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마음 가난)
요한 웨슬리(John Wesley)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심령의 가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겸비한 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 전에 반드시 가져야 할 - 하나님이 주신 첫 - 회개를 말합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더 이상, "나는 부자다. 나는 풍족하고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계3:17)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실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적으로 가난한 자임을 자인하며, 자신 속에 영적으로 선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속에는 악하고 가증스러운 것 밖에 없는 자라고 깊이 느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문둥병과 같은 죄를 가지고 나와 이것이 그의 전 영혼에 퍼져 있고, 그의 전 기능을 부패케 하였다는 것을 압니다.
즉, 자만심과 과대 망상증과 사람에게서 오는 칭예를 갈망하는 허영심, 증오심, 시기심, 질투, 복수심, 분노, 악의 수만 가지의 형태로 표현되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적개심(enmity) 속세에 대한 애착, 아집, 어리석고 파괴적인 여러 가지 욕망 등입니다.
이 밖에도 상스럽고 진실 되지 못하며 불친절한 언어를 씀으로 덕을 세우지 못하고, 듣는 자들에게 은혜가 되지 못함으로 성령을 근심하게 한 것을 또한 인식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모든 행사가 자기 보기에도 악하여 말로써 이를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임을 절감합니다.
2. 이러한 모든 죄악으로 인하여 그는 죄책감을 느끼며, 단지 그의 전적으로 부패한 "타락한 마음" 때문에 그가 받아야 할 형벌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더구나 그의 악한 생각과 말과 행동 때문에 받을 형벌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극소량으로라도, 벌레도 죽지 않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저주에 해당하는 것임을 한 순간도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은 죄 책의 중압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와 같이 귀중한 구원을 소홀히 하고서 어떻게 그 갚음을 피할 수 있겠는가?"(히 2:3)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있는 것입니다.
3. 그러면 하나님의 공정 무사한 형벌에서 사면 받고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는 무엇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 갈 것입니까? 무엇으로 하나님께 진 빚을 보상 할 것입니까? 설사 이 시간으로부터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완전히 준행 한다 할지라도, 이것이 지 난 날의 저지른 한 가지의 죄도 말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앞으로 영원까지 그가 행할 수 있는 모든 선은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무슨 보상으로라도 지난날에 저지른 죄과를 변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그는 지난날에 지은 죄과를 속할 아무런 방법도 없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실한 자신의 영혼을 되찾기 위하여 하나님께 내 놓을 아무 것도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일에 그가 앞으로는 다시 범죄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전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준수하겠다는 조건 아래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 할지라도,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도 아무런 도움도 그에게 주지 못함을 그는 너무도 잘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조건은 인간인 그로서는 도저히 수행 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심령이 죄에 물들어 있고 부패해 있는 이상, 하나님의 계명의 하나라도 비록 겉치레라도, 준 행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자신일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그 악한 마음을 정결케 할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의 길을 걷기 시작해야 할 지를 전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죄와 근심과 두려움에 싸여 피할 길을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가 부르짖을 수 있는 말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죽게 되었나이다"(마 8:25)할 뿐입니다.
이것이 후회할 것 없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 곧 "심령의 가난"인 것입니다.
요컨대 "심령이 가난"은 우리 앞에 놓인 경주장을 달리는 데 있어서의 제1보인 만큼, 이것은 우리가 안과 밖의 죄를 의식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무력을 느끼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마음을 "겸손의 덕"이라고 터무니 없이 생각하여, 우리 자신이 저주 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아는 것을 자랑하도록 가르치니 우리 주님에게 있어서는 이 마음은 다만 나 자신의 부족과 죄와 무력한 죄 책과 비참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1. 대 사도 바울이 죄인을 하나님에게 인도하기 위하여 한 그의 말은 예수님의 사상을 뒷받침해 줍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를 향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롬 1:18) 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이교도에 대한 고발적인 말로서 그들의 불의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는 사실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도 이교도들 보다 더 나은 것이 없기 때문에 그들도 역시 이교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정죄 아래 있다고 말한 것은, 그들이 고상한 겸손의 덕에 이르도록 하려고 함이 아니라 "인간들의 변명하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의 심판에 복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롬 3:19)
바울은 계속해서 그들은 다 함께 정죄를 받은 인간들 일뿐 아니라 자력(自力)으로 자신들을 구원할 수 없는 무능력자임을 나타내려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요컨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은 하나도 없는"(롬 3:20)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는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롬 3:21).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 없이,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 하노라"라고 바울은 천명했습니다.
