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영혼을 깨우는 조나단 에드워즈
양낙흥 _ 고려신학대학원 역사 신학 교수
위대한 인물, 특히 교회 사상의 위대한 인물에 대해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들이 종종 존재한다. 설마 루터나 칼빈을 욕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자들은 절대적으로 존경받는 복음주의 기독교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학계에서 두 인물은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평가들 속에 둘러싸여 있고, 이것은 그들이 살았던 당대에나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해 관계가 상충되거나 심한 견해 차이를 보이는 사람들은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해도 반감과 적대감을 나타내게 마련이다. 교회사의 가장 위대한 일꾼들에 대해서도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양심적 확신을 따라 충성하다가 칭찬과 비난을 동시에 접하고 있는 신실한 주님의 종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에드워즈에 대한 평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복음주의자들은 그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평가다. 에드워즈의 동시대인이었던 존 웨슬리는 그에 대해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조지 휫필드는 “뉴잉글랜드 전역에서 그에 비견할만한 자를 보지 못했다”고 감탄했다. 미국 장로교의 아버지로 부르는 사무엘 데이비스는 그를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보았고, 프린스턴신학교의 학장이었던 애쉬빌 그린은 에드워즈를 ‘사도 시대 이후 세상에 태어난 가장 거룩하고 겸손하며 천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 중에 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벤저민 워필드는 그에 대해 “성자이고 형이상학자이며 부흥사이고 신학자로서 식민지 시대 미국에서 참으로 위대한 지성을 가졌던 유일한 사람으로 우뚝 서 있다”라고 평가했다. 에드워즈에 대한 로이드 존스의 평가는 이제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익숙하다. “만일 당신이 부흥에 대해 무언가 알고 싶다면 에드워즈야말로 당신이 읽어야 할 저자이다. 부흥이 일어난 것은 종종 사람들이 에드워즈의 전집을 읽기 시작했을 때였다.”
한편 비복음주의 신학자들이나 기독교 신앙이 없는 학자들은 에드워즈에 대해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의 일반적 기준에 의하면 종교적 체험은 단지 주관적인 것일 뿐이지 영속적이고 영적인 실재에 관계된 것이 아니며, 기도는 심리적 움직임이고 신학은 단지 변천하는 인간적 견해의 문제라고 보았다. 당연히 현대의 대중적인 에드워즈 연구가들은 흔히 그를 최대의 종교적 ‘비극’으로 규정한다. 현대 에드워즈 전기 작가들 중에 으뜸인 헨리 파크스는 「조나단 에드워즈, 그 불같은 청교도」(1930)에서 에드워즈가 미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물려받은 칼빈주의 신앙으로 인해 그의 생애가 비극적이었다고 규정했다.
20세기 에드워즈 전기 작가들이 모두 그런 입장에 동의한다. 올라 윈슬로우는 「조나단 에드워즈」에서 그를 퇴색된 신학 체계 속에 포로가 된 인물로 묘사했다. 20세기 가장 유명한 에드워즈 학자인 페리 밀러는 에드워즈의 생애가 비극으로 끝난 것은 그의 신앙 때문이었다고 단정했다. “에드워즈의 생애는 비극이다. … 그의 신앙 때문에 에드워즈는 말할 수 없는 해를 끼쳤다.” 복음주의자들이 에드워즈의 신앙으로 인해 기독교 세계는 물론이고 세상에 말할 수 없는 유익을 끼쳤다고 믿는 것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학자들은 청교도 신앙 때문에 에드워즈의 생애가 비극으로 끝났다고 평가했다.
