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1:15)
이 말씀들은 첫째, 진정한 종교의 본질, 즉 여기서 우리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하신 것, 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며, 둘째로는 주께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신 말씀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자연스럽게 우리를 인도합니다.
Ⅰ
1.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라고 우리 주께서 여기 말씀하신 바, 진정한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과 똑같은 표현을 위대한 사도도 로마서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역시 그는 주의 말씀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기쁨입니다"(롬14:17)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나라", 진정한 종교는 "음식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는 유대인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받은 수많은 사람(유대그리스도인들)까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열심"(행21:20)이었습니다. 즉 모세의 의식적인 율법에 대해서 열심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쓰여있는 모든 사항을, 그것들이 소제와 관제에 관한 것일지라도, 또는 깨끗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구별에 관한 것일지라도 자기들이 그것을 지켰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방인들"(행 15:19)에게도 꼭 같은 것을 억지로 강요한 것입니다. 아니 그 뿐만이 아니라, 그 강요한 정도의 격렬함은 그들 중의 몇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는 사실입니다. 주를 믿은 이방인들이 어디서 유대그리스도인들 가운데로 들어왔건 "여러분도 할례를 받고 율법(의식적 율법의 전부)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행15:1)라고 말합니다.
3. 이 주장들을 반대하여 사도는 여기서도, 또는 다른 많은 곳에서도 진정한 종교는 음식이나 의식 준수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외면적인 것으로 조금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 전체 요지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기쁨"(롬14:17)인 것입니다.
4. 그것이 가장 탁월한 것이라 해도 형식이나 의식과 같은 외적인 사항으로 참된 종교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가령 그런 것이 참으로 훌륭하고 의미있는 것일지라도, 또 내적 사항을 잘 표현하는 것일지라도 그렇습니다.
가령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는 생각이 거의 미치지 못하는 서민에게 대해서만이 아니오, 확실히 때로 그런 것처럼, 이해력 있는 사람들, 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까지 도움이 되는 것일지라도, 참된 종교는 형식이나 의식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그 뿐 아니라 비록 그런 것이 유대인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정해진 것이라 해도, 그 하나님의 정하심이 효력을 가지고 있는 동안이라도, 진실한 종교는 주로 그것들로서 성립되진 않는 것입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한다면, 전연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은 다만 인간에 의해서만 정해진 의식이나 형식에 대해서 더욱 잘 맞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종교는 그러한 모든 형식이나 의식보다도 무한히 높고 한없이 깊습니다. 그러한 형식이나 의식이 사실 진정한 종교의 수단이 되고 있는 한에서 그런 것이 좋은 것입니다. 또 그런 것이 단순히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이따금씩의 도움으로 사용되는 동안은 그런 것에 반대하는 일은 미신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이상의 것을 관철해서는 안됩니다. 형식이나 의식이 고유한 가치를 가졌고 종교가 그것 없이는 존재 할 수 없다고 꿈 꿔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의식이나 형식은 주 하나님께 혐오해야 할 것이 되어 버립니다.
5. 종교의 본질은 그러한 예배의 형식이나 의식으로 성립되는 것과는 훨씬 먼 것이어서, 적절히 말해서 어떠한 종류의 외적 행위로도 전연 성립되지 않습니다.
물론 사악하고 부도덕한 행위에 책임이 있거나, 혹은 자기가 그런 경우에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대우받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는 사람이 전혀 종교를 가질 수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선을 알고 있으면서 이를 행치 않는"(롬7:19) 자가 진정한 종교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자가 그러면서도 여전히 종교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그 뿐 아니라 두 사람이 동일한 외적 행위, 예컨대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혹은 벗은 자를 입혔다해도 한편 그 중의 한 사람은 진실하게 종교적이요, 다른 한 사람은 전혀 종교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쪽은 하나님을 사랑함에서 선을 행하며 다른 쪽은 칭찬을 사랑함에서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종교는 자연히 모든 좋은 발언이나 행위에로 인도한다 할지라도, 그 진실된 본질은 여전히 보다 깊은 곳 즉, "마음의 숨은 속 사람"(벧전3:4) 안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6. 나는 "마음의(of heart)"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정통적인 가르침(orthodoxy),혹은 바른 의견(right opinion)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은, 외적인 사항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해 버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마음(heart)에서가 아니고 이해력에 속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점에서 정통적이어서 단지 바른 의견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열광적으로 그것들을 모든 반대자들에 대항하여서 옹호할런지도 모릅니다. 그는 우리 주님의 성육신에 대해서, 영원히 복받으신 삼위일체에 관하여,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다른 교리에 관하여, 바르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세 가지 신조 모두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이라 불리는 것들-에 동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역시, 그에게 유대인, 터키인, 혹은 이방인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전혀 종교가 없었다는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는 거의 정통적일지도 모릅니다-악마와 마찬가지로.(그렇지만 전적으로 마찬가지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무엇인가에서 잘못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악마가 무엇인가 잘못된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만큼이나 마음의 종교에 대해 시종 전혀 문외한일 수가 있습니다.
