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담의 치유
"형제가 죄를 짓거든 단둘이 있는데서 충고하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너는 그 형제를 얻은 것이
다.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
라.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사실이 확증되도
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가서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 18:15-17)
1. "살인하지 말라"는 분명한 명령처럼, 위대한 사도는 '사람에게 험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중에서 누가 이 명령을 정말 중요시하고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이것을 이해해야 될 만큼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습니까?
험담이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것은 거짓말이나 비방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성경말씀처럼 진실할런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것은 험담에 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험담이라는 것은, 어쨋든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서 험담을 하는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이 언급되었을 때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실제로 행하고 말했던 어떤 나쁜 일에 대해 언급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전에 술취한 것을 보거나, 그 사람이 저주하고 욕하는 것을 듣고, 그 사람이 없을 때 이 일을 말한다면 그것이 험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말로는 이것이 '헐뜯다'라는 뜻으로 되어있는데 그 뜻은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또한 이 말과 우리가 보통 '소문 퍼뜨린다'고 하는 말 사이에는 별로 실질적인 차이가 없읍니다. 만일 이야기가 부드럽고 조용한 방법으로 전해진다면 우리는 이것을 '쑤근거린다'고 말합니다.(이것은 사람들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일이 나쁘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표현일 경우입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되어지건 간에 그것은 마찬가지이며 비록 상황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본질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험담이며, 이런 경우 '사람에게 험담하지 말라'는 명령은 짓밟히게 됩니다. 만일 본인이 그 자리에 있어서 답변할 수 없을 때에 제 삼자의 결점에 관하여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험담입니다.
2. 사람의 지위와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이같은 죄가 얼마나 극도로 파급되어 있습니까! 지위의 고하, 빈부의 귀천, 현자와 우자, 유,무식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여기에 빠져 들어갑니다! 모든 다른 면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도 이 점에 있어서는 마음이 맞습니다. '나는, 이 점에 있어서는 결백하다' '나는 항상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고 입술의 문을 지킨다'고 하나님 앞에서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당신이 들었던 상당히 긴 대화 가운데 험담이 들어있지 않은 대화를 들어 본 일이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마음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앞에서 양심의 거리낌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도 험담이 있습니다.
3. 그런데 이 죄가 너무 보편적이기 때문에 피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면에서 이 죄에 둘러 싸여 있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이 위험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거나 이 죄에 대해 끊임없이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기가 쉽습니다. 이런 경우에 사실인즉, 모든 인류가 우리를 대적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실례가 어떻게 되는지 알지도 못하게 우리에게 침범해 들어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험담을 모방하는 일에 빠져 들어가고 맙니다.
더구나 험담은 외부에서는 물론 마음 속으로부터 그렇게 하기를 바라게 합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때때로 험담하는 일을 만족해하거나 결과적으로 험담을 하려고 하는 나쁜 기질이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허물이 없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의 결점을 말함으로 자신의 자만심을 만족시킵니다. 분노, 원한, 그리고 모든 불친절한 기질들이 우리가 불만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험담에 빠뜨리게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자기 이웃의 죄를 되풀이 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고 해로운 욕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4. 험담은 흔히 가면을 쓰고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에 피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좋을텐데도) 우리는 이와 같이 악한 사람들에 대하여 고상하고 관대하며 '거룩한 ''분노'를 가진 것처럼 말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한 단순한 증오감 때문에 죄를 짖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열정 때문에 악마에게 봉사하기도 합니다! 단지 악한 사람을 벌하려는 목적에서 이런 사악함에 빠져들어 갑니다. '그리하여 그 열정이 그런 모든 일을 정당화하게 됩니다.' 소위 거룩이라는 탈을 쓰고 자기의 죄를 감추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이런 함정을 피할 길은 없습니까?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의 은혜로우신 주님께서는 위에서 인용한 말씀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분명한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주의깊게, 꾸준히 이 길을 걷는 자는 아무도 험담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법칙은 험담에 대한 틀림없는 예방 조치와 치료 방법이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말씀 중에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을 죄 짓게 하는 이 세상은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말할 수 없는 불행이 이 재앙의 샘으로부터 이 세상에 일어날 것입니다 (범죄란 사람이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거나 방해를 받게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범죄의 유혹이 없을 수는 없으나'(즉 사물의 본성이 그렇고, 인간의 사악함과 어리석음과 나약함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은 '유혹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 사람은 아주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손이나 발이나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즉 가장 재미있는 쾌락, 가장 사랑스럽고 유익한 사람이 당신을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방해하거든, '그것을 빼어 버리라' 즉, 그것을 자르고 내던져 버려야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유혹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유혹 받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특별히 그들이 분명히 잘못되었고, 우리가 그 잘못을 우리 눈으로 본다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주님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즉 주님께서는 범죄와 험담을 모두 피하는 분명한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단둘이 있는데서 그를
충고하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너는 그 형제를 얻
은 것이다.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
고 가라.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사실이 확증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
나 그들의 말도 듣
지 않거든 교회에 가서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와 같이 여기라'
Ⅰ
1. 첫째로 '네 형제가 당신에게 죄를 짓거든 단둘이 있는데서 그의 잘못을 말하라.' 실천할 수 있다면, 이 첫번째 법칙은 문자 그대로 따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므로,만일 어떤 형제 즉 동료 기독교인이 범한 부인하기 어려운 죄를 당신 자신의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어 그래서 당신이 그 사실을 의심하기 불가능하다면, 그 때에 당신의 입장은 분명한 것입니다. 주저하지 말고 우선 그에게 가십시오. 그리고 만일 당신이 가까이 갈 수 있다면 '당신과 그 사람만 단둘이 있는데서 그의 잘못을 말하십시오.
