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놓고 낫인 줄도 모르는 이상한 현상들
낫 놓고 낫인 줄도 모르는 이상한 현상들
낫놓고 기억자를 모른다는 말은
낫의 모양과 한글 자모 ‘ㄱ’을 연관시키지 못하는 한글 문맹자를 비유하는 말이다.
그러나, 오래 동안 낫을 사용하여 온 농사꾼이
낫을 보면서도 그것이 낫인 줄 모른다면,
이것은 이해 할 수 없는 기이한 일로
그런 일은 그 농사꾼이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무엇엔가 홀리거나, 그 눈에 무엇이 가려졌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영적인 세계에서는 이와 같은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신학교 때, 로이드존스에 매료되어
로이드존스의 설교집을 거의 모두 섭렵했고,
자신의 목회에도 ‘로이드존스식의 강해설교’를 도입했다는 목사님이 계신다.
그럼으로 그 분은
다음의 창 32:24을 본문으로 한 로이드존스의 설교도 읽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 설교에는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제가 첫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특징은
회심은 항상 강렬한 개인적 체험이다는 것입니다.
...
그 체험의 세 번째 특징은 이것입니다.
이 체험을 한 사람은 항상 그것을 그의 인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자신의 설교에서
‘저는 저의 생애에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사건을 찾아보려 하였으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체험이 없었음에도 저는 제가 구원받았음을 의심치 않습니다.’
고 하였다.
이 목사님은 당연히 자신의 신학적 상식과 로이드존스의 여러 글들을 통해
‘회심하지 않은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구원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도, 로이드존스가
‘회심은 항상 강렬한 개인적 체험’,
‘이 체험을 한 사람은 항상 그것을 그의 인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한다.’는
말에서 바로 자신이 회심치 않았다고 로이드존스가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 목사님은 로이드존스의 설교를 깊이 연구한 분인데,
이 목사님 역시, 위의 로이드존스의 설교를 분명히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목사님은 자신의 교회에
이런 회심관에 위배되는 ‘4영리’를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 어찌된 일인가?
지금 언급한 두 분의 목사님은 로이드존스를 추앙하는 분들인데도,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로이드존스의 글들을 섭렵하고 추앙하는 분들이 이러니,
그 외의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심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 번역된 청교도 서적은 상당량이고,
청교도 매니아들도 꽤 된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두 분의 목사님들처럼,
그 사람들의 대다수들도
거의 이런 이해수준 일 것이다.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로이드존스의 회심관을 한국교회에 적용한다면,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놀라서 발칵 뒤집혀야 하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로이드존스를 20세기 최고의 설교자라고 추앙하면서도 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있지만,
영적인 세계에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다음의 구절들이 그 해답이 될 것이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 13:14)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3-4)
로이드존스를 추앙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거나, 고의로 무시하는 사람들이 정신차리고
예수님에게서 다음의 말씀을 듣고 있다고 깨닫는다면 소망이 있을 것이다.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요 6:46-47)
http://cafe.daum.net/CPI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