7. 이것만이 참으로 종교라고 불리어지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하나님 앞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것을 세 특질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기쁨"(롬14:17) 입니다.
이제 먼저 의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의의 두 숭고한 부분을 설명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을 기억한다면 이에 관해서 우리가 실패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의의 두 부분에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강령"(마 22:40)이 걸려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으뜸되는 계명"(마22:37-
38)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의의 첫째의 위대한 부분입니다.
당신은 주 당신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에게로 모든 행복을 구하고 또 발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방패며, 당신의 지극히 큰 상급이십니다."(창15:1) 시간 안에서 또는 영원에서 그렇습니다. 당신의 모든 뼈는 말할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시73:25) 당신은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라"(잠23:26)고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를 듣고 그 말씀을 성취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경쟁자가 없이 지배하시도록 당신의 마음을, 당신의 가장 깊은 영혼을 하나님께 드렸으므로, 당신은 마음에 넘쳐서 외칠 것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9:1,2)
8. 그리고 둘째의 명령은 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의의 둘째의 위대한 부분은 분리시킬 수 없는 방식으로 첫째의 것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즉 둘째의 부분이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라' - 즉 당신은, 모든 악을 방지하고 혹은 제거하며 또 이웃을 위해 가능한 모든 선을 획득하려는 가장 부드러운 선의와 가장 진지하고도 간곡한 애정과 최대의 열망을 가지고 포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당신의 이웃' - 즉 당신의 친구, 친척, 혹은 사귀는 사람, 또는 덕 있는 자, 우정 있는 자, 당신을 사랑하는 자, 당신의 친절에 앞서는 혹은 보답하는 자만이 아니요, 모든 사람의 아들, 모든 인간,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영혼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결코 육신으로 본 일이 없는 사람, 얼굴로나 이름으로나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포함합니다. 악의가 있고 감사의 정이 없다고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 당신을 여전히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박해하는 사람도 포함하는 것으로 그를 당신은 자기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모든 종류의 행복을 그를 위해서 언제나 변함없이 갈구하며 그의 영혼이나 육체를 슬프게 하고 혹은 상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비호하기 위하여, 지칠 줄 모르는 관심으로써 사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를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9. 이제 이 사랑이 "율법의 성취요"(마5:17)이요, 그리스도인의 모든 의의 총계가 아니겠습니까?
이 사랑은 모든 내면적 의의 총계가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사랑은 필연적으로 긍휼과 겸손(사랑은 '교만하지 않은' 것이므로-고전13:4), '온화함, 온유한, 오래 참음'(왜냐하면 사랑는 성내지 아니하고 다만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기' 때문-고전13:5,7)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 사랑은 모든 외면적 의의 총계가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말로나 행동으로나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기"(롬13:10) 때문입니다. 사랑은 고의로 누구를 상한다거나 슬프게 하거나 할 수 없습니다. 또 사랑은 선한 일에 열심입니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랑은 누구나, 기회가 있으면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도모하는"(동1:17)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편파나 위선이 없이)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기"(약3:17)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진정한 종교, 혹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바르게 향하는 마음은 거룩과 함께 행복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의"일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서 평강과 기쁨"(롬14:17)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평강입니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고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빌4:7), "사람의 모든 헤아림, 곧 모든 합리적(일 뿐이기만 한) 개념을 뛰어넘는 평강"입니다. 그것은 "장차 올 세상의 권능"(히6:5)에 의한 초자연적인 감동이요 신적 경험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의 일에 현명해도 자연인은 모르는 일입니다. 또 실상 그의 현재의 상태로는 그것을 알기는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영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고전2:14) 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든 의심, 모든 지겨운 불확실성을 추방하는 평강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인의 영과 함께 그가 "하나님의 자녀"(롬8:16)라는 것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평강은 두려움을, 고뇌를 주는 그러한 모든 두려움, 하나님의 진노의 두려움, 지옥의 두려움, 악마에 대한 두려움, 특히 죽음의 두려움을 추방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소유한 자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빌1:23) 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11. 하나님의 평강이 영혼 안에 확고히 자리 잡은 곳에서는 그것과 함께 "성령 안의 기쁨"(롬14:17)도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에 의하여, 즉, 영원히 축복받으신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마음 속에 이루어진 기쁨입니다. 우리 안에 그 평온하고 겸손한,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을 이루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이제 우리로 속죄"(롬5:11), 즉 하나님과 화해를 얻게 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시는 것입니다.
