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6장 22절~27절
1. 오늘 날에 전도의 문제란?
오늘 미국 전도에 큰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로맨틱 이야기로 변화시켜 사람들을 더 이상 개종 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가 갚아야 하는 빚을 대속으로 갚아주신 것을 잊을 때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감당하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진노를 다 감당하셨다. 그리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에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로만이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
또 전도에 다른 큰 문제는 미약하게 구원에 대하여 이해하고 그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원에 잘못된 이해는 교회의 잘못된 이해로 인해서이다. 나는 오늘 저녁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이 부분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이 열리고 생각이 열리고, 그리고 눈이 열리기를 기도한다.
2. 오늘 날에 그리스도인의 문제란?
오늘 날에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죄가 그들을 주장하고 있다. 교회를 다니지만 아직까지 죄가 살아서 그들을 주장하는 일이 너무 흔한 일 같다. 그들이 이렇게 살다가 죽어서는 분명히 영원한 지옥에 갈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은 이상한 복음을 믿기 때문이다. 이 이상한 복음을 교회에 투입시키고 전도에 투입시키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고 자신의 죄에서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복음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으로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먼저 교회에 대하여 말할 것은 목사들이 거룩함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교회의 숫자 부흥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의 목사들은 거룩을 중요시하며 오늘 날의 교회들이 죄로 가득한 것을 보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교회들도 있다. 교회 안에서의 낙태가 세상밖에 보다 더 많으며, 교회에서의 간음이 세상의 간음보다 더 많은 시대이다. 거짓과 불결한 일들이 세상보다 교회 안에서 더 많이 일어나는 시대이다.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죄들이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동등하게 볼 수 있으며, 사람들은 교회가 타락되고 무너져 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도 틀린 소리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지옥이 교회를 승리했다는 소리인데 그것은 매우 잘못된 소리이다. 이러한 시각은 성경적인 시각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뜻대로 잘 성장하고 세워져 나가고 있다.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거룩함으로 이 세상에서 굳게 서있으며 넘어지거나 쓰러질 때는 바로 일어나 회개를 하며 다시 바로 가던 길로 돌아가 전에 보다 더욱 더 하나님께 헌신하며 더욱더 기쁨이 넘친다.
3. 오늘 날에 교회 문제란?
여러분이 생각하는 교회는 내가 말하는 교회가 아닐 것이다. 여러분이 말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오늘 날에 이러한 매우 큰 거짓된 교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다. 여러분은 분명히 진실을 알아야 한다. 매우 큰 총회의 목사들이 이러한 식으로 거짓된 가르침을 가르치고 있으며 대부분의 총회에 75%가 거짓된 가르침을 인정하고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다 지옥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가르침이며 가르치는 자들도 분명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축소하여 4영리로 바꾸어서 간단히 고개를 숙여 잠깐의 기도로 구원 받았다고 선포하며 그들은 그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중에 어떤 이들은 교회에 나오며 어떤 이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 중에 교회에 나온 자들은 두마음을 품고 살아가며 세상 사람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자식인지 구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실정에서 살다보니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욕되게 하며 살아가고 그들은 신성모독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말씀중심의 교회가 사라지는 현실이다. 벌써 오래 전에 성경의 교리는 신경 쓰지 않고 더 이상 교리는 그들에게 따분한 것으로 변화 되었다. 그리고 진리와 신학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되지 않는다.
4. 오늘 날의 문제란?
나는 다른 나라에서 11년이나 생활해 왔다. 그곳에서는 세례만 받으면 구원을 얻는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 말에 여러분은 웃을지 모른다. 그리고 황당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게 그냥 물세례만 받으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하여 여러분은 그들을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간단한 요술의 기도로 구원을 얻는 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간단한 기도로 구원 받은 사람은 없다. 만약에 누군가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자신의 죄에 대하여 회개를 하였을 것이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삶에 모든 것을 던져서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오늘 날에 전도자들은 복음을 축소화 시켜서 서커스 사람들과 같이 돌아다닌다. 기독교의 목사들은 자신의 부족한 헌신과 부족한 교리와 부조한 진리로 인해 세상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있으며, 이러한 목사들이 세미나에 와서 하는 말들은 교회의 성공비결을 논하면서 교회가 5000명이 있어야 성공한 것같이 말하고 있다. 교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느냐에 성공 기준을 둔다면 그들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 될 것이다.
5.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구원은 무엇인가?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바로 구원이다. 오늘 밤에 나는 여러분이 복음에 대하여 이해하기를 바라며, 구원에 이해하기를 바란다. 인간의 결정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시작하신다면 절대로 낙심하지 않고 거룩함과 온전함을 이루어 나가실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
창세기 1장 1절과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도 “태초”에라는 말로 시작한다. 여기에는 두 개의 창조를 말한다. 창세기의 창조는 지구이며, 요한복음의 창조는 새로운 사람, 새 피조물을 창조하시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의 능력과 힘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새롭게 탄생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만큼 더럽고 추접한 인간들을 개종 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이 그 만한 능력을 요한다. 오늘 날에 복음의 선포가 너무나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에 대하여 깨어있어서 잘 분석하고 봐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성경 말씀에 무지가 아니길 바란다. 내가 하는 말들은 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증명될 수 있는 말이며 여러분이 신학과 교리 그리고 교회사에 무지라면 내가 말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적인 기독교와 현 미국의 기독교의 가르침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오늘 날 사람들은 세미나에서 또는 교회에서 전도에 대하여 배우는 것은 “당신은 죽어서 천국 가실 원하십니까? 그리스도를 영접하길 원하십니까?”라고 배우며, 그들이 말하는 동안에 상대방이 듣고 있는지 그리고 반응이 어떤지를 보고 상대방이 고개를 끄덕이면 그가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가망성이 더 많다고 가르친다. 이렇게 세미나에서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이다. 그러한 교수 또는 목사는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방법에 대하여도 모르며, 성경 말씀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도 모르는 자들이다.
