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뜻으로 있는 책입니다. 성경책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통일성을 가지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는 한 본문이나 작은 부분을 읽고 해석하는 것은 오류로 빠질 지름길입니다. 성경은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중에서 그 부분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이 전체를 아우르는 것을 ‘교리’라고 합니다. 저 무지한 자들은 ‘교리’를 인간이 만들었다고 하며, 인간이 만든 교리보다는 성경에 충실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탄과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뉴튼의 법칙은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하나님이 자연에 숨겨준 법칙이고, 이것은 결코 불변하는 진리입니다. 이 뉴튼의 법칙은 뉴튼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원리이고 단지 뉴튼이 그 법칙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와 정확이 동일하게 ‘교리’가 그러합니다. 교리란 성경에 흐르는 하나님께서 숨겨두신 원리를 인간이 발견한 것이고,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인간이 만든 교리가 아닌 성경으로 돌아가자’라고 떠드는 자들은 ‘인간이 만든 뉴튼의 법칙이 아닌 자연 그 자체를 보자’ 라고 말하는 유치하고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물론 소녀의 심정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자 원하는 자가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라도, 과학을 하는 자들은 ‘난 뉴튼과는 달라’라고 하지 않는 것은 정설입니다.
교리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리는 많지가 않습니다. 정확하게 두 개입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두 개뿐입니다. 교리를 모르는 자들이 교리가 많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교리는 정확히 두 개입니다. 전적 하나님의 은혜의 칼빈교리냐?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알미니안주의냐 두 개뿐입니다.
이 교리가 여러개로 보이는 착시를 가진 자들은 결코 교리를 배우지도, 알지도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은 말하길 “교리 자체를 설교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것 안하고 무엇을 하려고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은 한구절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통으로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의 분명한 목적을 위해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이란 주제는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한구절, 한 장을 가지고는 해석해 내지 못하는 주제입니다. 즉 구원은 교리적 설교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설교는 교리적이어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어리석은 자들이 교리적 설교가 아닌 순수한 성경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여러분에게서 구원의 도를 빼앗아 가버리는 사악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5.02.16 11:50
왜 교리적으로 설교해야 하는가? - 정대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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