저 왕인 시편 저자의 말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가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차라리 행복하다는 말이 더 적합합니다.)한 진리(시32:1)를 우리에게 대담하게 확신시키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성령의 증거로 생겨나는, 평온하고 확실한 기쁨을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불어 넣으시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기뻐하는"(벧전1:18) 것을 그에게 주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란다는 것(소망)은 현재는 부분적으로지만 장래는 완전하게 "그 안에서 나타날"(동1:17)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바라는 일이요, 또 그를 위해 하늘에 예비해 둔 사라지지 않을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는 일입니다.
12. 이 거룩과 행복이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을 가끔 성서는(이 설교의 본문에서 우리 주께서 그렇게 부르신 바와 같이) "하나님 나라"(막1:15 등)라고 부르며 또는 어떤 때에는 "천국"(마3:2)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라고 호칭되는 것은 그것이 영혼 안에 하나님께서 지배하시는 사실에서 맺어진 즉각적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신 능력을 동원하셔서 우리의 마음 속에 그 보좌를 정하시자마자 우리의 마음은 즉시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롬14:17)으로 충만해 집니다.
"천국"(혹은 하늘 나라)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그것이(어느 정도) 영혼 안에 열려져 있는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경험하는 자는 누구나 천사와 사람 앞에 성서의 변치 아니하는 취지를 따라;
영원한 생명이 얻어지고
영광이 땅 위에 시작되었다.
고 단언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도처에서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과 그 생명은 그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드님을 소유한 사람(즉 아들이 그 마음을 지배하는 자)은, "생명, 즉 영원한 생명(요일5:11-12)을 가진다"고 증거해 줍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생명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그것이옵니다"(요17:3)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단3:8-30)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주여 당신의 능력으로 안전히 보호받는
우리는 당신을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찬미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나타나신
당신을 향해 끊임없이 할렐루야가 드려지도록
당신의 보좌인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기서 찬양을 드립니다.
당신의 임재가 들어난 곳은
어디나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13. 이제 이 "하나님의 나라" 혹은 천국은 "가까이 있습니다"(막1:15). 이러한 말이 처음 말해졌을 때는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시고"(딤전3:16) 당신의 왕국을 사람들 속가운데 세우시며 그 백성들의 마음에 군림하실 "때"(막1:15)가 이제 성취됐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 때가 이제 성취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용서를 전파하는 자들과 함께 하나님은 세상 끝까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가까이 있는"(막1:15)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멀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그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면, 당신들은 이제 이 시간에 그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Ⅱ
1. 이것이 그 길입니다. 당신들은 그 길을 걸으십시요. 그리고 첫째로 "회개"(막1:15)하십시오. 즉 당신들 자신을 아십시오. 이것이 신앙에 선행하는 최초의 회개입니다. 죄에 대한 확신(conviction), 혹은 자신을 아는 일입니다.
그러니 잠자는 자여 깨어 나십시요. 당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어떤 종류의 죄인이라는 것을 아십시요. 당신내면의 본성의 그 부패 때문에 당신은 본래의 의에서 멀리 떠나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고 또 복종할 수도 없는"(롬8:7), "하나님을 대적하는"(동) "육의 생각"(동)을 통하여, "육신의 의욕은 언제나 성령을 거스리는"(갈5:17) 것입니다.