6. 거듭남의 뜻이란?
오늘 본문 말씀인 에스겔 36장에서는 너무나 확실하게 표현된 중생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나는 “거듭남‘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데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단어의 뜻을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듭남이란 뜻을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오래전에 사용했던 단어인 중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생-regeneration“은 regenerate 다신 무엇인가 회생 또는 재충전 시키는 단어이다. 죄로 죽은 자들은 이 단어의 뜻과 같이 다시 회생돼야 한다. 구원이란 죄로 인해 생명이 없는 자에게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무덤에 있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도 다시 새 생명을 주셔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죽은 자에게 나오라고 외치고 바알 선지자들과 같이 춤을 추고 자신을 자아 할지라도 절대로 죽은 자는 살아 날 수가 없다. 죽은 자는 듣지 못하며, 죽은 자는 걷지도 못하고 죽은 자에게는 반응이 없다. 그러한 죽은 자에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생명을 주시고 듣게 하셨고 걷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뜻을 그에게 주사 순종하게 하셔서 일어나 걸어서 나오게 하신 것이다. 죽은 자에게는 예수님께서 이러한 능력을 베푸셔야만 새 생명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병원에 가면 숨을 쉬지 않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아프지만 전기 충격기를 사용하여 사람을 살린다. 그와 같이 교회도 죄로 인해 죽은자들에게 충격을 통해 살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죄인들에게 새 생명주시므로 부활하게 하시고 새 창조의 역사를 끝까지 이루어 주실 것이다.
문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 삶에 역사하고 계신다고 말하지만 영적인 삶에 대한 증거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에스겔을 보면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우리 인간은 너무 자기 자신 중심이다. 그래서 이 구절을 보면 불편할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해주시는 것은 그분이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모든 민족에게 영화롭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해주시기 위한 것은 인간이 무엇인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만을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 주실 이유가 전혀 없으실 것이다. 인간을 보면 단 한 가지라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해 주시길 기뻐하시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 없을 것이다. 기독교의 교리중 하나가 바로 인간의 죄에 대한 교리이다.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 성경 말씀에서는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에는 사형 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는 일들만 골라서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우리를 영원한 지옥에 던지시는 것 외에는 우리가 잘한 것이 없다. 이것만이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다. 우리가 얻을 만한 것은 처형당하는 것 밖에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처형당해야 하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동기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오직 하나님 자신이 결정하시는 일 외에는 없다. 모든 것이 그분의 결정에 이루어지며 그분이 기뻐하신 대로 결정하여 행하신다. 이것을 이해하고 이 방법대로 살아가는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없는 것이다.
7.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무엇인가?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무릎 꿇고 하나님께 울부짖는 일밖에 없다. 마태복음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으며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그리고 그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 또한 울고 부르짖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이다.
8.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위대함을 나타내시기 위해서이다. 왜 이 세상이 타락되었는가? 여러분 생각에는 타락이 실수였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이 대답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사단은 자신 스스로의 결정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였고 인간도 자신의 스스로의 뜻대로 잘못을 행하였다. 이것이 진리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큰 계획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는 구원 할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을 왜 구해 주시는가?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이며,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인간이나 모든 나라 외에도 권세들과, 정사와, 주관자들과 우주만물의 모든 피조물들이 그리스도 이름 앞에 무릎 꿇어 그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의 백성을 구원 해 주실 것이다. 그의 명성을 자신 스스로 방어하실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을 보라. 어떠한가를!
9. 진정으로 구원 받은 자라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구원 받았다고 한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구원 받았다면 하나님은 능력이 없으신 분으로 인정이 된다. 그 이유는 그들은 변함이 없는 생활과 내면이 변화하여 새 생명, 새 창조가 되기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방인들 앞에서 하나님을 욕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행동하는 것과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길 원하지만 구원하지 못하시고, 그다음에는 구원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거룩하게 해주고 싶지만 할 수 없다고 이방인들에게 보이는 것이 되며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누가 다스리고 있는가? 당연히 하나님이 되어야 하지만 미국은 인간이 다스리고 있다.
이러한 생각과 가르침은 성경적도 아니며, 하나님의 것도 아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멍청한 가르침이며, 자신들도 모르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분명 자신이 얼마나 위대하신가를 나타내신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를 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구원 하실 것이며, 변화 시키실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만드실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나님께 받을 만한 인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시는 것은 그분의 명성을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끝내지 못하실 것을 시작도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라고 말하였지만 오늘 날에 대부분의 전도자들이나 목사들은 애굽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끝내지 못하신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깨끗하게 하실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으로 만들지 못하시며, 하나님께서는 성화를 이루실 만한 능력이 없으시며, 변화도 못시키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방송국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는 서커스의 단원들과 같이 웃긴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에 분명 진정한 교회는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많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남게 될 것이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신학교의 컴퍼스나, 교회 안에서도 올라가는 자가 있을 것이며 남아 있는 자가 있을 것이다.
10.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해 주시는가?