이 모든 표현은 결국 한 목표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로 그들의 교만을 꺽고, 티끌에 까지 낮추며, 자기들이 겸손의 덕을 가졌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게 함과 동시에, 자신들은 전적인 죄인으로서 정죄를 받은 인간임과 무력자임을 자각케 하여, 자신들의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우리의 의가 되시는 강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달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2. 죄인이여, 깰지어다! 그대 자신을 알라! 그대는 죄악 중에 지어졌으며, 모친이 죄 중에서 그대를 잉태하였음을 알고 느낄지어다. 그리고 그대가 선·악을 분별할 수 있기 전부터 죄 위에 죄를 쌓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지어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능의 손아래 고개를 숙이고 영원한 죽음을 면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모든 망상을 던져버리고, 포기하며, 혐오 하십시요!
친히 나무에 달려 그의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고, 그의 전능하신 성령으로 새로워지는 것이 당신의 모든 소망이 되게 하시오. 그러면 그 때에 비로소 그대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3. 이것이 곧 우리 속에 있는 하늘 나라, 하나님 나라로서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기쁨"인 것입니다.
"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인간 영혼 속에 깃들이는 하나님의 생명"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마음"이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로워지고 마음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평강은 하나님의 평강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받으심이 된다는 확신 아래 우리 심령이 누리는 즐거운 평정을 뜻합니다. 이러한 평정에는 하늘 아버지를 거스르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이외의 모든 두려움은 없습니다.
이러한 내적(內的) 천국은 성령 안에서의 기쁨도 의미합니다. 우리의 지난날의 지은 죄를 사유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돌리심으로 우리 마음에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을 인치시고, 그 날에 의로우신 재판장이 내리실 면류관을 우리가 받을 것을 보증해 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하늘 나라 라고도 하는 것은, 우리 심령 속에 하늘이 이미 열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솟아나는 기쁨의 강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4.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부터 "심령의 가난"을 받아서 자신이 잃어진 상태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을 통하여 하늘 나라를 받을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어린양의 피를 댓가로 우리가 얻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 천국의 바로 옆에 서 있음을 아십시오. 한 발자국 더 나아가면, 당신은 의와 평강과 기쁨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전적으로 죄인입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십시오. 당신은 전적으로 거룩하지 못한 존재입니까? "아버지 앞에서의 우리의 대언자인,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요" 당신은 전적으로 거룩하지 못한 존재입니까? "아버지 앞에서의 우리의 대언자인,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당신은 조그만 죄도 속량할 수 없는 존재라고 보십니까? 그리스도는 당신의 모든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십니다.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모든 죄는 도말됩니다. 그대가 만일 영육간에 전적으로 부정한 존재입니까? 여기에 그대의 모든 죄와 부정을 씻어 줄 샘이 있습니다. 일어나, 그대의 모든 죄를 씻어 버리십시오. 불신앙으로 약속을 더디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감히 믿으십시오! 지금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다음과 같이 부르짖으십시오!
당신의 피의 외침을 듣고
예, 나는 항복합니다.
마침내, 나는 항복하나이다.
내 모든 죄와 함께,
나 자신을 나를 속죄하시는
하나님께 던지나이다.
5. 그 때에 그대는 주님을 배워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진실된, 그리스도인의 겸손인 것이니, 이러한 겸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화해가 이룩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데서부터 흘러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심령의 가난"은 죄책감과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는 마음이 사라질 때 비로서 생깁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우리가 가진 모든 선한 생각과 말과 행동은 하나님의 분초마다 물 주시어 가꾸심이 아니면, 우리 스스로 절대로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한편, 모든 칭예는 하나님께만 귀속됨을 알아 인간의 칭예를 거부하는 태도와 통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동시에 하나님이 이미 용서해 주신 지난날의 죄과나, 또는 우리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지는 수치감도 포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