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영혼의 상태를 거룩하고 겸손하고 주의 깊게 유지함으로써 언제나 ‘기도의 열매와 유익’을 얻고 있다면,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하게 되는 영적인 생각은 분명 내면적인 은혜의 샘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기도의 유익과 효력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은혜와 위로 안에서 우리의 영혼을 성장하게 한다.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은혜와 위로가 없다는 것은
자기 속에 부패가 세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분명한 조짐이다.
그리고 그 기도 자체에 영적인 생각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증거다.
바른 기도는 영혼을 겸손하게 하고, 자신의 마음의 상태와 활동을 부지런히 살피도록 한다.
바르게 기도하는 이는 자신이 기도하는 대로 살려고 온전히 애를 쓸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부주의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기도에는 영적인 생각이 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영적인 것들에 대하여 온전히 기울어져 있고,
그러한 심령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매일 끊임없이 애를 쓰고 있다면,
우리의 생각은 그 사람 속에 있는 은혜의 샘에서 나오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서 마치 무엇과 씨름하는 것처럼
무언가 우리 마음과 '맞지 않는‘ 듯한 불편함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은사의 기능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지 은혜는 아닌 것이다.
은사는 마음의 ‘종’이지 ‘다스리는 자’가 아니다.
은사들이 우리에게 부여된 것은 ‘은혜를 섬기기’ 위한 것이다.
은사는 은혜를 이끌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은혜를 잘 따라가도록 주어진 것이다.
반대로 은사가 주도권을 잡게 되면, 거기에는 은사만 있고 은혜는 없다.
‘은혜’는 마음으로 하여금 기도하는 습관을 이끌어 주고 그러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은혜의 ‘섭리’와 ‘통치’는 여러 가지의 영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기도의 의무를 위해 ‘은혜’가 실제적인 행사에 들어가면,
은사들은 그 은혜의 행사를 돕기 시작한다.
마음과 생각이 바른 질서 속에 있다는 것은, 믿음과 사랑과 거룩한 진정한 경외심이 은혜로 말미암아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그 은혜로운 소원의 효력이 은사로 드러내도록 자극한다. 바로 그런 과정이 마음과 생각의 바른 질서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 존 오웬, 『영의 생각, 육신의 생각』, pp 7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