에스겔 36장 23절을 계속 읽어보면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찌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 주시는가? 그것은 열국이 그를 거룩한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을 알리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구해주셨을 때 10가지 재앙을 왜 내리셨는가? 그냥 그들을 다 죽이던지 아니면 그들을 24시간동안 잠을 재우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수도 있었는데, 그리고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었는데 왜 10개의 재앙을 하나하나 그들에게 내리셨는가? 그것은 애굽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시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오늘 날 이 세상이 교회의 변함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며 감탄하고 두려워하고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변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날 목사들과 전도자들은 그들을 남아 있게 하는 설교를 하지 그들을 변화 시키는 설교는 하지 않는다. 많은 목사들이 매우 두려워해야 한다. 그들은 교회 성장에 눈이 멀어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놀이동산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냥 많은 사람들만 북적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은 생각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구원 하실 때는 분명 거룩함으로 증거하신다.
11. 어떠한 거짓을 목사들이 가르치는가?
24절에서는 어떤 일이지를 설명한다. 요한복음 3장과 같이 사람이 구원을 얻으면 거듭나게 되어있음을 분명히 나타내는 구절이다. 성경 전체에서 인간의 거듭남에 대하여 나타난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며, 뼈들이 일어나 살이 붙고 생명을 얻어 걸어 다니는 거듭남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인간의 말은 죽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준다. 나는 오늘 저녁 이 교회에 성령님의 큰 역사가 있어 모든 사람들이 무릎 꿇고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울부짖기를 원한다. TV에서 나오는 서커스 쇼와 같은 교회가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회개하며 거룩하게 변화가 되는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길 바란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시고 성취하신 하나님이 이제는 그러한 능력을 잃어버리셨는가? 하나님에게 무슨 일이 있으며 어떻게 된 일인가? 더 이상 능력을 잃어버리셨는가? 구원해주시는 능력과 힘은 어디에 있는가? 아직까지 하나님은 모든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며,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거짓 교리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거짓들은 육적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냈다. 육적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억지로 짜 맞춘 것이다. 그것을 가르치는 목사들은 너무 바빠 공부를 하지 않는 목사들이다. 자신을 나타내고 선전하는 데에 너무 바쁜 나머지 공부를 하지 않는 자들이다. 육적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교리가 아니다. 초대 교회에서나 역사적으로도 그렇게 가르친 사람은 없었다. 종교 개혁 때도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으며, 청교도들도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고, 그 누구도 그러한 식으로 가르친 적이 없지만 현시대에 와서 큰 교회들이 사람 숫자에 눈이 멀어 자연인들만 잔득 채워 넣고 육적 그리스도인이라는 교리를 지어낸 것이다.
보좌라는 전도지에 그림을 보면 예수님께서 앉아야 하는 보좌에 영적 그리스도인과 육적 그리스도인이 보좌에 앉아 있는 그림이 있다. 그리고 육적인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자리를 빼앗아 앉는 모습을 그리 전도지가 있다. 이러한 전도지는 신성모독이며 그리스도를 욕보이는 것이다. 육적 그리스도인이 자기 마음대로 그리스도를 자리에 앉히고 내리고 하는 그림이었다.
성경말씀에서는 그리스도인을 육적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지 않는다. 계속적으로 성장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구원 받는 자는 청년으로 소개 되어 있지 절대로 어린 아이로 소개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속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이가 분명히 끝내주실 것이다.
12. 열국 중에 취하여란 뜻은?
에스겔 36장 24절에서 하나님은 분명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For I will take you out of the nations”라고 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이 세상으로부터 꺼내셨나? 이 세상의 체제는 어떤 반향에서든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한다. 그러한 것에서부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꺼내셨는가? 여러분은 점점 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싫어하게 되며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까지 세상의 것을 좋아하고 있는가? 이 세상의 것을 좇아 살면서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있고 아무런 문제가 없고 양심에 가책이 생기지 않고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길을 잃은 것이다. 세상적으로 살면서 이러한 마음에 아무런 가책이 없고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분명 지옥에 갈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열국으로부터 건져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 때문이다. 어두운 세계에서 꺼내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로써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이러한 역사를 일으키셨는가? 나는 주님과 같이 20년을 교제하며 걸어왔다. 하지만 얼마나 걸어왔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주님과 같이 걸어왔다고 해서 완벽한 사람이 되었다든지 아니면 세상에서 무너지고 넘어지지 않았다던 지가 아니다. 만약에 내가 이러한 말을 한다면 나는 위선자가 될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주님과 같이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 세상을 보면 마음에서 토할 것 같으며, 더 이상 세상적으로 살수가 없었다. 세상적으로 살아가면 마음이 찢어질 것 같고 너무 힘들어서 세상에서 버티지 못하고 나와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는 새 피조물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물속에 넣으면 헤엄을 잘 친다. 자연적으로 물고기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고기를 사람으로 만든다면 물고기는 머리를 내밀고 모래사장으로 뛰어 나올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은 물속에서 살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살수가 없고 죄를 세상 사람들과 같이 물과 같이 마실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다 죄를 물과 같이 마시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열국에서 건져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다. 오늘 내가 하는 말에 어떤 사람들은 분명 화가 날 것이며, 오만할 것이다. 어쩌면 나도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분명 이 세상의 열국에서 건지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거라는 약속을 하신 것이다.