참으로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매우 조심있게 해야 합니다. 그 견책이 성공하는 것은 어떤 정신으로 행해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겸비한 정신으로 권고가 주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 대해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당신을 변화시키는 분은 하나님 뿐이시고 지금 당신이 말한 것에 의해 어떤 선한 결과가 이뤄진다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하신 것이라는 깊고도 뼈에 사무치는 확신을 가지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지키시고, 생각을 밝히시며, 하나님께서 기꺼이 축복해 주실 수 있는 그런 말을 당신이 할 수 있도록 당신의 혀를 주장해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겸비한 마음은 물론 유순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사람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상대방이 실수하게 되면 온유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상대를 돌이킬 수 없습니다. 만일 상대방이 진리에 반대할 때에 유순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그를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많은 물을 가지고도 끌 수가 없는' 부드러운 사랑의 정신으로 말하십시오. 사랑은 정복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누가 감히 사랑의 힘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곧은 목을 숙이게 하며, 돌같은 마음을 부드러운 살같이 변하게 하네.
금강석같이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녹이고, 꿰뚫으며, 부순다네.
그렇다면 당신은 상대방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확인하십시오. 그리함으로 당신은 그의 머리위에 숯불을 쌓아놓게 될 것입니다.
2. 그러나 당신이 말하는 태도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일치하는지를 살피십시오. 교만이나 자만심을 느끼지 않도록 시선, 몸짓, 말, 목소리를 조심하십시오. 고압적이거나 독단적인 것을 모두 피하십시오. 경멸, 건방짐, 얕보는 태도가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똑같은 주의로써, 사람들에게 성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하십시오. 당신이 아주 분명한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말 속에 비난이나, 매도하는 힐난이나 사랑 이외의 어떤 흥분된 표현을 하지 마십시오. 무엇보다도 미움과 악의의 그림자를 드러내지 말고, 신랄하거나 심술궂은 표현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다만 모든 것이 마음 속에 있는 사랑으로부터 우러났다고 보여지도록 관대할 뿐만 아니라 상냥한 태도와 말을 사용하십시오.
그러나 이러한 상냥함으로 인해 가장 심각하고 엄숙한 태도로 말하는 것이 방해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에 있는 말씀인 한,(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는 하나님의 눈 앞에 서 있는 한,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3. 만일 당신이 개인적으로 그에게 말할 기회가 없거나 또한 접근할 수 없다면 그 때는 사람을 보내서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정신과 태도를 가지고 말하는 그런 사람은 당신이 철저히 신뢰할 수 있는 그런 공통적인 친구여야 합니다. 그와 같은 사람이 똑같은 목적에 부응할 수 있으면 상당한 정도로 당신의 봉사의 부족함을 보충해 줄 것입니다.
단지, 십자가를 피하기 위해서 기회가 없다고 핑계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노력하지도 않고 그에게 접근할 수 없다고 쉽게 단정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당신 자신이 개인적으로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전혀 말하지 않는 것 보다는 다른 사람을 시켜서 말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방법이 전혀 말하지 않는 것보다는 더 좋습니다.
4. 그러나 만일 당신 자신이 말할 수 없고 믿을 대리자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실상, 이런 경우라면 그 때는 글로서 전하는 방법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말을 전하게 되는 경우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경우의 하나는 우리가 권고할 사람이 너무 흥분하고 격렬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어서, 특별히 자기와 동등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서 견책을 받을 때 이를 쉽게 참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권고를 받아들이기 쉽도록 그것을 편지로 써서 부드럽게 할 수는 있습니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듣기에는 견딜수 없는 똑같은 말을 글로서는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자존심에 심한 충격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별로 인상적이지 않더라도, 두번 읽게 되어 더 생각을 깊이 하게 되면, 전에 무시했던 것들을 마음 속에 받아 들이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만일 당신의 이름을 첨부하면, 대면하여 말하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 일이 됩니다.
