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세례와 은사운동에 대한 로이드 존스의 견해/ 이안 머리
확 실히 성령은 아무리 연약한 그리스도인이라도 그 안에 내주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질” 때 그리고 신자의 구원에 대한 성령의 증언이 영광스럽게 분명하게 될 때,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능력을 더 충분히 지니게 된다.
로 이드 존스는 교회들이 (성령의 특별한 부어주심)을 알지 못해도 교회인 것처럼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아도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수시로 자기 백성들에게 기쁘게 베푸시는 하늘의 능력이 홍수처럼 쏟아 부어진다는 의미에서 “부어지심”과 “세례”를 동의어로 보았다.
로 이드 존스는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두 진영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고 믿었다. 한 진영은 새로운 오순절 운동 또는 방언 운동으로, 보통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한 진영은 교회가 왜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심각하게 결여하고 있는지 신학적 이유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 진영의 위험성은 부절제와 열광주의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었고, 두 번째 진영의 위험성은 복음주의 교회들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는 전혀 필요치 않다고 보는 태도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두 진영 모두 잘못이지만, 두 위험성 가운데 “부흥의 의미를 흐리게 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제공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게 만드는 두 번째 진영의 위험성이 현재로서는 더 컸다.”
로 이드 존스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방언으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짓 가르침이 그리스도인들은 회심할 때 필요로 하는 성령을 모두 받았고, 그러기에 이후로는 신앙으로 충만케 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견해보다 훨씬 덜 파급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최 대교회는 그 생명력과 활력으로 말미암아 영적 영역에서 부절제 현상이 나타나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1964년11월15일 전한 설교에서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물었다. “일반적으로 말해 누가 그것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위험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다르게 말하면, 무감감이 흥분보다 더 통상적이었다는 것이다.
복 음주의자들에게 그리고 개혁주의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큰 재앙은 그들이 새로운 오순절주의의 주장들을 따르는 데 정신이 없는 것보다 “교회의 가장 중대한 필요성은 성령의 활동을 다시 깨닫는 데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1964년12월6일에 전한 로이드 존스의 설교이다.
오 늘날 우리의 가장 큰 위험은 성령을 소멸시킨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재는 억제를 옹호할 시대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억제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일으킬 필요가 있습니다. 깨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영광의 영으로 채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 세계에서 교회는 너무 허약합니다. 지금은 성령의 역사를 억제할 시기가 아닙니다.
1965년3월21일 설교이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성령의 은사와 나타남과 과도함을 싫어하기 때문에 성령 세례 교리도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로 이드 존스의 성령 세례에 대한 가르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즉 신앙에 대한 충분한 확신을 제공하는 것은 성령에 대한 경험인데, 이것은 에베소서 1장13절의 “인치심”과 동일한 것이다. 이 경험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힘있는 그리스도인의 증언의 필수조건인 능력과 담대함이 주어진다.
성 령의 특별한 은사에 대해 로이드 존스는 이 은사들의 존재에 대한 주장을 무조건 거부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로이드 존스는 개혁파 신념을 가진 자기 교회의 젊은이들이 정통성에 대한 열심 때문에 성령을 소멸시키는 자가 되지 않도록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동시에 은사는 일차적인 것이 아니고, 은사를 자극하는 운동은 고린도교회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권능을 받은 참된 교회였다는 것이다.
성령은 주권적으로 언제든 이 은사들을 누구에게나 베푸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항상 조심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기 독교는 필수적으로 단계와 변화와 성장이 있는 경험을 통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이고 진행적인 관계를 포함한다. 어떤 단일한 경험도 표준화되어 다른 사람들의 규칙이 되어서는 안된다. 로이드 존스는 말한다. “어떤 특별한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는 이 성령 세례를 받은 적이 없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확실한 잘못이고, 확실한 거짓입니다.”
로 이드 존스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단회적인 성령 세례는 없고, 한순간에 영원히 높은 단계에 이르는 결정적인 경험도 없다고 가르쳤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고 충분한 확신이 주어지는 최초의 시기가 있지만 이 최초의 경험은 아무리 획기적이라고 해도 유일한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 이안 머리, 『로이드 존스 평전 3』, pp 104-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