나는 때로 아주 큰 교회를 가서 설교를 할 때가 있다. 거기서 유명한 목사들을 만나고 그들과 같이 교회 성장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들은 매우 흥분하여 말하기 시작하지만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로 만족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더 필요한 것같이 말한다. 나는 그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그 나라의 음식을 맛보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알고 있는가? 만약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음식을 먹어 보았다면 이 세상의 죽음의 맛을 보고 토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것이 싫어서 싸우고 힘들어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벗어나려고 한다. 이 세상의 것을 매우 증오할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적하였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얽히게 하시고 난 뒤에는 이상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의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13.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이제 25절에 가서 보면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이 구절에서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며 그 한분이 자신에 대한 소망을 쓴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하겠다는 단호함을 쓴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내가”라는 말씀으로 혼자 하시겠다는 단호함을 나타내신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의 뜻을 알겠는가? 많은 목사들은 이러한 식으로 설교를 하지 않는다. 하나님 한분이 그분의 능력으로 열국에서 건져 주실 것을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 한분 홀로 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 구절들에는 어떠한 소망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단호하게 하나님이 직접 하나님 혼자 하시겠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25절에서도 하나님이 직접 혼자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홀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하나님 홀로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신다고 가르친다. 하나님 홀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며 하나님 홀로 그들을 맑은 물로 씻어 정결케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결케 하시겠다면 정말 정결케 하실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물론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큰 계획은 하나님의 이름의 명성을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 자신을 지키시며 열국이 하나님은 절대 실패하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14. 여러분은 우상과 싸우고 있는가?
나는 20년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삶에서 우상을 제하려고 싸우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우상과 싸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우상을 가차 없이 무너뜨리셨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다 이렇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 말씀을 읽고 설교를 다 적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우상을 무너뜨리고 계시는가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우상을 없애지 않는다면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상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나의 할아버지는 1930년에 브라질의 선교사셨고, 나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이셨다. 아버지에게는 그 어떠한 믿음의 증거가 없었다. 아버지가 나의 형을 낳고 나서부터 말씀하신 것이 “저 아이가 밟는 땅을 내가 섬기겠다”라고 매일 같이 습관적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아들을 낳고 나서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보게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너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내가 알지만 너의 입에서 나오는 우상숭배의 말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너가 믿는 자이건 아니건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우상숭배를 허락지 않으신다”라는 글을 읽었다. 그 글의 아버지의 반응은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다 나의 형은 6살 때 고통 사고로 죽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여러분의 전체의 삶에서 우상을 계속적으로 무너뜨리실 것이다. 그 우상은 하나님을 대신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상을 그냥 두실리가 없다. 세상 적으로 여러분이 살아간다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훔쳐 갈 것이며, 즐거움을 훔쳐 갈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평안을 훔쳐 갈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물어봐라. 이것이 거짓인가?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주신 하나님보다 더 애착을 갖는 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오늘 밤에 여러분에게 신학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단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우상을 내던져 버리시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여러분의 삶에 우상이 하나씩 내던져지고 있는가?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우상, 여러분의 눈으로 보고자 하는 우상이 내던져져야 한다. 부패와 썩은 것들을 버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구원 받은 자가 아니다. 대학에 부패와 썩은 것을 버려야 하며, 교회에서 부패와 썩은 것을 버려야 하며, TV에서도 부패와 썩은 것을 버려야 한다. 이 세상에 어디를 가든지 부패와 썩은 것이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부패와 썩은 것들을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서 버려지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이 세상의 부패와 썩은 것들처럼 살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말하며 죄를 짓는 면허로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유는 죄에서의 자유이다. 또는 의식적인 율법을 말씀하신 것이지 컴퓨터를 통해 야한 것들을 보는 자유함을 주시지 않으셨다. 또는 옷 복장을 마음대로 노출 시킬 수 있는 자유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15. 일대일 양육 시스텀의 잘못은?
나는 일대일 제자 양육에 반대하는 자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거듭남의 증거도 없는 자들에게 양육을 시켜 자신들의 노력과 의지로 하나님의 길을 따르게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하루에 20분의 조용한 시간(QT)를 통해서는 나의 삶이 변화가 되지 않았다. 내 자신이 무엇인가 변화 되려하는 것 보다는 자신이 변화하고 자신이 우상을 버리려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셔야 하며 하나님이 우상을 버려주셔야 한다.
오늘날 목사들이 하는 말은 자신들이 열심히 전도하여 교회에 나오게 해서 성경공부를 가르치고 주일이면 교회에 나오게 하기 위하여 그 집에 가서 그들을 데리고 오면서 그들이 변화하지 않는 것은 제자 양육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나가는 것은 우리와 같지 않기 때문이며 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음성을 듣지 못하고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라 하셨다. 오늘날의 제자 양육은 믿지 않는 자들을 데리고 제자 양육을 시키려니 안 되는 것이다.
만약에 변화한 그리스도인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오히려 교회에서 그를 쫓아내려 할 것이다.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집에 머무르려고 한다. 그리고 전도를 24시간 365일 동안 하는 자들이 된다. 그래서 제자 양육은 진정한 거듭남이 없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제자 양육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그리스도의 양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제자들이 아니기에 교회를 등한시하고 교회를 떠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과 제자를 갈라놓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누가 이러한 말을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분명 천국에 가지 못하였을 것이다.