에드워즈는 청교도 신앙의 진수를 건져내 그것을 밝히고 변증하며, 그것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시대를 향해 설교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교회에서 축출 당했다. 그 결과 변방 인디언들을 위한 선교사가 되었고, 프린스턴 학장으로 부임했지만 거기서 천연두 예방 주사를 솔선수범해 접종하는 바람에 그 부작용으로 불의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즉 그가 청교도 신앙을 고수하지 않았더라면, 교회에서 배척당하지 않았고 프린스턴 학장으로도 가지 않았을 것이며 죽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피상적 관점에서 그렇게 보이겠지만 그것은 지극히 육적이고 초보적인 세상 시각일 뿐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해석은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 만일 그가 노샘프턴교회에서 해임당하지 않았더라면 스탁브릿지에서 7년간 사역하면서 펴낸 “자유 의지론,” “원죄론”, “참 미덕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과 같은 불멸의 대작들을 인류의 유산으로 남겨 줄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에드워즈에 대한 소위 중립적 평가도 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해 아무런 특별 감정이 없는 일반 학자들의 시각이다. 그들은 에드워즈를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 중에 한 사람으로 보았다. 에드워즈가 18세기 미국의 가장 위대한 지성으로 널리 인정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에드워즈가 단지 철학자이고 위대한 지성에 불과했다면,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철학자로서 에드워즈보다 위대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윤상문, 전광규에 의해 번역되고 이레서원에서 출판한 「조나단 에드워즈 삶과 신앙」의 저자 이안 머레이는 에드워즈에 대해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이고 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교사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떼어 놓고 에드워즈를 이해할 수 없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성경 해석의 은사로 인해 조나단 에드워즈는 교회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교사들 중에 한 사람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머레이는 에드워즈를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 중에 한 사람이 아니라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칼빈주의자들 중에 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다른 무엇보다 청교도 칼빈주의 전통의 목사로 에드워즈를 바라볼 때 그의 생애와 글들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1758년 에드워즈가 사망했을 때 그의 동료이자 조지 휫필드와 함께 당대의 가장 위대한 부흥 설교자로 사역했던 길버트 테넌트가 필라델피아 신문에 조사로 기고했던 내용의 일부와 일치한다. “에드워즈는 위대한 신학자였다. 신학이야말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부였고, 목회야말로 그가 가장 즐겁게 종사한 일이었다.” 에드워즈의 또 다른 친구 사무엘 핀리도 그를 실천적이고 생동하는 기독교를 위한 탁월한 대변인으로 보았다.
에드워즈의 전기들
역사상 지금까지 나타난 에드워즈의 전기물은 십여 종에 달한다. 에드워즈의 수제자인 사무엘 홉킨스(1721~1803)가 쓴 「故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의 생애와 성격」(1765)은 에드워즈를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 쓴 책이기 때문에 요긴한 정보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에드워즈에 대한 결정판이 되기에는 미흡했다. 그 다음으로 출판된 전기는 에드워즈의 증손인 세레노 에드워즈 드와이트(1786~1850)가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한 끝에 쓴 「에드워즈 학장의 생애」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 후에 나온 에드워즈의 모든 전기들은 사실상 이 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도 약점은 있다. 많은 편지들과 문서들을 전문 그대로 실었기 때문에 내용이 방대하다. 그래서 에드워즈에 대한 대중적 소개서가 되기엔 어려웠다. 아마 그 이유 때문에 프린스턴신학교의 사무엘 밀러 교수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1839)를 썼던 것 같다. 밀러 교수는 대체로 세레노 드와이트의 책을 요약하고 자신의 관찰을 몇 가지 덧붙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에 나타난 에드워즈 전기 작가들은 현대적 해석을 선호한다.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있는 성공회 신학교 알렉산더 알렌 교수는 1889년에 순전히 인본주의 시각에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저술」을 에든버러에서 출판했다. 20세기에 들어 식민지 시대 미국의 문학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고 에드워즈에 대한 연구도 부활해, 소위 에드워즈 연구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그 당시 에드워즈 연구자들의 다수는 개인적으로 에드워즈의 신앙적 확신을 전혀 공유하지 않았다. 1930년대에 헨리 파크스가 「조나단 에드워즈, 그 불같은 청교도」를 집필함으로써 향도 역할을 했고, 2년 후에 아더 맥지퍼트의 「조나단 에드워즈」가 출판되었다.
1940년에는 올라 윈슬로우가 「조나단 에드워즈 1703~1758」을 출판했는데 이는 에드워즈에 대한 현대의 표준적 전기가 되었다. 윈슬로우는 인간의 관점에서 에드워즈 생애를 연구해 중요한 일보 전진을 이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에드워즈의 신학을 전면 거부했다. 1949년 하버드대학의 영문학 교수였던 페리 밀러가 「조나단 에드워즈」를 출판함으로써 에드워즈에 대한 반(反) 초자연적 해석은 그 절정에 달했다. 1980년에 「목사로서의 조나단 에드워즈」를 쓴 패트리사 트레이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러의 작품을 모든 전기들 중에 가장 도전적인 것이라고 칭송했다.