영혼의 힘, 그리고 모든 기능에서 당신은 전적으로 부패(totally corrupted)되어 있음을 아십시요. 당신의 이해력의 눈은 어두워져서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사실을 식별할 수가 없습니다. 무지와 오류의 구름이 당신 위에 걸려 있고 당신을 죽음의 그늘로 덮고 있습니다. 당신은 아직도 알아야할 사항, 하나님·세계·당신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당신의 의지는 이미 하나님의 의지는 아니요 전혀 그릇되고 왜곡되어 있어서 모든 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싫어하며, 모든 악,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모든 혐오스러운 것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신의 애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서 온 땅 위에 흩어져 있습니다. 당신의 모든 정열, 즉 당신의 욕망과 혐오, 기쁨과 슬픔, 희망과 두려움은 틀에서 벗어나 있으며, 정도에 있어서 도를 지나치던가 혹은 부당한 대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여 당신의 영혼에는 전연 건강성이 없습니다. 오히려(예언자의 강한 표현을 쓴다면)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상한 것과 터진 것과 곪은 종기"(사1:6)가 있을 뿐입니다.
2. 이상이 당신의 마음, 즉 당신의 가장 속 깊은 본성 내부에서 생긴 부패입니다. 당신은 이러한 악의 뿌리에서 어떤 종류의 가지들이 자라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거기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부터 점점 더 떠나가는 불신앙이 발생합니다. 불신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섬겨야한다는 그 하나님이란 무엇인가? 제기랄! 하나님인 당신은 내 일 같은 것에 관심도 없을테지"라고.
거기에서 "지극히 높은 분"이신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인간의 독립이 생겨납니다. "나는 부자요 재산은 불어나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라고 교만이 당신을 가르칩니다.
이 악의 근원으로부터 독한 허영의 흐름이, 칭찬에의 갈급, 야심, 탐욕,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생활의 교만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이 곳으로부터 분노, 증오, 악의, 복수, 시기, 질투, 악한 추측이 발생합니다.
또 이 곳으로부터 이제 "많은 근심으로 그를 찌를"(딤전6:10), 그리고 만일 적당한 때에 방비하지 않으면 마침내는 당신의 영혼을 영원히 파멸 속에 빠뜨려버릴 모든 어리석고 해로운 욕망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3. 이제 그러한 가지로부터 어떤 열매가 자라날 수 있습니까? 끊임없이 쓰고 악한 것 뿐입니다.
교만에서는 다툼, 헛된 자랑, 사람으로부터의 칭찬을 구하고 받는 일, 그리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다른 이에게는 주실 수 없는 영광을 하나님으로부터 빼앗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육욕에서는 성령의 전으로 의도된 육체를 여러 모양으로 더럽히는 폭식, 술취함, 사치 혹은 호색, 간음, 불결이 생겨납니다.
불신앙에서는 모든 악한 말이나 행위가 생겨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격동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슬프게 한 모든 무익한 말들, 그 자체가 전혀 악하든가 혹은 적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해지지 않는 모든 악한 행위들,-만일 당신들이 이 모든 것을 합산한다면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실제로 범한 죄는 당신이 말로 표현할 수 있기보다도, 당신의 머리털보다도 많은 것입니다.
누가 바다의 모래나 빗방울이나 당신의 부정을 헤아릴 수 있습니까?
4. 당신은 "죄의 삯은 죽음이요"(롬6:23), 즉 시간적인 죽음일 뿐만 아니라 영원한 죽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죄를 범한 영혼은 죽을 것이다"(겔18:4)라고 주의 입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둘째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죄에 대한 선고는 끝이 없는 죽음이요, "그들은 주의 앞과 그의 권능의 영광에서 떠나게 되어 영원한 파멸의 벌을 받게될 것입니다"(살후1:9) 당신은 모든 죄인이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 이것을 '지옥불의 위험에 있다'고 번역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 표현은 아주 너무 약하며 오히려 '지옥불의 선고아래 있다'입니다. 이것을 "지옥불의 선고 하에 놓여 있다." 즉 이제 막 처형에 끄을려 가는 것이요 이미 파멸로 운명지워져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영원한 죽음에 해당하는 죄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내적 또 외적인 사악성의 정당한 보복입니다. 그리고 처형이 이제 집행된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합니다. 당신은 그것을 알고 또 느끼고 있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당신은 철저히 확신하십니까? 만일 하나님이 땅에게 입을 벌려 당신을 삼껴 버리도록 이제 명령하실지라도, 또 만일 당신이 이제 나락으로 신속히 떨어져서 결코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떨어져 가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당신에게 어떤 잘못을 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이 참으로 회개하기를 허락하신다면, 당신은 자신이 당연히 거기 해당하는 자임을 깊이 느끼고 당신이 소멸되지 않고 대지의 표면으로부터 쓸려가지 않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5. 당신은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키기 위해서, 당신의 모든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또 당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형벌을 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방법으로도 단 한 가지의 악한 행위, 말, 생각을 위해서라도 하나님께 보상하는 일을 당신은 전혀 할 수 없습니다.