16. 여러분의 마음을 세상적인 것에 빼앗기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깨끗한 물을 뿌리셔서 깨끗케 하신다면 모든 우상 섬김에서 정결케 하실 것이다. 우리는 우상 섬기는 데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나는 활 쏘는 것을 매우 즐겨한다. 활을 쏠 때 어떤 때에는 표준을 벗어나서 맞추지 못할 때가 있다. 나는 활을 쏘면서 생각이 들었던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무로 만든 것과 활과 바꾼 것을 느끼고 힘들어 한 적이 있다. 활 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운동을 취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도인에게는 다 지나갈 것과 영적으로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 것을 알기에 애착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내가 다른 곳에서 설교를 할 때에 나는 12살짜리 아이를 소개 받았다. 그 아이는 큰 사슴을 잡아 신문과 잡지에 유명 인사였던 아이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나 또한 사냥꾼인데, 사냥하는 사람은 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이 지옥에 가는 것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나의 의도하는 뜻을 몰라 나의 의도가 무엇이냐고 물어왔고 나는 만약에 사냥을 통해서 너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향하지 못한다면 그 취미를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였다. 만약 그 무엇이든지 예수님을 향한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무엇이 되었던지 예수님에게 마음을 잃는다면 던져 버리길 바란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리고 적극적이며 즉각적으로 우상을 섬긴다. 주님께서 나를 가르치셔야만 했다. 나는 완전히 주님을 따르기 보다는 세상적인 일에 너무 쉽게 마음을 빼앗겨 왔다. 나는 이것을 깨닫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려면 모든 것을 부인하며 살아야 하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부인하며 율법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해주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같이 걸으면 기쁨과 평안함이 넘치게 된다. 만약 그것이 아니면 우리는 영적 간음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 들어갈 때까지는 완전하게 승리할 수가 없는 것도 깨달았다.
17. 돌같이 굳고 완악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가?
이제 다시 26절로 가면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여러분들은 구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옥으로 가는 길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 것이 구원이라 생각하는가? 여러분의 결정에 승인하면 구원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는가? 간단한 기도와 다른 사람이 기도하는 것을 따라하는 하는 요술 같은 기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성경 말씀에서 말하는 구원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 받은 자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창조를 통해 나타났듯이 그리고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죽은 나사로를 부활시키시는 하나님, 그리고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는 하나님 이 모든 것은 하나님 홀로 다 이루신 것이다.
인간 모두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마음이 돌같이 굳은 상태로 태어난다. 우리는 죄 많은 자라고 불리기보다는 악한자라 불리는 것이 합당하다. 악하기 때문에 항상 죄를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악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악하다고 하면 무솔리니, 사담 후세인, 히틀러 등을 말하지만 우리 또한 그들과 다를 것 없는 악한 자들이다. 우리는 악한 것뿐만 아니라 또한 죽어 있는 자들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일에 반응하는 것에 죽은 자들이다.
만약 돌로 만들어진 조각이 있어 내가 그 돌로 만든 조각을 강하게 누른다고 해도 그 조각품이 반응할 수 있을까? 돌로 만들어진 조각품이기에 반응이 없을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에 거룩하심에 반응을 못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 아무런 느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이 있는 인간은 당연히 반응한다. 그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에서는 육을 부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에스겔 36장 오늘 본문에서도 육신을 굳은 것, 즉 아무 반응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구원 받기 전에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응답 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죽어있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로 하나님에게 반응을 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 반응 할 수 없다고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인간이 반응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싫어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반응을 하고 싶지 않는 것이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에게 좋은 말을 못한 것은 요셉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요셉에게 좋은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은 그를 싫어하고 증오한 까닭이다. 우리도 하나님에게 반응을 못하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을 증오하고 싫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 우리의 양심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를 보더라도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하나님을 싫어하고 있으며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싫어한 적이 없고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했다고 주장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우리는 하나님에게 올바른 예배조차 드릴 수 없는 자들이다. 주일 아침에는 전 세계적으로 최대의 우상 숭배하는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섬기며, 또는 자신이 만든 상상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누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하여 가르치면 그 교회의 반응은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자들에게 진정한 하나님을 알려주면 사람들은 싫어하고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성경 말씀 속에서 무엇을 하시며, 어떠한 하나님이신지를 가르치면 그들이 말하기를 그것은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한 자들은 절대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을 것이다.
18. 인간은 각자가 자신의 하나님을 만들어 낼까?
인간은 자신의 상상으로 하나님을 어린아이 이야기 식으로 만들어 낸다. 성경 말씀에서 자신을 증거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이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어느 교회에서 목사가 에이즈는 하나님의 심판이다라고 설교하는데 어느 여자가 일어나서 에이즈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고 반박을 했다. 그 여자의 말은 하나님은 어린 아이들을 에이즈로 죽이지 않으신다고 말하였다. 그 때 목사는 그녀에게 말하기를 노아의 심판 때에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전 세계로 죽었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느냐고 답변을 하였다. 그 여자는 목사에게 자신은 그러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 이유는 그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나오는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괴물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내용을 알려 주고자 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선택한 하나님은 기독교에서 가르쳤던 하나님이 아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 마음대로 상상으로 만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 그리고 하나님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자들보다는 나는 차라리 논쟁의 형식으로 일대일로 무신론자들과 논쟁을 하며 하나님에 대하여 밝히고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을 싫어하는지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더 좋다. 오늘 날에는 하나님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신들 상상으로 하나님을 만들어 가는 곳을 교회라고 부른다.
19. 인간은 어떠한 상태이며 중생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이것은 인간이 선택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을 하시는 것이며, 인간을 완전히 뒤 바꾸어 놓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악하고 죄가 많고, 혐오스럽고, 부패되어 썩은 마음을 바꾸어 놓는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마음 즉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넣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한 새 마음의 증거가 당신들에게 증거로 나타나는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여러분들도 사랑하는가? 여러분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것을 좇는 마음인가 아니면 변함이 없이 계속적으로 세상 것을 좇는 마음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가?