만일 이 일이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에 부적당하게 되지 않는 한, 당신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5.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절대적으로 명령하신 단계일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우리가 제일 먼저 이 방법을 취하도록 명령하셨다는 사실을 잘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방도가 없고, 그 밖의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이 길이 바른 길이고, 이 길을 걸어야 합니다.
만일 필요가 있다면, 다른 두개의 방법을 취하도록 주님께서 요구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을 택한 후에만 계속해서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고, 어느 것도 이것보다 앞서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더구나 이 방법 이전에, 이것을 제외하고, 어떤 방법을 취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다른 방법을 취하거나, 이 방법을 취하지 않는 것은 둘 다 똑같이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6. '내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의 부담을 느끼기까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전혀 다른 방법을 취하기 위하여 자신을 변명하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정말 마음에 부담이 되셨다구요! 만일 당신의 양심이 마비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분명하신 명령을 복종치 않는 죄책감 아래 있기 때문에 그랬다면, 놀랄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즉각적으로 그를 찾아가서 '단둘이 있는데서' 당신의 형제의 잘못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당신 마음이 전적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는 한) 당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짓밟고, 당신의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위하게 됨으로써, 마음의 부담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이 마음의 부담을 없애는 길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제에게 그의 잘못을 말하지 않은 태만의 죄를 견책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형제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고한 범죄 때문에 하나님의 견책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위로해야 합니다.
죄로 손쉽게 사들인 것은 비싼 댓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당신이 형제에게 가서 그에게만 말하기(어떤 다른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고)까지는, 내가 믿기로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고 점점 더 마음의 부담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7. 그러나 이 법칙에 대한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경우에는 당사자가 없을지라도, 자신이 결백한 자임을 변호하기 위해 범죄자를 고발할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이웃의 재산과 생명를 탈취하려는 계획을 착수하지 못하도록 막고, 그런 행동을 모르는 사람에게 지체없이 알리는 길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해있을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람에게 험담을 하지 말라'는 사도의 법칙은 제쳐 놓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당신 자신에게까지도 동시에 악을 행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 험담하는 것은 합법적임은 물론 우리들의 중요한 책임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모든 험담은 그 본질에 있어서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때때로 약으로서 사용하게 될 경우에도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약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외에는 전혀 이것을 사용해야 할 구실이 없습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그럴 필요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때에라도 될 수 있는 한 적게 사용하십시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십시오. 언제나 '단둘이 있는 데서만 그의 죄에 대해 그에게 충고하십시오.'
Ⅱ
1. 그러나 만일 '그가 들으려 하지 않고' 선을 악으로 갚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보다 오히려 화를 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악한 길을 계속 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장 온화하고 부드러운 충고라도 효과가 없고, 다른 사람에게 바라던 축복이 우리들 자신의 마음 속에 되돌아 오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우리 주님은 분명하고 충분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때는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라.' 이것이 두번째 단계입니다. 사랑하는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과 자기의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십시오.
이렇게 하여 겸비한 정신을 가지며 '겸손으로 옷입도록' 하십시오. 그들로 하여금 유순하고 온유하며, 인내하고, 오래 참도록 하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욕을 욕으로 갚지 않게 하며, 오히려 그 반대로 축복으로 갚도록 하십시오. 위로부터의 지혜를 부여받은, 이해심 있는 사람이 되게하고, 공평하고, 편파심이 없고, 어떤 편견도 없는 사람이 되도록 하십시오. 이와 같이 그들의 인격과 성품이 그에게 잘 알려지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잘 받아 들여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호의적으로 선택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그 일의 성격에 따라 그들이 취해야 할 태도를 사랑은 지시할 것입니다. 어떤 특수한 방법이라도 어떤 경우에나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개 일반적으로는, 그들이 그 일에 개입해 들어가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해 분노나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고, 지금 그들이 그에게 온 것이나 이 사건에 개입하는 모든 것은, 단지 선의의 원리 때문이라는 것을,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태도로 선언하도록 충고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좀 더 분명히 하자면,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기를 시도하기 전에, 당신이 이전에 그 사람과 대화한 것과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을 변호하여 어떤 말을 했는가를 반복하여 그들로 하여금 조용히 경청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 후에야, 두 세 사람의 증인의 입으로 모든 사실이 확증되도록, 즉 그들의 권위의 무게를 더해 줌으로써 당신이 말했던 것들은 무엇이든지 보다 강한 힘을 갖도록 처리할 방법을 그들이 더욱 쉽게 판단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이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1) 당신이 무슨 말을 했으며 그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를 간결하게 되풀이 할 필요가 없겠습니까?
