄로 인하여 정죄받지 않으며 또한 고의 아닌 실패나 피할 수 없었던 어떤 일 때문에 정죄받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때에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당신은 사탄이 이 점에서 당신을 능가하지 못하도록 조심하시요.(고후2:11)
당신은 이제도 여전히 어리석고 약하며 보지 못하고 무지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약하며 당신의 마음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어리석습니다. 알아야만 할 것을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의 모든 약함과 어리석음, 혹은 당신이 거기서부터 아직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당신의 신앙, 즉 하나님을 향한 아들로서의 당신의 신뢰가 흔들린다든지 혹은 주 안에 있는, 당신을 향한 평강이나 기쁨을 교란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고의적인 죄에 관해서 주는 규칙 - 그 경우에 그 규칙은 아마도 위험할는지도 모르지만 - 은 만일 그것이 약함과 약점의 경우에로만 향해진다면 의심없이 현명하고 안전합니다.
아아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은 넘어졌습니까? 그렇지마는 조바심하거나 당신의 약함을 슬퍼하거나 해서 거기에 누워 있지는 마시요. 오히려 겸비하게 말하시요."주여, 만일 당신께서 당신의 손으로 나를 붙들어주지 않으시면 나는 매 순간 이처럼 넘어집니다. " 그리고 거기서 일어나십시요! 뛰어 걸으시요. 당신의 길을 걸어가시요. "당신의 앞에 놓인 경주의 길을 견디며 달려가시요"(히12;1)
6. 마지막으로, 신자는 그 영혼이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하는 사항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기습을 당했다 해도, 정죄될 까닭은 없기 때문에 (그가 기습을 당한 일이 그 자신의 부주의나 고의적인 태만에 조금도 관련되지 않았다는 가정에서의 이야기지만); 만일 믿는 당신이 그러한 방식으로 과실로 몰려갔다면 그 때에는 주되신 하나님을 향하여 울부르짖으시요. 그것은 귀중한 위로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마음을 쏟아놓고 당신의 고민을 보이십시요. 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혼을 견고하게, 강하게, 안정시키시며, 그리고 더 이상 당신이 넘어지는 것을 허용하시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여 기도하시요. 하나님은 "당신의 연약함을 동정하시지 못하는 분이 아닙니다"(히4:15).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왜 당신은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까? 당신은 "고통을 주는 두려움"(요일4:18)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당신은 사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넉넉합니다. 보다 큰 사랑은 보다 큰 힘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즉시로 당신은 "완전하고 온전한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약1:4). 평안한 마음으로 때를 기다립시다. 그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시는 날에 당신의 전체 정신과 혼과 육체가 흠 없는 자로 서게 되도록, 평화의 하나님이 당신을 온전히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고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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