찰스 스펄전이 예를 든 것을 말한다면 한쪽에는 통 안에 쓰레기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맛있게 생긴 음식이 놓인 테이블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만약 문을 열고 돼지를 풀어 놓으면 그 돼지는 어느 쪽으로 달려갈까? 그 돼지가 아름다운 테이블에 있는 음식을 좇아갔을까 아니면 통 안에 음식 쓰레기를 향하여 갈까? 그 돼지는 통 안에 있는 음식 쓰레기를 향하여 달려갔다 그 이유는 돼지가 좋아하는 것은 음식쓰레기더미이지 아름답고 우아한 음식들이 아니다. 그것이 돼지의 본능이며 자연이다. 그 돼지는 그 음식쓰레기를 너무 좋아해서 뒹굴기도 하고 먹기도 하며 마시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그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 돼지를 눈 깜작 사이에 인간으로 만든다면 그의 반응은 어떨까? 그는 분명 자신이 뒹굴고 있던 음식쓰레기 더미에서 뛰쳐나올 것이다. 그가 마시고 먹던 음식쓰레기를 토해 낼 것이며, 그리고 그는 자신을 깨끗하게 닦고 씻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돌아서서 여러분을 본다면 자신의 창피함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고 쓰레기 더미에 뒹굴었던 것을 증오할 것이다.
내가 지금 예를 든 것이 바로 중생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을 예로 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중생 했다면 나는 여러분의 중생을 예를 든 것뿐이다. 우리가 중생하기 전까지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타락이후 우리는 악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죄를 짓는 것은 실수가 아닌 우리의 악한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좋은 선물들을 다 부인하고 있다. 얼마나 삐뚤어진 삶인지 알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각종 좋은 선물을 다 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선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럽고 추접한 것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더러운 것을 먹고 마시면서 맛있다고 즐기고 있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결정으로 우리의 더럽고, 썩어있고, 타락하고, 악하고, 저주받은 마음, 그리고 그러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꺼내셔서 하나님의 마음 즉 의로운 마음, 거룩한 마음 하늘의 신령한 복을 사모하는 마음을 우리 안에 넣어주셨다.
여러분이 거듭나는 순간 그 더러운 통 속에서 머리를 꺼낼 것이다. 하나님께 자신이 어떠한 인간이었는지를 자백하며 울부짖을 것이며,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죄에 대하여 자백하고 매우 혐오스럽게 느낄 것이다. 자신을 싫어하고 자신이 얼마나 악한 자였는가를 철저히 깨닫게 된다. 이사야가 말했던 것과 같이 자신의 입은 더러운 입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하며,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해 질 것이다. 그때는 자신이 자랑하려고 하였던 모든 것에 대하여 자신이 부끄러울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와 성령님께서 조명해주시는 마음으로부터 부끄러울 것이며, 주의 사람들에게도 창피함을 느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더럽고 추하고 썩어 있는 것을 부인할 것이다. 그러한 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도들과 겉으로 나타나는 것만을 비교하여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하지 말고 하나님과 비교하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자신의 교만함과 자신의 더럽고 추함이 불에 타서 녹아내릴 것이다.
20. 진정한 거듭남이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과일과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숨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피해서 어디로 인간이 가겠는가? 진정한 구원은 음식 쓰레기더미에서 얼굴을 내밀고 나올 것이다. 진정한 거듭남이라면 사람은 더러운 것을 역겹다고 생각할 것이며, 진정한 거듭남은 더러운 것으로부터 돌아설 것이며, 진정한 거듭남은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에 대하여 맛볼 것이며, 주님이 정말 좋은 분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본성을 가졌다고 해서 (두 가지 본성을 가지지 못한다. 누구 두 가지 본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거기에 대하여 알고 싶으면 끝나고 와서 직접 물어봐라- 육적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성경적이 아니다) 하나의 새로운 본성, 두 개의 본성이 아닌 하나의 본성과 하나의 새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을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 새로운 마음 옆에 돌 같은 마음을 같이 두겠다고 하지 않고 오직 새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만약에 우리가 육적인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죄로 인해서 힘들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힘들어 하는 것은 새로운 본성이 구원 받지 못한 육체 안에 있기 때문에 힘들게 죄와 실랑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죄로 훈련 받았고 길이 잘 들어지게 죄로 훈련 받은 인간들이다. 이러한 인간이 거듭나서 주님의 만찬에 참여 할 때 때로는 만찬에 참여하지 못하고 다시 음식 쓰레기더미로 찾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음식 쓰레기를 다시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듭나서 새 본성을 가지고 새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이 그 음식 쓰레기와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음식쓰레기에 머물 수가 없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자신이 무엇인가 선한 일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마당에 있는 사과나무가 계속적으로 사과를 외친다고 해서 사과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연적으로 맺는 것이다. 신앙 또한 이것과 같다. 진정으로 구원 받은 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그 열매를 맺는 것이다.
여러분은 전에 얼마나 방탕함과 술 취함과 호색을 멈추기 위해서 노력했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죄는 여러분이 끊지 못하였을 것이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외형적인 것은 끊을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마음까지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더러운 것을 완전하게 깨끗이 싫어지고 구역질나기까지는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늑대를 창살 속에 가둔 다고해서 늑대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율법과 종교로 억제시킨다고 해도 그는 늑대이다. 그래서 종교가 여러분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동의와 그리스도의 지배함을 통해 있어야만 된다. 오직 이것만이 여러분을 구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원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구원이기에 초자연적인 능력이 그에게서 분명히 나타난다.
