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듭남은 영혼이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실체나 기능적 구조물을 아예 제거하거나 없애 버리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실체가 바뀐 것이 아니다. 아담의 죄는 본체가 아니라, 그 올곧음을 제거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에 새로운 기능적 구조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전에 있던 기능적 구조물에 새로운 성질이 주어지는 것이다.
물 론 인간의 부패의 극심함을 고려할 때, 이러한 새로운 습관들에 의하여 영혼이 너무나도 엄청나게 변화되어서, 마치 새로운 영혼, 새로운 이해력, 새로운 의지가 생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바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바탕 위에 있던 이전의 특징들을 제거해 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특징들을 새기는 것이다. 즉, 인간의 본성은 보존되면서 그 본성의 부패한 것이 축출되는 것이다.
거 듭남이란, 촛대를 부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촛대 위에 새로운 초를 세우는 것이다. 의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에 새로운 성향을 불어 넣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화음을 만들기 위하여 악기의 줄들을 모두 새것으로 바꾸는 것과 같다. 높아진 것을 낮추고 영혼의 교만을 겸비하게 하여 영혼 속에 오직 주님만을 높이는 것이다.
또 한 거듭남이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과 이성, 그리고 이해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올곧아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해력과 의지 속에 있는 거칠어진 조각들을 깎아 내신다. 그래서 그 위에 하나님의 형상을 새겨 넣으신다. 여전히 그 사람은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너무나 엄청나서 그 영혼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이전에 작용하던 원리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류의 은혜로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창조를 하나의 부활이라고 부른다.
거 듭남은 영혼의 본질적인 활동에서의 변화가 아니다. 영혼의 활동에 있어서 거듭남 전후에 그 본체와 본질이 동일한 것처럼, 그 영혼의 열정과 정서의 정도도 여전히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열정과 정서의 대상에 있어서 그러하다. 어떤 사람이 열정적이고 진지하다면, 은혜로써 이러한 열기가 제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열기가 하나님을 섬기는 열정으로 바뀌게 된다.
바 울은 적극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러한 본성과 기질은 은혜를 받은 후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물꼬가 트여서 옳은 대상을 향하게 되었다. 그는 핍박하는 일에 어느 누구보다도 앞장 섰던 것처럼, 은혜 받은 이후에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고전15:10) 덕을 세우는 일에 앞장 섰다. 그의 수고는 그의 기질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원리가 그 기질 속에서 작용하여 다른 대상을 향하게 된 것이다.
- 스테판 차녹, 『거듭남의 본질』, pp 55-60
- 출처: 청교도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