우리가 기다리던 에드워즈의 이야기
이안 머레이의 에드워즈 전기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와 기여는 실로 한 세기만에 에드워즈의 신학과 신앙에 공감하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에 의해 출판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인본주의적 관점, 심지어 반기독교적 관점이 지배하던 에드워즈 연구 풍토에 중요한 반기를 들면서 청교도 개혁주의 관점의 에드워즈 전기가 출판되었다는 것은 머레이처럼 청교도 신앙과 개혁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에게 너무나 반갑고 기쁜 일이다. 비로소 우리는 에드워즈를 올바른 시각에서 접근한 에드워즈 전기를 갖게 되었다.
원서명이 「조나단 에드워즈: 한 새로운 전기」(Jonathan Edwards: A New Biography)인 이 책은 사실 이미 20년 전인 1987년에 출판되었다. 이안 머레이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로이드 존스의 부교역자로 일하다가 1957년에 청교도와 개혁주의 계통의 책들을 출판하기 위해 배너 오브 트루스 트러스트사(Banner of Truth Trust)를 설립해 10여 년간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전 세계 기독교계에 청교도 신학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주된 관심 분야가 18세기 기독교에 있었던 머레이는 에드워즈 전기를 쓰기 전에 이미 스펄전 전기를 집필한 바 있고, 이어 현대 인물들인 존 머레이, 아더 핑크, 로이드 존스의 전기를 쓰기도 했다.
이안 머레이는 에드워즈의 전기를 학자들과 신학생들 그리고 대학생들뿐 아니라 일반 그리스도인들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서 이 전기를 썼다고 술회한다. “목회 등의 기독교 분야 사역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에드워즈의 저술들이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그의 작품들 다수는 기독 교회 전체를 위해 영구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이 머레이의 확신이었다. 왜냐하면 에드워즈는 평생을 목사로 일했고, 교회의 평범한 대중들에게 말씀을 설교한 설교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레이의 이 책은 에드워즈의 신앙에 공감하는 복음주의적 개혁주의자 입장에서 학문적이라기보다 대중적으로 일반 그리스도인 독자들이 읽기에 평이한 문체로 씌어졌다. 1980년 이전에 나온 여느 에드워즈 전기들보다 더 풍부한 자료들을 수집했기 때문에 이 책은 이전의 에드워즈 전기들보다 더 상세하고 포괄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전문적인 신학자가 아닌 탓인지 에드워즈의 원전들을 좀 더 꼼꼼히 정확하게 읽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들이 드물게 실재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저자 자신이 칼빈주의자이고 청교도이기 때문에 때로 에드워즈의 청교도적 관점이 칼빈주의 그것과 다른 부분이 있는 경우조차 그의 견해를 전통적 개혁주의 입장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흠이 있다. 자기 책의 한계(아마 신학적 전문성에 관한 언급이겠지만)를 솔직히 인정하는 머레이는 언젠가 신학적으로 믿을만한 에드워즈 전기의 결정판이 씌어지리라는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근년에 들어 미국을 비롯한 세계 학계에서 에드워즈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교회의 부흥에 관심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도 에드워즈의 글들에 대한 번역이 폭발적으로 이어지고 특히 700쪽이 넘는 두툼한 에드워즈 전기들이 불과 2~3년 사이에 세 권이나 출판되었다는 것은 감사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동안 에드워즈를 알고 싶어도 그의 원전들이 너무 방대하고 영어가 어려워 접할 수 없었던 한국의 진지한 기독교인들의 손에 한꺼번에 세 권이나 되는 에드워즈 전기가 들어오게 된 것은 이 땅의 교회들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생각한다. 복음의 본질과 참된 부흥에 관심이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라면 마땅히 이런 전기들을 탐독하고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하리라.
출처 : 로이드 존스 (http://lloydjones.org/zbxe/12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