비록 이제 당신이 모든 일을 훌륭히 할 수 있다고 해도, 또 이제 이 시간부터 당신의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갈 때까지 당신이 완전한, 끊임없는 복종을 실행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과거의 일을 속죄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의 부채를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일이 부채를 갚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큰 부채로 여전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 뿐 아니라 땅 위의 모든 인간, 하늘의 모든 천사들의 현재 및 장래의 복종도 단 하나의 죄를 위한 하나님의 정의를 결코 만족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로 당신 자신의 죄를 속량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헛된 일입니까?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지불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죄의 책임이 있는 죄인을 위하여 무슨 다른 도움이 없다면, 의심없이 그는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6. 또 이제로부터의 완전한 복종이 지나간 죄를 보상할 수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일은 당신을 전연 유익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어느 한 점에서도, 완전한 복종을 결코 수행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험 삼아 그것을 시작해 보십시요. 당신에게 쉽게 에워싸는 오는 저 외적인 죄를 떨어 버리십시요. 당신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당신은 당신의 생활을 온전한 악으로부터 온전한 선으로 바꿀 수 있습니까? 실로 먼저 당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그것을 행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나무가 악한 동안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마음을 온전한 죄로부터 온전한 거룩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까?
죄로 죽어 있는 영혼을,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죽었고 세상에 대해서만 살아 있는 영혼을 다시 살게 할 수가 있습니까? 죽은 육체를 깨워서 무덤 속에 누어있는 자를 생명에로 다시 살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영혼을 어느 정도까지라도 다시 살리는 일을 당신은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이 일에 대해서 크건 작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겐 전혀 힘이 없습니다.(You are utterly without strength)
당신이 얼마나 죄의 책임이 있는 자요, 죄 가득한 자인가, 또한 얼마나 무력한 자인가를 깊이 깨닫는 일이 하나님의 나라의 전조가 되는 "후회할 것이 없는 회개"(고후7:20) 입니다.
7. 당신의 내면적, 외면적 죄에 대해서 당신이 전적으로 죄의 책임이 있는 자요 무력한 자라는 생생한 확신에 적당한 감정이 가해진다면, 나는 당신에게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막12:34)고 말합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적당한 감정이란 - 하나님이 당신에게 긍휼로 주신 것을 멸시한 사실에 대한 마음의 슬픔, 말 문이 막힌 채 양심의 가책과 자기 정죄를 느끼는 것, 하늘로 눈을 드는 일을 부끄러워하는 것, 당신 위에 머무는 하나님의 진노와 당신의 머리 위에 걸려 있는 하나님의 저주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복종하지 않는 자를 삼키려고 준비된 활활 타는듯한 하나님의 의분을 두려워하는 마음, 또 그 분노로부터 도피하여 악을 그치고 선을 행하는 일을 배우려는 간절한 소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주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습니다. "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당신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당신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복음(막1:15)을 믿으십시요."
8. 복음(즉 좋은 소식, 죄의 책임있는 무력한 죄인을 위한 좋은 소식)은, 좀 더 넓은 의미로 쓰여질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내신 모든 계시를 의미하며, 때로는 우리 주께서 인간들 가운데 머물러 계시는 동안 행하시고 고난 받으신 모든 일을 의미합니다. 그 요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딤후1:15)는 일이요, 또 "하나님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3:16), 혹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라는 것입니다.
