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인간이 더 위대하고 고귀한 피조물로 진화될 것이라는 낙관론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혁신의 시대가 될 것으로 믿었지만, 절망과 혼란으로 귀결되었다. 성경은 인간이 영적으로 죽었고, 도덕적으로 부패한 상태로 태어났다고 가르친다. 자기 혁신을 위한 인간의 시도는 무엇이든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로 끝날 뿐이다. 족장 욥이 이렇게 부르짖었듯이 말이다.
“내가 정죄하심을 당할진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욥9:29-31)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선언하셨다.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렙2:22)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
인간의 희망은 오직 하나 뿐이다. 그러나 그 희망을 붙잡으려면, 먼저 자신의 전적 무능력을 깨닫고 스스로에 대해 절망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복음 설교의 핵심 기능이다.
우리는 헛된 망상에 근거한 낙관론을 신봉하는 시대, 곧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올려놓고 만물의 척도라고 치켜세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숱한 실패의 역사, 양심의 가책,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에도, 인간은 스스로의 미덕과 공로를 자랑하며 좀 더 밝은 미래를 낙관한다. 인간은 도덕 규칙을 변경하고, 전에는 악하다고 하던 것을 선하다고 일컫는 간단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수많은 부도덕과 끊임없는 타락을 감추려고 한다. 인간은 스스로 현혹된 상태이기 때문에 성경의 책망에 대해 사람들이 “우리가 진정 그렇게 사악한가?”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
우리에게는 악을 행하려는 성향이 있다. 우리 안에는 우리의 양심이 반대하고 비난하는 일을 원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 가장 계몽된 철학자와 윤리학자, 신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어왔다. 바울 사도는 인간의 딜레마를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롬7:15)는 말씀으로 간단히 요약했다.
대홍수도 인간의 악한 성향을 없애지 못했다. 노아도 아담보다 더 나은 유산을 물려주지 못했다. 하나님은 홍수 이전에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은 무엇이든 항상 악할 뿐이라고 말씀하셨다(창6:5-6). 그 사실은 홍수 뒤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 말은 악의 근원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악은 나면서부터 인간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다. 이 악은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창5:3,롬5:12). 인간은 죄 가운데 잉태되어 나면서부터 죄를 짓는다(시51:5,58:3).
어린아이들에게 굳이 이기적인 행동과 남을 속이는 행동을 가르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린아이들이 세상을 다스릴 날을 꿈꾸는 사람이 있는가? 가장 나이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도 사납고 무자비한 서열이 존재하는 현실이나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탐할 때 벌어지는 상황을 목격하며 곧바로 그 환상이 깨질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악을 행하는 이유는 그의 내면에 악이 거하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내재하는 죄가 인간 안에 두루 퍼져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64:6)
“더러운 옷”은 나병환자와 닿은 옷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나병은 죄를 구체적으로 예시하는 강력한 비유로 활용될 수 있다. 나병은 온몸을 파괴해 인체를 악취가 가득한 썩은 고깃덩이로 만든다. 인간의 경우가 그렇다. 스스로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무리 많은 개혁을 시도해도, 인간의 내면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옷에 피가 배어나와 모든 것을 불결하게 만드는 나병환자처럼 인간의 부패한 본성도 생각과 말과 행위를 통해 배어나와 모든 것을 더럽힌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했다면,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열어 죄를 뉘우치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뿐이다(행16:14,눅24:45,딤후2:25,엡2:8,롬12:3).
폴 워셔, 「복음」, pp 165-172
출처 : 청교도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