(2) 당신이 말한 이유를 확대시키며 공개하거나 확인할 필요가 없겠습니까?
(3) 당신의 견책이 얼마나 정당하고, 얼마나 친절하고, 얼마나 합리적인가를 밝히므로, 당신의 견책의 무게를 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마지막으로 여기에 추가했던 충고와 설득을 강요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필요할 경우, 이후로는 말해진 것들이 증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4. 앞에서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이 점에 관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선택의 여지나 다른 대안을 주시지 않고, 오직 이와 같이 하라고만 분명히 지시하셨을 뿐. 그것을 대신 할 그 밖의 다른 여지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유의해야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또한 언제 이렇게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지시해 주십니다. 즉,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즉, 첫번째 단계를 취한 후 세번째 단계를 취하기 전에 하라고 말입니다. 형제애적인 사랑의 위대한 기회를 맞이하여 우리와 더불어 책임을 감당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행한 죄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권위가 주어지는 것은 바로 그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 가지 단계가 취해지기 까지 또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해 조심해야 됩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단계를 취하는 것을 등한히 하거나 어떤 다른 단계를 취한다면 마음에 부담을 가지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 대항한 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양심이 살아 있는 한 아무리 이 사실을 아름답게 꾸민다하더라도 우리의 죄는 우리를 발견할 것이며, 우리의 영혼에 부담을 지울 것입니다.
Ⅲ
1. 이러한 중요한 일에 대하여, 철저히 교훈을 받도록 우리 주님은 그 이상의 교훈을 우리에게 해주셨습니다. 즉 '만일 그 사람이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그 때에는, 즉 그렇게 한 후에는 '교회에 가서 그것을 말하라.' 이것이 세번째 단계입니다.
여기서 '교회'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서울에서 회집된 회중이나 협회(당신이 그런 뜻에서 '교회'를 정의한다면)에 그것을 말한다는 것은 별로 가치있는 답변에 부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영혼과 그 사람의 영혼에 대해 '주님께 보고해야 하는' 사람들 즉 당신들을 감독하는 장로나 장로들에게 말하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만일 편리하게 할 수 있다면 그 일과 관련된 '사람의 면전에서 행해야 하며, 비록 분명하다 할지라도, 그 일의 성격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관용과 사랑을 가지고 행해야 합니다. 자기의 보호아래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고, 범죄의 죄과에 따라 권위를 가지고 '견책'하는 일은 장로의 직책에 응당 속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렇게 했을 때에,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의 법이 요청하는 모든 것을 행한 것이 됩니다. 즉, 이제 당신은 그 사람의 죄에 대해 책임이 없습니다. 만일 그가 멸망한다면 그의 피가 그 자신의 머리에 돌아 갑니다.
2. 여기에서 역시 유의할 것은 다른 어떤 방법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취할 세번째의 단계이며, 이 단계는 그 순서에 있어서 다른 두 단계 이전은 물론, 더구나 첫번째 단계 이전에 취해서도 안됩니다..
사실, 어느 한 경우에는 두번째 단계가 이것과 일치할 수도 있습니다. 즉 방법에 있어서 똑같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장로나 장로들이 죄진 형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장로들에게 한 두 사람의 증인을 동반할 필요가 없고 장로들이 이들을 대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단 둘이 있는 데서만' 당신의 형제의 죄에 대해 말한 후에 그것을 장로들에게 직접 말하는 것이 족합니다.
3. 당신이 이렇게 한다면 당신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게 됩니다. '만일 그가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즉 자신의 죄를 고집한다면,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와 같이 여기십시오.'
그러나 당신이 그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이외
에는 그에 대해 생각할 책임이 없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그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고 다만 그의 주님께 그를 맡기십시오.
실제로, 당신은 다른 이방인들에게 대하는 것처럼, 그에 대해 열의와 부드러운 선의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고,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인간적인 모든 직무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어떤 우정이나 친밀감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공개적인 이방인으로 대하는 것 외에는 다른 교제가 필요 없습니다.
4. 그러나 만일 이러한 태도가 기독교인이 걸어야 할 법칙이라면 기독교인이 사는 땅은 어디입니까? 당신은 이 법칙을 준수할 만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저기 불과 몇 사람 밖에 안된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적습니까? 지상에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드물게 흩어져 있습니까? 보편적으로 이 법칙을 따르는 사람들의 집단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유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나라를 아무리 찾아도 그 일이 헛수고라고 생각됩니다.