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초자연적인 현상이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사과하는 것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분명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지금도 초자연적인 역사로 그들을 변화 시키시고 있다. 만약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변화되지 않거나 초자연적인 역사로 훈련을 받지 않는다면, 초자연적인 역사로 옳은 길을 가지 못한다면, 초자연적으로 교정이 없다면, 초자연적으로 중재가 없다면, 초자연적으로 우상과 더러운 것에서 깨끗이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매우 무서워하고 두려워 떨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며 하나님 또한 그들을 알지 모른다.
어느 누가 자기의 14살의 딸을 밤새 밖에 보내어 칼을 들고 다니며 설치게 하겠는가? 그리고 동이 틀 때면 아주 더러운 꼴을 하고 들어오게 하는 부모가 있을까? 그런데 왜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가 그러한 부모라고 비난하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길거리에서 더럽게 하고 다니며, 세상에 있는 자들과 같이 거칠게 행동하는데도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히브리서 12장에서는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하셨다. 이것을 이해하는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도망치고 도망쳐도 하나님께서는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도망치려고 할지라도 절대로 도망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라도 분명 하나님께서는 그 앞에서 지키고 계실 것이다. 절대로 도망 할 수가 없다.“(암 9:3)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찌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찌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이 말씀은 하나님을 찾는 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피해 도망하려는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잡혀 포로 된 자로 표현 했을 때에는 문자 그대로 그가 그리스도에게 붙잡혔다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는 더 이상 자신 혼자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바닷가에서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의 순교에 대하여 말하며 베드로가 어떻게 죽는 것을 말해주시면서 어려서는 베드로 마음대로 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베드로의 목숨이라도 감당하며 순종해야 할 것임을 말한다.
21. 거듭난 자가 변함이 없을 수가 있는가?
나의 기도는 진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가짜 그리스도들을 다 한줌의 재로 변화 시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말씀하셨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다. 내가 대학교 세미나에서 잘 사용하는 예를 말한다면, 한 학생이 매번 지각을 하다가 교수가 왜 너는 또 지각을 했니?라고 묻자 그 학생은 학교 오는 길에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그 타이어를 갈다가 나사를 놓쳐서 나사가 길가로 굴러가는 바람에 큰 화물 트럭이 나를 깔고 뭉개서 늦었다고 말하였다. 이 학생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완전 거짓말쟁이 던지 아니면 미치광이 던지 둘 중 하나이다. 큰 트럭에 깔려서 살아남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 큰 트럭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덮치시는데 그 밑에서 살아남을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오늘날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님과 같이 부딪치는데 변화지 않는다고 할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에 변화함이 없다고 한다면 그는 신성모독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 그들 안에 계신데 어떻게 변화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들이 말하는 것은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는데도 그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나를 볼 때 내가 화가 난 것 같이 보인다면 맞는 소리이다. 이제 누군가가 하나님에 대한 열의를 나타낼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당연히 여러분들도 염려되지만 더 염려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은 존경 받아 마땅하신 하나님이시며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이시다.
22.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분명 두 가지의 갈림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매우 큰 갈림이 있을 것이며, 또 다른 갈림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일어나는 일인데 창세전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계획을 세우시고 선택한 자들에게 박해를 허락하시어 우리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만나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나타내게 하셨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분명 목사들에게 너희가 가지고 있던 교인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 볼 것이며, 신학교가 어디에 갔느냐고 물어 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그들에게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고 분명 말씀하셨다. 만약 그 누가 하나님께서 나에게는 그렇게 못하신다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가 아니며 하나님의 자녀가 아님을 자신 스스로가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된 자녀들은 분명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신을 그들 속에 두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꼭 행하게 하실 것이다.
만약에 여러분이 나에게 “그럼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의롭게 하는 것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해서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이 그들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의 본성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23. 인간의 자유란?
오늘 여러분에게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말하자면 오직 자유는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며 자유는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이다. 그 외에 인간은 자유를 논할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유를 가지고 계신분이다. 우리 인간은 그 곳에 있을 때 그 하나님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지 인간의 스스로의 자유는 없다.
만약 여러분이 자유를 주장한다면 정통 기독교 교리에서 벗어나서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자유를 얻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면 그의 삶에 개입하실 것이다. 돌 같이 굳은 마음을 빼내서 하나님의 마음을 집어넣어주시며, 그의 신을 그 속에 두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 수 있게 하신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 하나님은 여러분의 목자가 되시는가? 그분의 지팡이가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며, 보호하며, 교육하는가? 그분의 손에서 벗어난 적이 있는가? 만약에 그분의 손에서 벗어났다면 두 가지의 결론만이 있다. 첫째는 여러분의 목자는 매우 연약한 목자이던지 둘째는 여러분은 그분의 양이 아니던지 이 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는 나의 양은 나의 목소리를 듣고 따른다고 하셨다.
24. 에스겔 36장 27절에 “행할찌라”의 뜻은 무엇인가?
에스겔 36장 27절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이 구절에서 “행할찌라”라는 문장 속에 “careful- 조심하게”라는 단어의 뜻이 담겨져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조심하게 신경을 쓰며 지킬 것이며,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기에 조심스럽고 민감할 것이며, 하나님의 지혜를 조심하게 배우고 민감하게 생각하고 삶에 적용시킬 것이며, 성령님을 좇아 행하기에 조심할 것이며 길을 벗어났다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돌아올 것이다. 그만큼 민감하고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내가 지금 설명한 것이 오늘날에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가? 예수님의 말씀 중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계명을 다르지 않는 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에스겔에서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오늘 말씀인 에스겔을 보면 “(겔 36: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라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7장에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에게 도무지 알지도 못하며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더나가라고 말씀하셨다.