9. 이것을 믿으시요.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당신의 것입니다. 믿음으로 인하여 당신은 그 약속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으로 회개하고 거짓없이 그 분의 거룩한 복음을 믿는 자를 용서하시며 사면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에 "안심하라 네 죄가 사해졌다"(마9:2)고 말씀하시자마자, 하나님의 나라는 오는 것입니다. 당신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롬14:17)을 가지는 것입니다.
10. 다만 이 신앙의 본질에 관해서 당신 자신이 영혼을 속이지 않도록 조심하시요. 그것은 (어떤 사람이 분별없이 생각한 것처럼) 성서의 진리나 우리들의 신앙신조나 신구약 성서에 포함된 모든 것에 대한 단순한 동의가 아닙니다. 그런 것이라면 나나 당신과 마찬가지로 악마도 이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들은 악마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단순한 동의 그 이상으로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확실한 신뢰입니다. 그것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신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며 그(전의) 죄과의 책임을 인간에게 돌리시지 않으셨다"(고후5:19)는 사실, 또 특히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그 자신을 주셨다는 사실, 나, 이 내가 이제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신적 증거, 혹은 확신입니다.
11. 당신은 그렇게 믿습니까? 믿는다면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마음속에 있어서 그 결과로 슬픔과 탄식은 달아나 버립니다.(사35:10) 당신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것은 정오의 태양보다도 명백합니다. "내 노래는 언제나 주의 자비에 대해서요 나는 입을 가지고 당신의 진리를 세세에 한없이 계속 전파할 것입니다"(시89:1)라고 당신은 외칩니다.
당신은 더 이상 지옥, 혹은 죽음, 혹은 한 때 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악마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하나님 자신까지도 고통에 찬 방식으로 두려워하는 것 같은 일은 없어집니다. 다만 당신은 하나님의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부드러운, 아들로서의 두려움을 가집니다.
당신은 믿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주를 찬양하고"(눅1:46) 당신의 "영은 당신의 구주이신 하나님을 기뻐하는"(동1:47)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사함"(엡1:7)을 가지고 있음을 당신은 기뻐합니다. 당신은 마음 속에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그 "양자의 영"(롬8:15) 안에서 기뻐합니다. 당신은 "불사의 소망으로 가득 차서"(벧전1:3) 기뻐하며,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얻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기를"(빌3:14) 힘쓰며,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모든 좋은 것을 간절히 기대하는 것입니다.
12. 이제 당신은 믿습니까? 믿는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마음 속에 부어집니다"(롬5:5)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또한 당신의 형제도 사랑합니다.
"사랑과 평강과 기쁨"으로 충만해 있으므로, 당신은 또한 "오래 참음과 친절과 신실과 선함과 온유와 절제"(갈5:22) 및 같은 성령에 의한 모든 열매로 충만해 집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거룩한, 천적인, 신적인 모든 기질로 충만해집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보자기가 벗겨졌기 때문에) 당신은 얼굴을 가리지 않고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고"(고후3:18), 그의 영광스런 사랑과 당신이 지음받던 대로의 그 영광스런 형상을 보는 한편 "주의 성령에 의하여 영광에서 영광으로, 동일한 형상에로 당신은 변화 됩니다"(동)
13. 이 회개, 이 신앙, 이 평강과 기쁨과 사랑, 영광에서 영광으로의 이 변화-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지혜가 광기, 단순한 열광, 전적인 정신착란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인 당신은 그것들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런 비난으로 동요되어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분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당신으로부터 그 영광의 면류관을 뺏어가지 못하도록 조심하십시다. 크고도 귀중한 약속들을 모두 얻기까지, 당신이 이미 얻은 것을 굳게 붙잡고 계속 전진하십시요.
당신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무익한 사람들로 인해 당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사항을 악평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슬픔(heaviness)을 이내 기쁨으로 돌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손이 축 쳐져서는 안됩니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하나님은 당신의 두려움을 제거하시고 당신에게 건강한 마음의 영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계셔, 의롭다 하십니다. 누가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는 죽으셨을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오른 편에 계시고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십니다"(롬8:34)
아무리 당신의 죄가 많을지라도, 모든 죄를 가진 그대로 지금 하나님의 어린 양에게 당신을 내던지십시요. 그 때에 "우리의 주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이 당신에게 열릴 것입니다."(벧후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