아! 기독교 세계여! 기독교인들이여! 개신교도들이여! ' 누가 악한 자들과 대항해 나와 함께 일어설 수 있겠습니까?' 험담하는 자에 대항하여 누가 과연 하나님 편에 설 것입니까? 당신이 바로 그럴 수 있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급류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당신은 바로 이 순간부터 당신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께 대해 끊임없이 '당신의 입을 감시하며 입술의 문을 지키는' 파수꾼을 세우도록 완전
히 결정하셨습니까? 바로 이 시간부터 '사람에게 험담하지 말라'는 이 법칙을 따라 살겠습니까?
당신의 형제가 악행하는 것을 보면 ' 당신은 단 둘이 있는 데서만' 그의 죄에 대해 권고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난 후 '두 세 증인 을 데리고 가며' 그런 다음에야 '교회에 가서 그 일을 말하시겠습니까?'
만일 이것이 당신 마음의 완전한 뜻이라면 '어떤 사람의 험담도 듣지 말라'는 교훈을 잘 배우십시오. 듣는 자가 없다면 험담하는 자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일반 속담에 의하면) 도둑질한 물건을 받는 자는 도둑질만큼이나 나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만일 당신이 듣는데서 어떤 이가 험담을 하게 되면 즉시 그를 제지하십시오. 그렇게도 매혹적으로 말하고 있는 매혹자의 목소리를 듣기를 거절하십시오.
'말하기 전까지는 마음의 부담이 되었다'고 그 쑤근거리는 자가 불평을 하더라도, 그 말을 듣기를 단호히 거절하십시오. 마음의 부담이라니! 당신들은 우매한 자들입니다. 여자가 자녀들 때문에 고생하듯이 당신은 저주받은 비밀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가서 주님께서 정해주신 방법으로 여러분의 마음의 부담을 벗어 버리십시오. 첫재로는 '가서 단둘이 있는 데서 형제의 허물에 대해 충고하십시오.' 그 다음에는 ' 두 세사람의 공통적인 친구를 데리고 가서 그들의 면전에서 충고하십시오.' 만일 이러한 단계도 효과가 없다면 그 때는 '교회에 가서 그것을 말하십시오.'
그러나, 당신의 결백을 보존하는 데 절대로 필요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그 이전이든지 그 이후이든지 간에, 당신의 영혼을 걸고 다른 아무에게도 이것을 말하지 마십시오. 왜 당신은 그 사람을 당신의 죄에 동참시켜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부담을 주려고 하십니까?
5. 그리스도의 능욕을 몸에 지니고 '감리교도'라고 조롱조로 불리우는 당신들은 소위 기독교 세계에 적어도 이 한 가지 경우에 있어서만은 모범을 보여 주도록 하십시오. 험담, 소문 퍼뜨리는 일, 쑤군거리는 일을 버리십시오. 이런 말들이 하나라도 당신의 입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선한 말 이외에는 사람이 없는데서 그 사람의 험담을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당신이 타인과 반드시 구별되려면 이것을 감리교인의 표준으로 삼으십시오. 감리교인은 사람의 배후에서 그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열매를 보아 당신은 그 사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자기부정의 축복된 결과를 우리 마음속에 신속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평화를 추구할 때' 우리의 평화는 얼마나 강물같이 흐르게 될 것입니까! 우리의 '형제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이와같이 확증할 때에 우리 자신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넘치겠습니까!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함께 연합된 우리 모두에게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까? 형제애에 대한 거대한 장애물이 제거되었을 때, 형제 우애가 얼마나 끊임없이 증가할 것입니까?
그 때에 신비한 몸에 속한 모든 형제들이 그 때에는 서로 서로 돌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칭찬을 받게 되면 모두가 함께 그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형제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열렬히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거칠고 몰지각한 세상에서까지 이것이 얼마나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까! 그들의 수많은 형제들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자를 그들이 우리들 속에서는 속히 발견하고 (배교자 쥬리앙이 이방 정신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기독교인이 서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시오.'라고 외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최후의 엄숙한 기도 속에서 나타난 이 괄목할 만한 말씀을 통해 우리가 용이하게 이 사실을 배우는 바와
같이, 주로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깨닫게 하시고 그의 나라를 그들을 위해 예비하게 하십니다. 즉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비옵는 것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이 모두가 하나가 되어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이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바로 그 때를 재촉하십니다. '말과 혀'로 뿐만 아니라 '행위와 진실에' 있어서도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주님은 우리가 서로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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