나와 여러분은 시간이 없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오랫동안 믿고 있는 신앙을 내가 그것을 가짜 신앙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나에게 화를 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평판을 지옥에 가는 것보다 더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25.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한다는 뜻이란?
에스겔 36장 28절을 다시 보면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살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와이프와 내가 선교사였기 때문에 결혼반지 같은 것을 서로 나누지 못하였다. 와이프는 결혼반지를 원하지 않았고 나도 그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사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결혼 한지 3년반 정도 지나 나는 조그만 결혼반지를 사줄 수 있었다. 하지만 반지의 다아몬드가 너무 작아 잘 나타내기 위해서 검은 바탕의 천으로 싸서 줘야했다.
내가 그것을 줬을 때 그녀는 너무 기뻐했다. 만약에 그녀가 그 작은 다아몬드를 보고 너무 작아 이것이 무엇이냐고 나에게 질책을 했다면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을 것이다. 결혼할 때도 아무것도 주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도 어린아이 장난도 아니고 이렇게 작은 것을 왜 주냐고 하였다면 나는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서 살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중생한 사람은 그리고 중생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감사할지도 모르는 자들이며, 우리는 눈이 멀었으며, 가련하며, 벌거벗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이다.
조지 뮬러는 사단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길 때 강퍅한 마음에 대하여 말하였다. 인간은 하나님을 너무 증오해서 사단을 섬긴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을 너무 싫어해서 오히려 잘 차려놓은 식탁에서 하나님과 같이 만찬을 하느니 오히려 음식 쓰레기를 먹고자 하는 것이 인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 열조에게 준 땅”을 약속해 주셨지만 인간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약속에 신경 쓰지도 않고 비웃었다. 그들은 다른 나라와 같이 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함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 적으로 살면 세상의 다른 나라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지만 인간에게는 이 말씀을 매우 싫어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매우 큰 죄를 범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내가 너의 전부가 될 것이며 지켜줄 것이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너에게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지만 인간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에게 당신이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이 세상 것에 눈이 어두워 물질이나 명예나 지식을 하나님과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이 더 좋은 가 아니면 세상의 것이 더 좋은가를 따져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26. 하나님을 모른다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가?
Charles라는 형제가 미국 대학교에서 가르칠 때 내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한번 내가 루마니아에 있을 당시에도 거의 같은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 두 상황을 같이 묶어서 말하자면 Charles형제는 대학교 강단에서 온 힘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일어나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외에 자신에게 얻어지는 것이 있냐고 물어 봤다. 그는 자신의 말로써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며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의 입으로 자신에게 저주를 내린 꼴이 된 것이다. 분명 그러한 사람은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것이 필요한 자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나는 어제 아침에 이야기 했던 것으로 끝내겠다. 구원 받은 증거가 없는 자에게 당신은 당신의 삶에 구원 받은 증거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천국에 갈 수가 없다고 말하자, 그는 매우 화를 내며, 왜 자신이 천국에 못가냐고 따지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왜 당신은 화를 내고 있냐고 하자 그는 당신이 나보고 천국에 가지 못한다해서 화가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안하다 말하면서 이렇게 말하면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 말한 것인데 죄송하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천국에는 예수님에 계신데 지금 천국에 가기를 원하냐고 물었다. 당신은 지금 예수님에 대하여 비웃고 자신 마음대로 살아가고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좇기 보다는 세상 것을 향해서 살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 천국에는 성도의 교제가 있으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친히 자신의 영광을 나눠 주실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에게 대항하고 그들을 비웃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당신은 성도들과 같이 지내는 것보다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당신은 천국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는가? 당신 말과 같이 당신이 천국 가기를 원한다면 천국에 가서도 당신은 하나님이 없기를 원할 것이다.
27. 오늘 날에 신앙과 말씀 속에 신앙과 같은가?
여러분은 어떠한가?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을 들여다 볼 때이다. 구약에서 선지자가 말한 것은 오늘 날에 가르쳐지고 있는 신앙과 완전히 다르다. 공격적인 말이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한다고 한다. 말로써 상처 입은 마음에 그리스도의 치유가 나타날 수도 있다. 여러분들의 영혼은 괜찮은가? 여러분의 삶은 항상 진실된 말씀과 비교하며 살고 있는가?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며 말썽을 부리며 죄를 범하며 살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섬기고 있는 것은 사단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그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오늘 날 많은 목사들이 여러분을 팔아먹고 있으며, 진리의 복음을 가르치지 않고 형식적인 신앙을 가르치고 진실 된 전도가 아니라 자신의 교회 홍보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하며, 인간의 선택으로 지옥가고 천국에 간다고 말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진정한 복음을 가르치기 보다는 교회에 사람으로 채우려 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여러분의 죄가 용서 받지 못하였다면 여러분은 지옥으로 갈 것이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인해서 여러분의 내면이 완전히 변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지옥에 갈 것이다. 회심의 증거가 삶속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지옥에 갈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오늘 설교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마음이 열리고 자신이 정말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한다면 하나님께 진실하게 구하고 말씀과 기도로 그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두드려라. 하나님께서 진정한 은혜를 허락하시기까지 울부짖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알아가려고 하라. 자신의 죄가 싫고 자신이 비참하고 자신이 하나님께 대적하고 있었던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하실 때까지 그래서 회개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기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려라.
출처 : 예수안에 하나교회(http://cafe.daum.net/1inchrist)